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다룬 적이 있는 재미동포 이민진 교수의 소설, <파친코>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소설 파친코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 바로 이 글의 제목입니다.
이번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회사는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 대박이 난 넷플릭스가 아니고 그들과 경쟁 관계로 출발한 애플TV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반응이 어마무시합니다.
예고편이 나오자 마자 이 드라마에 대한 전문가들의 호평이 전세계 영화시장을 흔들어 놓습니다. LA TIMES는 멜로 드라마의 장르가 파친코 이전과 이후로 나눌 것이라고 평할 만큼 이 드라마는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달려있습니다.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절대 강자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애플TV가 새로운 무기를 들고 넷플릭스에 도전하는데, 하필이면 그 무기가 역시 넷플릭스를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절대 강자로 만들어 준, 한국의 드라마라는 것에 세계인이 흥미로워합니다. 이제는 세계인의 시야를 집중시킬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한국 드라마 라는 얘기가 됩니다.
8 부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파친코는 순수 한국적 영상기법에 의해 제작된 <오징어 게임>과는 달리 미국의 서구적 영상기법을 사용한 터라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영상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국과 한국인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입니다. 즉 이 영상을 통해 세계인은 한국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역사가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시사회부터 세간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시사회 참가자에게 보낸 티켓 봉투에는 무궁화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는 실제로 한국의 국화, 무궁화 씨가 담겨있었습니다. 너무 멋지지 않나요? 역시 애플다운 행보입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을 쓴 이민진 작가는 모든 독자를 책 읽는 동안 한국인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즉 한국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입을 기대한 것입니다. 소설과 달리 영상으로 드러낸 이 스토리는 한국의 상황이 그려지지 않는 서구 독자들에게 극중 인물로의 감정이입을 효율적으로 유도합니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각광받는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는 한국의 이야기 였다면, 드라마 파친코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인이 되어 그 아픈 역사를 함께 겪기를 관객에게 기대합니다. 관객 모두 역사의 당사자가 되어 진실을 마주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 드라마는 진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망쳐논 역사에 대한 책임을 묻진 않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의라면, 잘못을 외면하고 부인하는 것은 악惡이라는 주장을 이 드라마는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세계인의 각광을 받으면 받을 수록, 우리 한국인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의 소설이나 드라마가 찬사를 받는다고, 그 드라마에 담긴 우리의 역사가 존경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끄러운 약자의 모습을 드러내며 동정을 얻는 것은 자랑도 아니고 행복한 일도 아닙니다. 어쩌면 한없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단지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우리 후손들을 위한 교훈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적극적으로 응원할 만합니다. 역사는 부끄럽다고 덮어서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그 안에 담긴 우리의 행실을 성찰해 보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한스럽기만한 굴욕의 역사가 그 위에 군림한 자에게는 어떤 역사로 기억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런 역사가 만든 그늘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이제는 그들이 자부심을 갖고 되새길 만한 새로운 한국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