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좋은 기억만 갖고 살려는데

지난 주말경 서울에서 죽마고우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하긴, 한국에 있는 친구는 모두 만난 지가 일년이 넘었지요. 제가 베트남에서 코로나에 잡혀 지낸 세월이 1년 3개월이니 말입니다.
그 친구도 저를 따라서 한 20년 동안 베트남을 열심히 다니곤 했었는데, 코로나로 요즘 2년간은 통 다니지를 못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열심히 다닌 보람이 있었는지, 최근 베트남에 있는 고객으로부터 대형 오다를 수주하였습니다. 그런 대형 오더를 받았지만 팬데믹 사태로 베트남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인지, 고마움인지, 아무튼 뭔가 비정상적인 세상이 만들어준 묘한 감정을 저를 만나 삼계탕을 한그릇 나누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풀어봅니다.
이 친구 베트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데, 이 친구 입에서 나오는 모든 베트남의 이야기는 전부 착하고, 선한 기억과 감동이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베트남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한 이야기보다는 우리와는 너무 달라서 불편하고 유쾌하지 못했던 경험이 주를 이루는데, 이 친구는 한결같이 좋은 기억만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작은 식당에서 겪은 베트남 소녀의 미소와 서툰 접대 손길이 안쓰럽지만 고맙고, 거리의 카페 주인 아주머니의 미소가 그리 정겹고, 자신의 파트너에 대한 고마운 이야기 등, 온통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기억 만을 이야기합니다.
옛말에, 소인과 대인에 대한 차이를 언급하면서, 소인은 나쁜 기억을 간직하고 대인은 좋은 기억만 간직한다고 하지요. 어떤 대상을 떠올릴 때 소인은 그 대상으로부터 느낀 섭섭했던 경험으로 그 대상을 기억하고, 대인은 행복했던 경험으로 그 대상을 기억한다는 것이죠. 우리친구는 베트남이란 대상을 주로 좋은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친구 역시 베트남의 매운 맛을 왜 모르겠습니까? 베트남에서 남들이 다 겪는 황당한 경험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기억은 휴지통에 넣어버리고, 오직 선한 기억만을 바탕화면에 깔아 둔 것입니다. 멋진 대인 친구죠. 유류상종이라고 그런 친구를 가진 저도 대인의 밥상에 슬그머니 젓가락을 놓아보려 하지만, 매번 베트남에 대한 비판의 글을 쓰던 인간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사실 나쁜 기억을 잊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의 행적이나 실수에 대한 후회도 지우기 힘들지만,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을 만나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그 당시 받았던 불쾌한 기분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피하기 힘듭니다. 참 어리석은 짓이죠. 과거의 일, 지금으로는 전혀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일을 상기하며 예전의 상처를 다시 도지게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잘 알지만, 생각이 그렇게 흐르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고 또 한번 상처를 입고 맙니다. 소인배라기 보다 일반인들이 무심히 반복하는 불행 사이클입니다.
이런 불행 사이클을 반복되는 이유는, 원래 대인의 DNA를 물려주지 못한 조상 탓도 있지만, 마음의 훈련을 게을리 한 탓입니다. 나쁜 기억이 맘대로 떠 다니는 것을 잡아 주어야 하는데 그냥 맘대로 다니도록 내버려둔 것이 잘못입니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장난감을 빼앗기면 그 장난감에 대한 생각으로 투정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때 그 투정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하지마! 하며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얼른 다른 장난감을 주는 것이죠. 이와 같이 나쁜 기억이 마구 떠다니며 심사를 괴롭힐 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며 아무리 마음이 달래봐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그럴 때 바로 대인의 흉내를 내보는 것이죠. 어떤 대상이라도 바쁜 기억이 있는 만큼 좋은 기억도 있는 법이죠. 바로 그 좋았던 기억을 찾아내어 불쾌한 기억을 덮어버리는 시도를 하다보면 언젠가부터는 그 대상의 기억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몇번 하다보면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앞에서 계속 시도했던 좋았던 기억이 자동으로 연결되며 기분을 바꿔줍니다.
헌데, 마음의 정리는 그것으로 되지만 정작 그 대상을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는 그 방식이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 좋은 기억을 그 대상과 다시 공유해보는 것입니다.  용기가 필요하지요. 늘 불쾌하게 생각했던 대상에게 좋은 경험을 상기하는 말을 건낸다는 것은 용기 없이는 안될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용기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요.
그렇게 용기를 내면, 장담하건데,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난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새털같은 마음의 평안, 그것이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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