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나라에서 인정하는 지공도사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 수중에는 돈이 없다. 실제로 돈이 있는 지 없는지 모르지만 일단 맘놓고 쓸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비록 돈이 많아도 은퇴자금으로 마련한 돈을 수입도 없는 주제에 맘대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시니어들이 만나면 다 돈이 없다. 돈이 없으니 인심도 후하지는 못하다. 그런 모임에 다녀오면 슬퍼진다.
왜 시니어들은 돈이 없을 까?
실제로는 엄살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 살 만하다. 그런데 자꾸 인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젊은 시절처럼 그냥 술기운에 기분 한번 내려고 모임의 식사대를 호기 있게 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지 알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호기는 나중에 자신의 평가에 좋은 작용을 하겠지만 이제 시니어가 되어서는 그 누구에게 받은 평가가 내 삶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국 친구들의 식사대보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돈을 쓰겠다는 이유로 지갑을 닫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 인색해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인정하기는 싫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너그럽고 평화스러운 성품을 갖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품위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 바로 시니어들의 공통된 상황이다. 에너지 넘치는 젊은 시절을 가족을 위해 일에 목숨을 걸듯이 청춘을 소모하며 지내온 시니어들의 처지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왜 시니어들은 수입이 없을 까? 바보같은 질문이다. 바로 일에 손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다른 일을 구하지않는가? 사실 지렛 나이 타령에 녹아난 것이다. 그만하면 이제 됐어라는 포기의 마음이 이미 가슴에 담겨 있는 이상 새로운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일요일, 코로나 봉쇄 이후 오랜만에 만난 빈증 성 친구들과 라운딩을 했다. 그 중 한친구 유난히 전화통을 붙잡고 바쁘다. 우리끼리 하는 말, 저 친구 아직 골프칠 형편이 아닌데 무리하는 거 아닌가? 하며 힌소리를 보낸다. 일해야 할 사람이라면 골프치지 말고 일하러 가란 소리다. 맞다 그 친구는 늘 바쁘다. 이제는 주변 인간 대부분 일을 정리하는 나이임에도 그는 나이에 관계없이 일을 계속 벌린다.
“이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어? “
“뭔 소리여, 일이 있는데 왜 안해. 일하는데 무슨 젊은 근육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자꾸 뒤전으로 가려고 하나? 그냥 나이와 상관없이 사는겨. 젊은 시절 일 하듯이 그냥 일하는 것 뿐이야. 돈도 벌어야지 내 노후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사는데 필요한 것이니까 벌 수 있다면 벌어야지. 그러다 내가 열심히 하다가 손 떼면, 그땐 또 누군가 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동안 하는 것 뿐이야”
아주 단순 명료하지만 심오한 철학이 담긴 말이다.
우리는 그 친구 말대로 열정을 잃은 것이지 일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 수긍이 간다.
이미 마음으로 더 이상 일 할 기회가 없어졌다고 믿고 있으니 일이 눈에 띌 일도 없고, 설사 일이 생겨도 지레 포기하기 일수다. 그냥 모아둔 돈 잘 관리해서 노후에 남에게 손벌이는 일은 말자 정도로 방어하며 살고 있다. 그런 생각을 조금 바꾸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결론은, 그 친구 말대로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노후 준비를 따로 할 것없이, 일이 생기면 마주하고, 돈 버는 기회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일에 관심을 두고 살자는 것이다. 젊은 시절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자세로, 정신적으로 그렇게 무장을 하고 산다면 더 많은 수입의 기회가 생긴다는 얘기가 그 친구의 말에 담겨 있다.
세상은 인간의 사고로 만들어간다. 그 인간 중에 하나가 자신이라면, 자신의 생각이 세상을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게 정신 문제라는 소리다. 젊은 시절의 열정을 기억하고 정신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에게는 노후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노후 생활 걱정을 마시라. 죽을 때까지 일하다 죽을 테니까.
일요일 골프에서 배운 것이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