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 생활을 시작하며 외출을 다녀보니 예전의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요즘 한국의 모든 시민들은 자신의 행적이 낱낱이 기록되는 코로나 패스 절차에도 모두들 군소리 없이 모바일 폰의 QR마크를 잘 들이대고 지낸다. 이젠 코로나 이후 이런 데이터를 분석하면 누가 어디를 다니고, 어떤 것에 관심이 많고, 어떤 음식을 먹고, 누구와 만나는지 조차 상세히 파악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거기에 카드 사용 내역을 연결하면 어떤 물품을 구입하는 쇼핑 성향까지 다 파악이 가능하고, 구입하는 책이나 용품을 파악하면 관심사까지 몽땅 다 나온다.
이런 데이터를 수퍼 컴퓨터에 넣어 분석하면 아마도 전 국민의 정치성향부터 가족, 친구를 포함한 모든 인적 네트웍이 파악되고, 개인별로 종합적인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짐작된다. 예전에 말로만, 책으로만 듣던 빅브라더 시대가 팬데믹 태풍에 실려 어느새 성큼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베트남도 예외가 아니다, 베트남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백신 접종을 하면서 낱낱히 분석되었을 것이다.
이제 모든 국민의 개인 정보가 낱낱이 담긴 데이터를 손에 쥔 정부는 전 국민을 부처님 손바닥 위로 모셔온 셈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현상을 그저 시대 흐름으로 보고 자신의 안위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에 별다른 반응없이 넘어간다. 정부가 연일 홍보하는 K- 방역 자화자찬에 취해, 어떤 일이 있어도 시민의식이 높은 우리국민에게는 문제가 아니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엄청난 착각이다.
누군가 국민에게 현실을 알려줘야 한다. 모든 정보를 독점,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현대 정부는 예전처럼 국민의 소리를 두려워하는 곳이 아니다. 그들은 일반 국민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한의 힘을 가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사회의 감시자를 자처하던 언론이 정치에 함몰되어 정치인들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형편이니 이젠 진정한 감시자가 사라져 버렸다. 그 여파로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 위험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반향을 일으킬 사안에 대한 중요한 증언을 할 사람이 갑자기 사체로 발견된다. 자살이란다. 한 두 번이 아니다. 만약 그 사건이 검찰의 말대로 자기 스스로 택한 자살이라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증언을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을 택했다는 얘기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그 공포는 어디서 나왔는가?
지도자를 잘못 뽑아 인구의 3분의 1을 죽이는 캄보디아나, 고작 30만명의 인구를 10만명으로 만든 적도기니 같은 사례가 한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증언을 하느니 차라리 자살을 택하는 공포가 그런 학살정치보다 가볍다고 말하지 말라.
한국은 늘 달걀이 포개진 것처럼 위험한 곳이다. 그런 틈 사이를 톱날같은 惡의 세력이 스며들면 나라의 운명은 땅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이번 선택은 정당이나 인물을 가름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발전을 이룬 것에 스스로 도취된 한국민에게 내리는 시험이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하늘이 규정한 惡 을 용인할 수 있는 권한이 그대들에게 있는가 묻고 있다, 惡을 두려워하는 겸손을 지녔는가, 묻는 것이다.
깨지 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는 거창한 표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상식으로 돌아가자. 단지, 惡을 구분 할 줄 아는 상식 있는 국민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