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힘 중에 하나가 바로 분별력입니다.
술을 마시고 차를 운전하지 말라는 것은 분별력의 상실이 가져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술은 과도한 자신감을 불러 적절한 분별력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분별력을 잃기 쉬운 상태에서의 운전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르는 능력, 혹은 세상 물정에 대하여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것은 正과 不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의 정체나 가치를 제대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사십의 불혹이 이런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이치를 알게 되어 헛된 포장이나 달콤한 말에 현혹되어 판단을 흐리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사십이 넘은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분별력을 갖췄다고 봄이 타당할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런가요?
요즘 한국은 온통 난리입니다. 곧 있을 대선으로 인함입니다.
주요 대선 후보로 나선 인물들이 펼치는 장면들이 그야말로 장관이고, 가관입니다.
사회를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온갖 불의한 죄악을 몸소 실행하거나, 참여하거나, 묵인한 인물들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런 불의한 인간들의 가증스런 미소가 허용되는 몰염치한 사회가 되어 버렸는지 정말 통곡할 일입니다.
한국인들은 분별력이 없나요?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선과 악도, 의인과 악인을 판단하지 못하는 집단적 정신장애자들의 집합체가 한국인가요?
사리를 따질 줄 아는 분별력은 도덕보다 더 중요합니다. 내가 행한 일이 옳고 그름을 떠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아는 것이 분별력입니다. 개인의 분별력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갖는 분별력, 즉 시민의식이 그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떨어져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지역감정이나 진영 논리 혹은 이념적 판단에 치우쳐 관성적인 판단을 내리면 그 사회는 집단적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런 부실한 분별력으로 인한 선거로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은 국민을 우습게 보고, 공권력을 남용하고, 독선적 정치 슬로건과 과도한 포플리즘으로 민중을 우롱합니다.
그런 간악한 무리에게 우롱당한 사회는 분노에 싸여 폭력이 횡행하게 되고, 그런 폭력에 물든 많은 사람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며 우리 사회는 우리자녀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불의한 지옥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분별 할 때는, 내가 부모로써 우리아이를 사회에 필요한 훌륭한 인물로 키우기 위해 권하던 일을 하던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아이에게 형제들과 싸우라고 가르쳤나요? 내가 우리 아이에게 사회에서 행세하는데 필요하면 학력이나 경력을 속여도 된다고 가르쳤나요? 내가 우리 아이에게 화가 나면 가족에게도 쌍욕을 해도 된다고 가르쳤나요? 내가 우리 아이에게 자신의 출세에 방해되는 인간이 있으면 그것이 설사 자식이라도 손절하라고 가르쳤나요?
“생각하지 않은 국민을 둔 정치인은 행복하다” – 희대의 살인마 히틀러가 한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