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활발한 토론을 이끌어냈던 책 몇권을 꼽아보면, 심리학 관련 책들이 많았습니다. 인간 본성의 법칙(로버트 그린),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마거릿 폴) 등이 대표적인 심리학 관련 책들이었습니다. 한국 독서계에서도 2010년 전후에 있었던 심리학책 열풍을 포함, ‘무슨 무슨 심리학’이란 제목의 심리학책은 꾸준히 베스트 셀러가 되어왔습니다. 심리학의 3대 거장을 지그문트 프로이트(정신분석학), 칼 융(분석심리학), 알프레드 아들러(개인심리학)로 꼽는데, 이들은 1900년대 전후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신분석학회’ 활동을 함께 했던 공통점이 있고, 이후 학문적 의견 차이로 각자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현대 심리학은 이분들의 이론을 계승 발전, 보완시킨 것이라 보면 될것 같습니다. 프로이트, 융에 비해 조금 덜 유명했던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은 2014년도에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란 책으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내용을 떠나서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지하철이나, 직장에서 대놓고 보기 힘든 책이었죠. 사장님 입장에서 ‘미움받을 용기’란 책을 읽고 있는 직원을 보면 좀 불안하긴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심리학 관련 책들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인생이 고통이고 힘이 든다고 느껴진다면 최소한 70%는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든것 같습니다. 인생 초기에는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를 사회적 규범으로 규격화 시키려는 학교 선생님, 열등감을 자극하는 나보다 잘난 형제 자매, 친구들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나이가 조금 들면 내가 사랑하는데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힘들다가, (남자들은 군대에 먼저온 사람들에게 잠깐이지만 강렬한 고통을 받고), 가고 싶은데 못가는 회사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막상 취직을 하면 이 일을 하려고 내가 그렇게 공부를 했나 하는 자괴감을 주는 직장에서 너무나 한심한 선배들 때문에 힘들고, 조금 지나면 말안듣는 후배들 때문에 힘이 듭니다.
성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는 돈을 받는 사람이 돈을 주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누가 언제 정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따르고 있는 공식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갑질’이라고 하는데, 갑과 을의 관계란 것이 상대적인지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백화점에서 의류매장 직원의 무릎을 꿀린 모녀의 기사에 분노하던 어떤 회사원이, 점심시간에 20분 늦게 배달된 식사때문에 식당의 주인에게 폭언을 합니다. 새파랗게 어린 사람에게 폭언을 들으며 분노를 삼키던 식당 주인은, 슈퍼에서 산 음료에서 이물질을 발견하고 해당 업체의 소비자 상담실에 전화를 합니다. 클레임을 해결하러온 회사의 영업사원은 기자 친구, 구청에 근무하는 친척 얘기를 들먹이며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는 식당 주인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클레임 종결’을 위해 애를 씁니다. 그리고 주말에 그의 아내와 장모님은 백화점에 가서 VIP 고객을 몰라보는 매장의 여직원을 만나 사과를 요구합니다. 갑질 문화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든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덕이 없게나 복이 없는 사람은, 이기적인 배우자와 고마움을 모르는 자식들 때문에 일터와 가정 어느곳에서도 위안받지 못하고 겉도는 삶을 살다가 씁쓸한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쟤는 도대체 왜 이럴까?’, ‘저사람은 또라이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번씩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의 마음을 한번에 알수있는 ‘독심술’과 상대를 내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설득력’이 있다면 행복해 질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심리학 책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 때문에
기한내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와 매일매일 터지는 문제들을 처리하다보면 항상 시간이 모자랍니다. 집에 와서도 가족들과 해야 하는 일은 끝이 없죠. 술과 쇼핑, 대화와 수다, 취미와 모임으로 내 마음속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보려 하지만 ‘너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확실한 대답을 하기 힘듭니다. 내가 가졌던 꿈이 도대체 몇개였는지, 왜 나는 이렇게 되었는지, 내자신도 잘 모를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매일매일 나에게 선택을 요구하는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 결정을 미루다가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돈얘기를 하면, 욕망에 이끌려 돈을 쓰고, 잃어버린 경제적 기회 때문에 후회가 밀려오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안쏴도 되었던 술값, 나를 몸짱으로 만들어 줄줄 알았던 운동기구, 더이상 옷장의 공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새옷, 아이를 위해 쓰는 것인지 내 조바심 때문에 쓰고 있는지 헷갈리는 교육비 같은 것이 그런것 같습니다. 내가 쓰는 시간, 돈, 관심이 진짜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함 때문에 사람들은 심리학 책을 찾고, 각자의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세상 때문에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선 많은 사람들이 지난 2년간 몸과 마음, 경제적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사회적 격리, 백신개발, 변종 출현 등 각 단계를 지날때마다 ‘불확실함’과 계속해서 싸워 왔습니다. 베트남 교민들의 일상에서, 정기적인 한국 방문은 반드시 필요한 귀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보내는 1~2주의 시간동안 부모님, 가족, 친구들을 만나며 정말 많은 위안을 받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못사는 물건들 운송비 걱정없이 마음껏 사고, 믿을 수 있는 병원에서 건강검진도 받고, 치료도 받으며 건강을 챙기는 과정은 교민들의 삶에 꼭 필요한 기쁨이자 다음 1년을 버티게 해주는 힐링 코스입니다. 통계로는 설명할수 없지만, 2년동안 한국을 방문하지 못해서 생긴 교민들의 스트레스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큰 정신적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은 커녕, 주변 친구들도 만날수 없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 심리적인 문제들을 만들었는지 기억이 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문제 뿐만 아니라, 세상은 우리가 통제할수 없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도 어떻게 할수 없는 일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불안할 수 밖에 없고, 그런 불안감 속에서 불안한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고, 나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주는 심리학 책들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소 약해진 코로나 증상과 코로나를 인정하는 With Corona 정책 덕분에 베트남 교민사회도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많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늘길도 열려서 그동안 미뤘던 교민들의 한국 방문도 시작되었고, 한국에서 오는 출장자들, 관광객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새로운 코로나 변종이 나올수도 있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든 인플레이션이 올해 경제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강대국간의 편가르기가 어떤 군사적 위기를 만들어 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삶은 계속 나아가야 하고 나아갈 것이며, 코로나 시절에 그랬듯이 책은 불확실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지혜와 위안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