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 일이 갖는 의미

의원면직이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무슨 국회의원이 사직을 한 것을 의미하는 듯한 이 단어가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단어를 알기 위해서는 한자풀이를 좀 해야 합니다.  

依願免職 즉 ‘(본인의)원(願)에 의(依)하여 그 직(職)을 면(免)하게 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그만둔다는 얘기입니다. 알고 보면 쉬운 의미를 어려운 한자를 써서 돌려 말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단어가 등장하는 내용은 대부분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데 기쁘고 슬프고를 따질 일이 아니지만, 그 소식의 뿌리를 찾아보면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 단어는 정년이 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명예퇴직 혹은 희망퇴직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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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한국에는 IMF가 터지면서 수 많은, 진짜 대부분의 회사가 거덜이 났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나 하면 일반 사기업이 망하고 직원들이 한순간에 잘려 거리에 나가는 것은 너 나 없는 일이고, 하다못해 국가 공무원들마저 일거리가 사라져 공무원 수를 줄여야 할 판이었습니다. 결국 정년은 안되었지만 나이가 많은 공무원부터 퇴직을 권고 받고 옷을 벗습니다. 그래도 생으로 그냥 나가게 할 수는 없으니 이름이라도 멋지게, 명예퇴직이란 단어로 포장하고 퇴직 시 별도의 퇴직금으로 1~3년치 급료를 주는 것으로 퇴직을 시켰는데 이때 쓴 단어가 의원면직입니다. 실제로는 쫓아내면서 대외적으로는 자발적으로 나간 것처럼 꾸미기 위해 그 어려운 단어를 만들 모양입니다. 

그 이후 이 단어, 명예퇴직, 희망퇴직, 의원면직은 사기업으로 옮겨갑니다. 하다못해 신입사원들에게마저 이 명퇴가 적용되어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일, 직장이란 이렇게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요소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가서 보니 베트남인들에게 일이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더군요. 직장 옮기기가 마치, 그늘 따라 다니는 카페 의자처럼 가볍기 그지없습니다. 참 쿨해 보이기는 한데, 우리 입장에서는 좀처럼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뭐가 다른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도대체 일에 대하여 베트남인은 어떤 사고를 갖고 있길래 그리 쿨하게 처신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찾아보고자 함입니다. 

일단 베트남인에게 일, 직장이란, 단지 돈을 버는 목적이 전부인 듯합니다. 그래서 필요로 하는 돈을 다른 것을 통해 벌 수 있다면 기꺼이 직장이나,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는데 망설임이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돈이 목적인데 좀더 쉬운 돈벌이가 있다면 당연히 그 방법을 취하는 것이 도리에 맞습니다. 안하면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베트남 회사들의 평균 이직률은 년간 100%가 넘습니다. 

 

그럼, 한국인에게 일이란 베트남인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사실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기는 합니다. 돈을 번다는,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돈을 번다는 목적이 전부가 아니라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낀다는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가치는 어떤 방법을 통해 구현됩니까? 사회라는 무대를 통해 존재가치가 드러납니다. 사회에 떨어져 혼자 지내는 사람에게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일이라는 통로를 통해 사회와 자신을 연결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그래서 돈을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존재라는 가치가 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반면 베트남인들은 사회보다는 가족으로부터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원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사회보다 가족이 우선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았을 때 한국인들은 자신의 영역을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로 확대하여 투영되기를 원하는 데 비해 베트남인들은 아직 그 투영 폭이 가족에 그치고 있어 일에 대한 가치 역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버는 작업으로 한정되는 듯합니다, 

우리에게는 돈이란, 일의 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부여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못 벌어도 일 자체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더불어 돈도 벌 수 있다면 반복되는 일로 인한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하물며 그 일이 봉사로 옮겨지면 외려 돈을 쓰면서 일에 매진합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일이란 다른 말로 건강지표가 됩니다. 

우리는 건강해야 기본을 챙길 수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봉사 등., 이 모든 것이 건강을 조건으로 한다고 본다면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기본 조건을 충족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일이란 건강의 바로미터 입니다. 

누군가 “건강 좀 어때?”라는 물음은, “일이 잘되고 있는가?” 하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을 듯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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