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견국’이란 단어를 기억하시나요?
개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한때 우리나라는 식견국의 대표적인 나라로 유럽국가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도 식견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 만큼 그 인식 역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좀 억울합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아시아 국가는 개에 대한 인식이 서양과 달라서 그런 문화가 생겼을 뿐인데 유독 한국만 독박을 썼습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많은 국가에서 개가 그저 가축의 하나로 인식되어 온 문화를 서양인들이 그들의 잣대로 동양의 식문화를 죄악시한 것입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면서 한국에서 대한 정보가 세계로 알려지면서 그 와중에 한국에서는 식견문화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럽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콧대 높은 영국인들에게는 한국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발벗고 나서 진돗개를 영국의 세계 명견으로 등록시키고 1992년에 동물 보호법을 제정하며 식견국이라는 인식을 많은 부분 벗겨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도 보신탕으로 이름하던 식견 문화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런 것이 세상이 변화하는 모양새입니다.
한국 식당에서 해산물을 먹을 때 살아 움직이는 게나 낙지류들을 끓는 물에 산채로 넣어 조리를 합니다. 한국인들은 그런 모습에 침을 삼키지만 이런 식문화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끔찍한 모습입니다. 기본적으로 죽음의 고통이 전해 오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낙지가 죽음의 고통 속에서 요리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독물이 없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에 대하여 스위스에서는 2018년 갑각류가 의식이 있는 상태로 끓는 물에 넣는 요리법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고 노르웨이,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호주 등이 그 법을 따랐습니다. 생명을 보는 인류의 사고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개는 그리 고귀하여 먹으면 죄가 되는데, 집에서 키우던 소나 돼지를 식용화하는 것은 왜 당연시 여길까요? 소나 돼지, 닭 등을 공장식으로 키워 식용으로 내보내는 축산업이 도덕적으로 비난 받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요?
현존하는 최고의 석학으로 알려진 유발 하라리 교수는 2015년 가디언지에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다> 라는 긴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현대인의 자의적 도덕적 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개는 보호되어야 하고, 다른 가축은 식용이 허용된다는 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공장식 축산으로 키워지는 가축에게는 그 자리는 홀로코스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떤 동물은 윤리적으로 대하고 어떤 동물은 잔인하게 식용화, 도구화하는 것은, 어떤 인종은 우대하고 어떤 인종은 차별하는 인종 차별과 다른 것이 없다는 사고가 바로 요즘 대두되는 뉴 라이프 트랜드이자 비거니즘입니다. 비거니즘은 이렇게 단지 채식을 한다는 식문화에 머물지 않고 동물 사랑, 환경보호 등 우리 삶에 적용되는 모든 분야로 그 영역을 넓혀갑니다.
이런 변화가 말해 주는 큰 흐름은 동물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식물로 만든 고기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환경을 보호하고 동시에 동물보호라는 윤리에도 거슬리지 않는 대안이 있다면 그 대안을 택하는 것이 바로 비거니즘이고, 이는 우리의 삶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게 만드는 베터 노멀 라이프(Better Normal Life)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의 달라진 삶을 뉴 노멀 라이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새로운 것이 아니라 좀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베터 노멀 라이프가 요즘의 트랜드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삶의 태도가 비거니즘이라 볼 수 있습니다.
비거니즘은 이제 보편적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나만 잘 살자!가 아니라 다 같이 잘 살자!라는 구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뀌는 것은 단순히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고, 가치관, 비지니스, 산업, 정책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클수록 기회와 위기도 많아집니다. 이를 기회로 삼아 베터 라이프를 즐길 것인가, 위기로 주저 앉아 과거의 노멀 라이프에서 살 것인지는, 그대의 선택입니다.
(참고문헌: 라이프 트랜드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