우주력 20IIVIIXVIII년 마침내 우리는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S4077VEGA에 착륙하게 된다. 천문학자들이 이 별을 발견했을 때 항해자들은 이를 ‘Terminus’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 별의 지적 존재들-자신들을 ‘인류’ 또는 ‘사람’이라고 부르는-이 말하듯 ‘지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더욱 좋아했다.
지구 시간으로 약 일 년에 걸쳐 나와 승무원들은 지구에 대한 이해를 갖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해왔다. 지구에 머무르며 조사를 수행한 선발대의 희생 어린 수고가 없었다면 이런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지구 안내서’라고 불렀는데 여기에는 이 행성에 사는 여러 생명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다양했다. 동물이라고 불리는 움직이는 탄소화합물 기반의 유기체가 있었고, 식물이라 불리는 고착 생명체가 있었다. 개체수로는 곤충으로 불리는 엄청난 수와 종류를 가진 종이 존재했다.
지구에는 다양한 생명체만큼 다양한 정치조직이 존재했다. 통합되지 않은 언어의 소통 문제가 권력의 분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들이 ‘국가’라고 부르는 이 조직은 생명체를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구분에 어려움을 겪게 했다. 그것은 우주적 메시지를 나눌 지구의 대화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이었으므로 무엇보다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그러한 지루하면서 인내력이 요구되는 과정을 거쳐 우리가 지구에 공식적으로 첫발을 디딜 자격을 가진 본진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니 그 감회가 어떠할 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선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황색의 우리 별과 다르게 푸른 색으로 빛났다. 태양이 비출 때 회전하며 물의 빛을 반사하는 모습은 환상이었다. 그것은 끊어지지 않는 음악적 영감을 내게 불어넣어줬다. 우리 별의 약 74% 크기에 지나지 않지만 놀랍게도 변화무쌍했다. 거기에는 꽁꽁 얼어붙은 지역도 있고 우리 별과 유사하게 암반과 모래로만 이루어진 뜨거운 지역도 있다. 화산이 있고 지진이 있으며 허리케인이 몰아친다. 그럼에도 불안정한 대기와 유동적인 지질, 거대한 물 위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음에 대해 경외감을 감출 수 없다.
사실 지구를 알게 된 것은 수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별의 종족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지구는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우리 이외의 생명체를 찾아 헤맨 불굴의 노력의 결과였다. 드넓은 우주 속에서 지구를 찾아낸 것은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과학자들은 우리의 표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다 해도 이러한 별을 꼭 짚어 찾아내는 것은 운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구인의 표현대로 해변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으니까. 그러니 조심조심 그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우호적이라는 것을 보여야만 했다. 소리와 빛의 신호로, 때로는 잠시의 비행을 통해 우리에게 공격의 의도가 없음도 알려야 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수 세기를 통해 겪어온 우리 별의 역사가 인내가 우선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년 전 그들은 우리의 방문을 허락했다. 역시나 이 별의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방문객에 익숙지 않은 듯 보였다. 선발대는 이에 대해 여러가지 정보를 보내왔다. 그런데 아직도 처리되지 않은 정보로 인해 본진의 지구 착륙이 지연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들도 들려왔다. 그것은 지구의 정치 조직이나 사회 문제 탓이 아니었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어느 별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위협이 되는 것은 크고 중요한 어떤 것들이 아니다. 아주 작지만 치명적인 그것들이었다. 뜻밖에도 많은 지구인들이 특정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백신으로 항체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것은 시효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백신도 맞지 못하여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지구인들은 아직 이 바이러스에 대해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고 우리 역시 이 바이러스가 우리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이다.
선발대에 의하면 현재 지구인의 생활습관은 불과 3년 전의 것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구 안내서’에는 이것을 지구인의 관습으로 여기지 말라는 친절한 주석도 붙어 있었다. 먼저 이 별의 사람들에게 가장 실례가 되는 행위는 상대 앞에서 재채기를 하는 것이다. 상대와 만났을 때 손을 내밀어 잡는 것도 안 된다. 오히려 격투를 하듯이 서로 주먹을 부딪히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이빨이 보이도록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채 대화를 해도 실례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부 활동을 할 때 마스크라는 것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데 심지어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보호경을 사용하기도 했다. 지구인이 우리의 방문을 허락한 데에는 우주에서 방문한 다른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 바이러스의 퇴치가 더욱 시급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떠돌았다. 우주 역사에 기념이 될 방문이 가능했던 것이 이런 바이러스 때문이라니 조금은 힘이 빠지겠지만 원래 역사의 진보는 사소하고 어이없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접근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 지구 접촉에 대한 우리의 시도는SARS-CoV-2라고 불리는 지구의 바이러스와 같이 변이가 심하고 우리 별에서 알려지지 않은 병원균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생명을 담보로 한다. 그렇다 해도 지구인을 만나 여는 우주 탐사의 숭고한 가치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COVID-19가 발생한지 햇수로 삼 년을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풍토병으로 약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변이로 발전하여 어떤 다른 위협이 될 지도 알 수 없습니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려니 엔데믹이라는 단어의 뜻도 알아보아야 하는 때입니다. 이제는 어린아이들 조차도 마스크 쓰는 것을 당연스럽게 여깁니다. 불과 한, 두 살의 아이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생존에 대한 위대한 인간의 의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우주에서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우리를 만난다면 하고 SF적인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들의 지구 안내서 그림에는 인류의 입에 마스크가 덧입혀 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어찌하든 삶은 지속됩니다. 마지막이 오는 그 날까지도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소소한 일상들은 약간의 모습은 바뀔지라도 그렇게 지속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렵게 찾은 일상이 보다 가치 있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동남아사업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