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말마다 축구 중계를 자주 봅니다.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등이 나오는 게임을 시청하는 것으로 주말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런 게임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순간들이 있는데 처음에 잘 나가다가 게임이 다 끝나갈 때 골을 내주고 이긴 게임을 비기거나 심할 경우 지기까지 하니 참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마지막 순간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해 게임을 놓치고 나면 그동안 잘 했던 모든 수고가 헛 것이 됩니다.
참 애가 타는 일입니다. 왜 그들은 마무리를 못하냐고 질책을 합니다.
남편들이 가끔 선심 쓰듯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부인들은 반가우면서도 한편 불안감을 감추지 않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게 되면 그릇만 닦습니다. 그러나 그릇을 닦는 일은 설거지의 한가지 일이고 그 외에 싱크대의 물기도 닦아야 하고 행주를 씻어서 걸어 둬야 하고, 음식물 찌꺼기도 담아 버려야 하는데 남자들은 대부분 그릇만 닦고 설거지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러면 부인이 다시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 ‘에고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하며 감사는 커녕 공연히 일만 두 번 만든다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마무리는 이렇게 중요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모든 것을 시작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무리를 잘하는 사람만이 달콤한 과실을 즐길 수 있다 ”고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무리란 무엇인가요? 일에 과정과 마무리 라는 구분이 있나요? 사실 마무리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과정의 한 부분 일 뿐입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가 하는 것이 최대의 논쟁거리입니다. 열심히 인생의 강의를 경청하며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해야 우리 삶이 잘 마무리되는지 연구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상에 마무리라는 구분은 따로 없습니다. 특히 우리의 인생에는 더 더욱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운동경기나 설거지에서 마무리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끝까지 열정을 갖지 못 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선수들이 끝까지 열정적으로 게임에 임했다면 결과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설거지 역시 스스로 규정하지 않고 끝까지 성을 다했다면 부인의 핀잔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퇴 후 별난 준비를 해서 지금과는 달리 특별히 잘 살아야 생이 잘 마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은퇴 후에도 정성을 다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눈을 감을 때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무리는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열심히 일에 묻혀 사는 사람에게 친구가 말합니다. “이젠 네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만 두고 노후를 준비해야 하지 않아? 그동안 일만 했잖아, 이제는 돈과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면서 지내야 나중에 후회가 없지 않겠어?” 하며 말입니다.
제법 설득력 있는 그럴듯한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매듭은 없습니다. 오늘까지 죽도록 일하고 내일부터는 죽을 때까지 쉬자 하는 매듭은 절대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마무리의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늘의 삶이 바로 마무리입니다.
그냥 지금까지 살아왔듯이 흐름을 이어가며, 순간의 여유를 즐기며,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바로 노후를 잘 사는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생활에 변화가 생길 수 있지요. 그러나 그 변화 역시 살아가는 과정의 하나이기에 늘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고민하고, 노력하며 살아가면 바로 그것이 인생의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는 버나드 쇼의 비문은 이루지 못함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끝까지 열심히 살았다는 소회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