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설날을 앞두고

설날 연휴를 앞두고 마지막 글을 올립니다. 연휴 4일 간 데일리 뉴스도 쉰다고 합니다. 저도 4일 휴가를 갖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긴 연휴기간 동안 그 누구도 뉴스에 관심을 주지 않을 듯합니다. 

한국 분위기는 어떤가 전하고 싶은데 제가 외출을 하지 않아 잘 모릅니다만, 가끔 스치듯이 들리는 뉴스를 보면 예전, 코로나 이전 같은 분위기는 아닌 듯합니다. 정부에서는 가능하면 고향을 가지말라 하네요. 오늘 환자가 1만명을 넘었다며 경각심인지, 당부인지, 협박성 경고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위기감을 고조시킵니다. 그런데 만성이 되어갑니다. 협박도 경고도 반복되면 둔해지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들 마음에 이미 여러가지 저항이 생긴 탓이라 그렇습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의문, 대선 유불리를 고려한 음모론 등이 그런 저항막 역할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의도가 아무리 순수하다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정치적인 이슈가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들 마음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마음을 열어두어야 하는데 모두들 마음 속에 두꺼운 저항막이 있습니다. 사상적, 지역적, 세대적, 경제적 저항들을 담아두고 들으니 남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저항에 걸리는 소음을 듣는 셈이죠. 그러니 타협도 안되고 대화도 안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점차 그런 저항 스크린이 투명하게 바뀔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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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다시 설날도 바꿉니다.  

아무튼, 설날은 우리에게 참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니 가족들이 모여서 새해를 시작하는 새배를 어른 들에게 올리며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재확인합니다. 지난해 안부도 묻고, 새해 설계도 가족들과 공유하며, 축복의 기운을 서로 빌어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행사날입니다. 

그렇게 모여 서로 세배를 나누며 우리는 자신의 정체를 확인합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는 것이죠. 내가 가족 안에서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재 인식합니다.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으며 아빠가 되고, 삼촌이 되고 또 할아비가 됩니다. 그리고 모친에게 새배를 드리면, 아들의 자리로 돌아오고, 형제 자매들과 맞절을 하면, 형이 되고, 동생이 됩니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자리를 재 확인하는 의식이 세배입니다. 그 세배를 드리고 받으며 그 자리가 불편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다면 그 인생은 그런대로 잘 살아온 것이라 믿어도 될 듯합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존재로 되어있는 지 스스로 돌아보는 귀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날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면 좋은 잣대가 됩니다. 

살면서 하는 일이 모두 다 순조롭게만 흐르지 않지요.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 절망에 빠질 수도 있고, 때로는 기대 이상의 성과에 오만이 하늘을 찌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을 때마다 우리는 삶의 목표가 흔들립니다. 턱도 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어림없이 커지기도 합니다. 이런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삶의 목표를 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가 분명히 정해지면, 인생의 목적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 말은 제 말이아니고 테레사 수녀님의 책에서 본 듯합니다. 혹시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요. 누가 말했든지 한번 되새겨 볼 만한 말이 아닌가요? 

이번 설에는 세배를 나누며, 내가 누구에게 어떤 존재로 남아있는지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설을 의미있게 보내는 일이 되리라 믿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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