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3,Saturday

두 선생님 이야기

 

두 사람의 프랑스인에 관해 말해 보려 한다. 먼저 소피.

너희 나라 놀이문화를 다 알게 됐다. 재미있었다. 나도 해보고 싶더라.(하늘 위로 담배 연기를 후 뱉으며) 너도 어릴 때 그런 놀이하며 놀았니?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에 유행이라지만 체감하진 못했는데 아내와 동네 맥주집을 어슬렁거리며 갔다가 우리 주위를 애워싸는 프랑스 아지매들은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놀이들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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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소피가 단연 천진하게 물었다.

너 ‘달고나’ 만들 줄 아니? 나 가르쳐 주면 안 될까?

소피는 앞 집에 산다. 그녀는 자유분방하다. 소싯적부터 술과 담배를 즐겼고 이 세계는 기쁘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언제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어디서나 당당하다. 누구와의 대화도 스스럼없다. 얼마전 그녀는 교수법에 관한 자신의 책을 출간한 뒤 당당하게 우리집 마당 의자에 긴 치마를 펄럭이며 앉아 커피한잔 부탁한다며 슬로 모션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내 봐도 간지가 쩐다. 잡기에 능하고 동양 무술과 가라오케를 즐긴다. 책 출간에 대한 자신의 노고와 자랑스러움을 한참을 얘기하고 돌아가는 그녀에게 나는 ‘다음 책은 유럽인을 위한 호찌민 가라오케 투어 A to Z 를 써보는 게 어때?’ 했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비쥬를 한다.
그렇다, 나는 그녀로부터 볼과 볼을 부비고 쪽, 쪽 소리를 내며 인사하는 프랑스식 인사, 비쥬를 배웠다. 오그라드는 그 인사법을 도무지 따라 할 수 없었는데 나는 그녀가 비쥬를 하려 달려들 때 짐짓 딴채 하며 몇 번이고 외면했던 것이다. 무안해하는 그녀의 눈빛에 자책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수 없이 내 볼을 조심스레 대줬던 것이 이젠 제법 자연스럽게 쪽 소리를 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닭살이 돋지만, 비쥬를 알려준 소피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그녀는 내 인생 최초로 타로점을 봐준 여인이기도 하다. 점이라는 걸 당최 본적도 없고, 봐야 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처음 타로점을 본 사람이 프랑스 아지매로부터였다는 것은 조금은 아이러니다. 타로점을 본 그날, 아내와 나는 여신과 같이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소피 앞에 두 손을 양 무릎 위에 공손하게 얹고 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우리에게 ‘너희들 왜 그리 얼어 있니?’ 소피는 심각할 것 없다며 인생 별 것 없다, 대강 사는 거다며 타로 점괘에 관한 의미두기에 선을 그었다. 나는 그제야 등을 의자에 기댔다. 점을 본 후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말이지만 그녀가 봐준 점괘는 90% 정확도에 오차범위가 10% 미만이다. 올랄라.

그녀의 딸은 아직 9살이지만 자신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아이에 대한 어떠한 제한이나 금지는 없다. 참 그녀의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어린 아이들을 집에 두고 밤새 밖에서 가라오케를 즐긴다. 교문 밖에서 고등학생들과 격 없이 맞담배를 즐긴다. 어느 날은 달이 너무 아름답다며 갑작스러운 ‘보름달 기념’ 초대를 받았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과 새벽까지 둥근 달을 봤더랬다. 프랑스인의 자유분방함과 자부심에 찬 유럽인의 모습을 소피에게서 본다.

또 한 명의 선생님, 사라. 그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녀의 딸이 내 딸과 절친이어서 자주 왕래하다 식사 초대를 받아 갔었다. 그녀는 파리 토박이다. 호찌민에 오기 전, 그녀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늘 수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싱어송라이터인 남편 실방과 파리의 한 성당에서 성당 오빠, 동생으로 만나 이곳까지 함께 했다고 했다. 마른 체형에 몰디브 바다 같은 푸른 눈에 갈색 점처럼 찍혀 있던 그녀의 눈동자를 나는 뚫어지게 봤더랬다. 아름답다기보다 신기했다.

오리지널 빠리지엥이었던 두 사람은 근래 봤던 프랑스인들 중 유일한 공식 부부였다. 이곳에서 만난 대부분 프랑스 부부들은 공식 부부 사이가 아닌 사실혼? 동거? 그 언저리의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식사는 실방 아저씨가 만들고, 테이블은 두 아들이 차리고, 설거지는 그녀가 했다. 훈남인 두 아들과 예쁜 두 딸과 함께였는데 프랑스식 풀코스 식사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들이 내어준 식전 주, 밥 먹기 전 전채샐러드, 퓨전 카레라이스, 사라가 만든 후식, 에피타이저 브라우니까지 그야말로 격식을 갖춘 식사였다.

식사를 하는 2시간 반 동안 고3인 큰 아들, 중2인 둘째까지 대화에 합세하며 버라이어티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새로웠다. 내심 식사 전에 언어의 벽을 어떻게 넘을까 걱정도 됐지만 지구촌 사람들의 대화가 어디 말로만 통했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갔던 새로운 경험의 점심 초대였다. 참 사라는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그녀의 아이 중에 휴대폰을 가진 자녀는 고3인 큰 아들이 유일하다. 그 마저도 올해 들어 팬데믹으로 인해 친구들을 직접 만나지 못해 친구 사이의 벽이 생겼음을 몇 번이고 호소한 끝에
어쩔 수 없이 사줬다고 했다. 그녀는 컴퓨터 게임을 엄격하게 제한했고 유튜브나 SNS, 각종 영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단호하게 떨어뜨려 놓는다. 부부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엄하게 금지한다. 아이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티격태격해야 하루가 간다고 한다는 데 동질감을 느끼는 같은 부모였다.
삶의 방식은 다종다양하다. 정답은 없다. 그저 사는 데까지 다 살아 보는 것이다.

 

장재용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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