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브라질 월드컵의 열풍에 행복한 몸살을 앓고 있다. 축구에 열광하는 몇 나라에서는 월드컵 기간 동안 학교가 휴교하고 상점은 문을 닫는다. 학교를 열어봐야 학업보다 축구구경에 열광하는 학생들이 안 나올게 뻔하고 가르치는 선생들마저 관심이 그곳에 가 있으니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만인이 동의하는 논리적인 이유를 내세워 학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축구가 학업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럴까? 영국의 명문 축구팀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섀글리는 “어떤 이는 축구가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믿지만 그런 태도는 못마땅하다. 장담컨대 축구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라고 한술 더 뜬다. 투머로우 라는 영화에서는 극지방의 연구소에 있는 연구원들이 지구의 기상 변화로 식량지원이 끊겨 거의 죽음을 앞 둔 시기, 마지막 술잔을 들며 최후의 건배를 하는데, 한 연구원은 영국의 축구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위하여 라는 건배를 한다. 생의 마지막 술잔을 축구팀에 바치는 사람들, 아무튼 각자 생각 나름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축구가 인류의 삶에 주는 영향은 어느 스포츠보다 크고 방대하다.
그런데 왜 축구는 온 인류를 이렇게 흥분하게 만드는가?
과연 축구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내는가?
상식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얘기한다면 너무나 뻔하다.
인간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손을 묶고 발과 몸을 사용하여 다수의 선수들이 공 하나를 두고 유일하게 손을 사용하는 골키퍼가 지키는 골 문에 공을 넣는 단순한 스포츠다 보니, 장소나 인원에 관계없이 공 하나만 있으면 만인이 어디서나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 일단 많은 사람에게 참여 의식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축구 발생 초기에는 공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뺑 둘러싸여 때로 몰려다니며 공은 발로 차지만 손발로 상대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다 반사였다. 1800년도 초반 축구의 종가 영국에서조차 “세상 그 어떤 경기보다 보잘것없고 상스럽고 무가치하다” 며 공공장소에서 행하는 것을 금지 할 정도였다.
그러던 비 합리적인 축구게임이 경기의 하나로 성장한 것은 오프사이드라는 룰과 엘로카드제가 만들어지면서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에서 발생된 이 축구는 영국의 국력에 힘입어 세계로 널리 퍼져나간다. 하지만 단지 룰이 간단하고 공 외에는 다른 운동기구가 필요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세계인이 열광하는 축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 사람의 관심을 끄는 매력이 더 있을 것 같다.
축구의 매력 중에 가장 큰 것은 평등성과 불확실성이다. 누구에게나 사용이 서툴 수 밖에 없는 발을 사용하는 게임이라 반드시 강한 팀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경기 그리고, 신체적 차이나 경제력의 차이도 게임의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평등의식과 함께 그에(불완전 발을 사용하는 게임) 따른 승부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며 축구를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축구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려면 세계 축구를 관장하는 FIFA라는 기구의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FIFA 가입국은 208개국으로 유엔의 192개국,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 위원회(IOC) 가입국 205개국보다 많다. FIFA회장은 어느 나라 국가원수와도 수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또한 당연직 IOC위원으로 이중 혜택을 누린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비롯하여 각종 대회를 관리하는 명목으로 엄청난 돈과 이권을 누리고 있는 단체지만 어디로부터도 감사를 받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고 은밀한 권력기관 중에 하나다.
유명한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명예와 권력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라는 국가는 세계인에게 아이보리 코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나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 나라의 축구 선수로 잉글랜드 프리미엄 리그에서 뛰던 드로그바나 현재 맨체스타 시티에서 뛰는 미드필더 야아투레를 모르는 축구팬은 없을 것이다. 특히 드로그바는 자신이 가진 축구선수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자국의 내전을 종식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하며 축구가 가진 힘을 보여주었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아마도 월드컵에서의 그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에서는 손꼽히는 강자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아직은 엉성한 구석이 많고 세련되지 못한 팀.
우리가 월드컵에 처음 참가한 것은 정확히 60년 전, 1954년 한국 전쟁이 휴전으로 총성을 멈춘 일년 후의 일이다. 당시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에 20명의 한국 선수가 50시간의 비행시간을 감수하며 경기 전날 도착했다. 그리고 당시 세계 최강인 헝가리(국가대항 A 매치 40게임 무패)와의 경기에서 무려 9대 0으로 대패한다.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아마도 앞으로도 절대 갱신되지 않을 월드컵 역사의 영원한 기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당시 우리 선수들의 가슴에 달린 태극기 마크는 손바느질로 달아맨 것이었다고 한다. 마치 그 당시 국민소득 60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의 위상과 너무 동일하지 않은가?
그런 나라가 이제는 월드컵 4강에도 올라가 봤고 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16강에도 진출 했다.
그렇게 승승 장구하는 것 같던 한국 축구가 이번에는 해외의 유명 축구팀에서 뛰고 있는 17명의 해외파가 참가하며 팀을 꾸렸지만 16강 진출을 가리는 조별리그에서 한 번의 승리도 맛보지 못하고 탈락하는 쓴맛을 보았다.
아차 방심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 팀은 이번에 훨씬 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기위주로 경험이 일천한 젊은 감독에게 국민의 사기를 맡긴 축구협회의 안일함과 홍명보 감독의 유아적인 선수 선발 그리고, 경기 전에 이미 이길 수 있다는 선입감에 젖은 선수들의 이완된 정신상태가 대세를 그르치고 말았다.
홍명보 감독은 알제리와의 패배 후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새삼스레 말했다. 당연하다. 경기의 승패는 절대적 전력의 차이가 아니라면 상대에 맞는 전술과 선수기용, 선수들의 투지에 달려있다. 이런 모든 요소를 관장하라고 감독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게임에서 승패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더라도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안다. 너무나 당연한 이런 책임의 소재를 마치 선수들에게 선심 쓰듯이 새롭게 강조하는 그의 발언은 항상 칭찬 속에 최고의 대접을 받던 엘리트 의식이 잠재되어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는 불과 10년 만에 선수에서 국가대표 감독으로 급속 성장했지만 거친 풍파는 맛보지 못했다. 축구처럼 현대적인 전술과 원시적인 본능이 공전하며 서로 충돌하는 경기를 책임지는 감독에게는 다양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잡초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이 요구된다.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3대 0으로 전반전이 끝날 무렵, 벤치에서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감싼 모습으로 쉽게 포기를 드러내는 홍명보에게는 위기가 닥칠 때 오히려 독기를 내 품는 의기에 찬 지도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60년 전 기록적인 대패를 남기며 다음을 기약하던 한국이 절치부심하며 좀 기지개를 펴는가 했는데, 자만에 빠진 홍명보가 떠벌린, 원 팀, 원 스피리스, 원 골이라는 알맹이 없는, 허울좋은 포장지만 남기고 다시 60년 전의 그때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현재 어디에 있는가?
월드컵이 대한국민에게 던진 질문이다.
작성자 : 한 영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