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그리고 세월이 준 아픔을 순화시키는 시간이 여전히 진행한다는 느낌을 던지며 5월이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5월을 가장 좋아한다. 초봄의 평화로운 바람이 주는 분위기가 삶에 조용한 동력을 던져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겨우내 움츠리던 산하가 기지개를 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우리의 시각을 자연과 주변 사람들에게 돌리라고 조언을 던진다. 또한, 5월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배려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날들이 몰려있다. 가정의 달이라는 큰 타이틀을 시작으로 어린이 날, 어버이 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그렇다.
지난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이었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 한 구절이다.
그런 어버이의 마음을 지닌 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 세상을 모두 얻은 것과 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지만, 그런 행운을 만난다는 것,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쉽게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세월 호 참사 당시 “죽어도 아이들과 죽겠다” 제자들을 구하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남윤철 교사, 박육근 교사, 최혜정 교사 그리고 이지혜 교사와 같이 살신성인의 참 스승이 있는가 하면, 그런 뼈저린 참사를 이용해서 자신의 어설픈 정치적 사상을 주입하려고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문제를 일으키는 정신 나간 여 교사도 있다.
진정한 스승이란 가르침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시는 분을 의미한다.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사범학교라 한다.
사범(師範), 스승 사(師)자에 본보기, 법범(範)자로 이루어진 단어다. 공자가 자신의 제자 안연의 부친에게 안연에 대한 평가를 하며 안연의 지식은 타인의 스승(師)이 될만하고 그의 행동은 타인의 모범(範)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생긴 단어가 사범(師範)이다. 즉 진정한 스승이란 지식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새삼스레 들리는 게 요즘의 세태다.
스승의 날이 5월 15일인 것은 우리 겨레의 참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이 그날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야말로 우리 겨레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시고 어떻게 나라를 위해 일하며 살 것인지 몸으로 알려주신 진정한 스승이 맞다.
나이가 차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면 그때 그 당시 누군가 옆에서 작은 조언이라도 해주었다면 좋았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새삼스레 일어난다.
그럴 때 우리는 요즘 유행하는말, 멘토를 찾는다. 그 당시 누군가 길을 알려주는 멘토가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이 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졌을 것인데 하며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멘토가 유행어처럼 퍼지면서 원래의 뜻과는 조금은 달라진 의미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럴듯한 말 몇 마디를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떠드는 사람을 멘토랍시고 마음에 담아 두다가 나중에 그들의 실상을 알아보고 등을 돌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멘토라는 의미가 더욱 퇴색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멘토로 인정받던 트윗대통령 이외수의 혼외아들 사건, 자칭 촌년이라는 김미경의 논문표절사건,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추앙 받던 고은태교수의 성희롱 사건 등이 그것이다.
그럼 이 참에 멘토라는 의미를 제대로 좀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우스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오디세이아의 노래’ 라는 서사시에서 나온 이야기로, 오디세이아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을 하면서 멘토라는 이름의 자신의 친구에게 자신이 집을 비우는 동안 자신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맡기고 떠났는데 그 멘토라는 친구가 오디세이아가 없는 10여 년 동안 그의 아들을 잘 교육시켰다 하여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 라는 의미로 그의 이름을 따서 멘토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오디세이아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에게 아버지의 친구인 멘토 씨는 누구인가? 바로 스승 아닌가? 아버지 대신 자신을 가르치고 이끌어주던 존경하는 스승. 그리고, 멘토에게 텔레마코스는 자신의 지혜와 경험으로 가르치며 성장시킨 둘도 없는 제자다. 그렇다며 요즘 유행어처럼 사용되는 멘토와 멘티(mentee, 멘토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란 스승과 제자라는 말로 바꾸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는 기본 조건이 있다. 제자는 스승을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신뢰하는 주체로 받아 들여야 하고 스승은 제자를 개인적으로 이해한다는
조건이 따라야 한다. 개인적인 상호 신뢰와 이해가 없다면 어떠한 조언이나 가르침도 제 효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감성적인 강의를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가 왜곡된 멘토가 스승이 아니다. 스승이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합당한 배움과 깨달음을 주며 그리고 스스로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바로 스승이다.
지속적인 관계 유지 없이 때때로 삶의 조언을 던지는 사람은 단지 조언자, 어드바이서(Ad_- viser)일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안연, 공자가 사범이라고 칭찬한 안연은 자신을 가르친 스승 공자를 어떻게 칭송하였는가 한번 살펴보자.
안연은 “선생님의 덕은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게 보이고, 뚫을수록 더욱 굳으며, 바라보면 앞에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덧 뒤에 있다. 선생님께서 차근차근 개발하여 주시어 나를 학문으로 넓히시고 예절로 단속하신다. 학문을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게 하시고, 내 재능을 다하여 쫓아 배우나 우뚝 서있는 듯하며 아무리 따라가려고 하나 따라갈 수가 없구나” 하며 탄식을 했다.
왜 공자가, 50이 넘도록 어느 나라에서도 벼슬조차 한자리 못하고 이리저리 방랑하던 공자가 아직도 세계 4대 성인으로 남아 후손들의 본이 되고 있는지 그 이유가 적혀있지 않은가? 공자 스스로 공부에 정진하며 자신을 단련하고 제자들을 이해하고 가르치며 그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온 탓이 아니던가.
작성자 : 한 영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