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아보는 얘기를 잠시 했습니다.
자신을 찾는다는 말만 해도 마음에 가벼운 흥분이 이는 것을 느낍니다. 그 말 자체가 갖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한국인에게는 특별히 무게가 실린 말입니다. 한국 사회는 옛부터 자기를 드러내는 일을 별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로 그저 남들과 같이 모나지 않게 어울리는 삶을 권유하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상은 우리 교육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한 연령의 아이들에게 모두 같은 학습을 시킵니다. 물론 이런 교육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화된 인재는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과연 그것이 인간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 특질에 합당한 교육제도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따릅니다.
그런 교육 시스템은 나만의 할 수 있는 일을 사라지게 합니다. 아무나 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똑같이 복사된 일꾼만을 양성합니다.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다가 자신과 같은 복사된 인재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러주는 로봇을 키우는 셈입니다.
새로운 직원을 뽑는 면접에서 “왜 이 회사가 당신을 뽑아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자신이 입사를 신청한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알아야 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차별화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아직까지 제대로 답을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정체를 깨닫는 것은 고사하고, 지원한 회사의 일조차 모르고 신청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정신을 차려 남들과 차별화된 자신을 만들면, 사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은 세상입니다.
회사 직원에는 3가지 분류가 있습니다.
첫째, 타인으로 대처 불가능한 자신 만의 일을 하는 직원. 둘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직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맡은 일이 사라지거나 다른 일과 합병되어도 회사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을 하는 직원.
마지막 케이스는 말할 것도 없이 조직의 부조화로 생겨난 잉여인력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조직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퇴장해야 할 사람입니다.
두번째는, 누구에게나 이양이 가능한 일처럼, 자신도 역시 언제나 대체가 가능한 복사 인력입니다. 사회가 제공하는 획일적 공교육을 충실하게 마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한 영역입니다. 주어진 일을 그럭저럭 하지만 스스로 발화하지 못합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종 연줄이 필요하고, 가치보다 귀한 대접을 받으려면 다른 재능을 보여야 합니다. 각종 모임에 발이 닿도록 다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언급한, 타인으로 대체 불가능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직원은, 자신을 알고, 자신의 가치대로 삶을 꾸려가는 사람입니다. 골프로 치자면 자신만의 스윙을 할 줄 아는 일급 선수인 셈입니다.
젊은 시절, 오파상을 하던 때, 아침 5시에 일어나 회사를 나갑니다. 밤 12시가 되어야 퇴근을 합니다. 토요일은 물론이고 일요일도 별일 없으면 사무실에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프로 선수는 누구든지 연습에 목숨을 겁니다. 누가 많이 연습을 하느냐로 실전에서 승부가 갈립니다. 연습을 통해 터득한 자신만의 폼, 자신만의 스윙을 익혀야 합니다.
회사 일을 하는 우리도 프로입니다. 회사 일을 하고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니 연습해야 합니다. 잠을 줄여가며 죽자고 연습합니다, 땀 흘려 준비합니다. 그리고 연습한대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이 자기답게 사는 사람입니다.
한가지 유념한 일이 있습니다.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결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늘 공부를 하듯이, 자신의 정체를, 자신만의 스윙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각고의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스윙을 장착하고 언제든지 그 장착된 스윙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인생을 자기답게 사는 인물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