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야외스케치를 하러 화실 밖을 나가면 여러 가지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베트남의 살을 파고드는 뜨거운 햇살, 갑자기 쏟아지는 비,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모기, 파리떼들 등등. 그 중에 무엇보다도 가장 큰 난관은 사람들입니다. 더운 것도 참고, 불편한 것도 참고, 시시 각각변하는 그림자에 당황하면서 그림을 좀 그릴려고 하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뒤에서 옆에서 아이들 얼굴을 쳐다보고, 그림을 가리키며 한 마디씩 합니다. 잘한다, 못한다, 똑같지 않다, 얼마나 배웠냐 등. 그러면 화실에서 당당히 그리던 아이들도 당황해 하면서 자신 없어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통 그림에 집중을 못합니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고흐의 이 일화를 얘기해주곤 합니다.
고흐의 편지 1882년 9월 11일
지난번 편지에도 썼듯이 내가 감자 시장에 갔던 일을 기억하겠지. 그날 스케치를 여러 장 해서 집으로 돌아왔단다. 대단히 매력적인 광경이었어. 하지만 화가들에 대한 이곳 헤이그 사람들의 태도는 형편없어. 예를 들면 내 등 뒤 혹은 창가에 있던 사내가 씹던 담배를 내 캔버스 위에 뱉는 거야. 고역을 치러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어. 이 사람들이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니까. 그들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굵은 선들을 그리고 긁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날 미친 사람이라 생각했겠지. 최근엔 거리에서 말들을 그리느라 아주 바빴단다. 언젠가는 모델로 쓸 수 있는 말을 갖고 싶어. 어제는 누가 내 등 뒤에서 말하더군. “저 화가 좀 봐. 말을 정면에서 그리지 않고 궁둥이를 그리네” 라고. 이 말이 좀 우습게 들렸지.이런 일이, 그러니까 거리에서 스케치를 하는 일이 즐겁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이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집니다.
요즘은 고흐의 시대처럼 사람들이 화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저 신기하거나 뭘 좀 아는 척을 하느라 그러는 것이라고 설명도 해줍니다. 그리고 나면 아이들은 고흐에 대해서도 놀라워합니다. 그 전에 ‘화가 고흐는?’ 하고 물으면 나오는 대답이 ‘귀 자른 화가’ ‘미치광이’ ‘가난한 화가’ 였습니다. 저도 예전엔 고흐가 그저 괴팍해서 귀를 자르고 가난해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다 보면 고흐의 참 모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심 많고 온화한 면도 보이고,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늦게 시작했기에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노력해야 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살짝 오만해지기도 하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편지에는 경제적 후원자인 동생에게 필요한 물감을 대놓고 사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이렇게 썼답니다.
“갈색물감이 있으면 그림이 좀 더 좋아질 것 같다”
참 거절할 수 없게 귀엽게 요구하지요.이번 주는 이해심 많은 고흐처럼, 열심히 연습하는 고흐처럼 종이와 연필 또는 목탄, 아크릴이나 유화 재료를 들고 야외로 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당당히 즐기면서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호 “고정관념깨기-시점”의 한자가 잘못 표기되어 정정합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시점(時點) 이 아닌 보는 시점(視點)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