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정말 지혜롭습니다. 가끔 생활 곳곳에 묻혀있는 조상님들의 지혜로운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절로 무릎이 쳐집니다 그 중에 하나가 속담 속에 담겨있는 생활의 지혜입니다.
최근 노모를 집으로 모시고 일년 전 노모가 쓰던 방을 다시 점검을 하는데, 아파트의 방 구조가 다 그렇듯이 별로 손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정작 노모를 모시고 보니 한동안 쓰지 않던 방이라 그런지 난방도 잘 안 돌고 어딘가에서 웃풍도 불어 대어 썰렁함을 지나 좀 춥습니다. 노인네를 추운 방에 지내게 해서는 안되죠.
부랴부랴 아파트 관리실를 연락해 난방 순환을 조절하였지만 쉽게 원하는 온도가 안 올라간 채로 계속 헛바퀴만 도는 기분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살펴보니 15년이 된 아파트다 보니 문틈이 벌어진 곳이 있습니다. 다이소에서 파는 문풍지를 구매하여 평소에 보이지 않던 틈새를 돌아가며 막아버리고 나니 집안이 훨씬 따뜻해지고 또 평화로워진 기분입니다.
옛말에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온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사실 이 말은 그 자리에 있기가 몹시 거북하고 불안한 상황을 비유하는 속담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작은 구멍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칼바람처럼 사납다 라는 뜻을 그대로 사용해도 됩니다.
요즘은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방역에 바늘구멍이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는 나라가 많지요. 중국이 대표적인데 어디라도 한 두명의 확진자가 나오면 아예 그 도시 전체를 몽땅 봉쇄하며 바늘구멍을 황소뿔로 막아버립니다. 그들은 바늘구멍에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베트남도 지난해 여름이 그러했지요. 그래서 우리의 지난 여름은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짐작이 가는, 심심하고 기억하기 싫은 여름이 되었지요.
사람사는 일이 다 그런가봅니다. 늘 완벽함을 추구하긴 하지만 완벽하지 못하기에 인간입니다. 완벽하면 신이 되겠지요. 인간은 허점투성입니다. 완벽이라는 말 근처도 못갑니다. 그렇게 너무 허점이 많아서 조금만 완벽해지려는 노력을 하면 세상 일을 아주 잘하는 축에 속하게 됩니다.
일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흥미를 갖고 시간을 들여 남들보다 한 줌의 노력을 더 하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이들이 틈을 무신경하게 남겨둡니다. 그 바늘구멍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무리를 의미합니다. 한번 더 돌아보는 마무리만 잘하면 자신의 명성을 어이없게 쓸어가 버리는 바늘구멍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직 다행스럽게도 회사에서 저에게 주어진 일이 있는데, 편집 마감일에 기자들의 글을 보고 마지막 틈새를 막아주는 역할입니다. 의무는 아니고 오더가 떨어지면 합니다. 그들의 글을 보면 글을 쓴 사람의 태도가 보입니다. 얼핏 멋진 글인 듯 하지만 뭔가 치밀하지 못해 생기는 작은 실수로 글 전체가 상해버리는 글을 보면, 바늘구멍 황소바람이 떠오릅니다. 그 작은 무신경이 그 사람의 근무 평가까지 몰고 옵니다. 세상은 그런 작은 일로 승부가 갈립니다.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지요. 다 작은 돌멩이에 걸려 주저 앉습니다. 그런데 남들은 당신이 주저 앉거나 넘어진 모습만을 보지 얼마나 큰 돌맹이에 걸렸는지는 안중에 없습니다. 그냥 모른채 지나가도 되는 작은 실수라고 항변하지만 이미 넘어진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미 벌어진 실수는 그 일로는 만회할 방도가 없습니다. 다른 일로 만회해야 합니다. 그러니 변명은 삼키고 다른 일로 그 실수를 덮어야 합니다.
커다란 구멍은 누구나 막을 줄 압니다, 쉽게 보이지 않는 작은 바늘구멍을 찾을 줄 알아야 인생의 추위에서 벗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