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상처 입힐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대에게는 필요하다.
서슴지 말고 걸어가라. 그대는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니다. – 에밀 자벨 –
19세기 ‘정상 정복’ 이라는 다소 천박한 욕망을 토대로 진행된 비약적인 등산 발전은 1세기 내에 대부분의 알프스 지역 봉우리들에 인간의 발을 허락하게 했다. 여전히 인류의 대부분이 수렵을 통한 원시적 삶이 지배적 시간이라면 아무런 대가 없이 죽음을 담보하고 오르는 등산이라는 행위는 이전의 인류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수렵의 시대, 그 먼 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중세, 신이 인간을 지배하던 시대는 자연을 두려워하고 신봉하며 대지보다 높은 지경의 산들을 신격화했다면 그런 산들을 인간이 올라가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신이 지배하던 세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근대 인간의 대표적 표상이 됐다. 불행하게도 그 시점은 근대의 제국주의 팽창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아쉽게도 프랑스 산악인 에밀 자벨 Emile javelle(1847~1883)은 이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던 당시 대부분의 산악인들과는 조금은 달랐다. 소규모든 대규모든 소속을 통해 활동하던 세태와는 달리 그는 늘 혼자 산을 올랐다. 그리고 사색했다. 사색이 없는 행동이란 행동이 없는 사색만큼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실천과 사색을 절묘하게 자신의 생애에 조화시켜 낸 사람이 에밀 자벨이다. 그는 등산가이자 문학인이요 활동가이자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풀어내는 산의 묘사는 탁월하다. 죽음을 비켜가는 등반가의 순간 순간을 마치 카메라를 찍듯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려 보여준다. 에밀 자벨의 모든 등반기는 그래서 단순한 결과 보고서라기 보다는 인간 심상의 정밀한 기록이어서 더 값지다. 그가 산에 오를 때마다 꼼꼼하게 그리고 심혈을 기울였던 기록은 그의 사후 16년이 지난 1899년에 한 후배가 자벨의 등반기를 수집해 ‘알피니스트의 회상록(Souvenirs d’un Alpiniste)’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한국어로는 1991년 故 김장호 선생이 한글로 번역하여 ‘어느 등산가의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됐다.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소멸한다. 그런 것은 골짜기의 푸른 주름살 밑 조그만 한 구석이나 작게 희뿌옇게 긁힌 상처에 약간 그 자국을 인정할 뿐이다. 인간은 무서운 공간의 넓이 속에 제 혼자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때 우주의 신비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것, 어떤 종교, 어떤 철학도 우리에게 그 진정한 관념을 줄 수는 없는 것, 뿐인가 눈을 뜨면 뜰수록 그 신비는 커지기만 한다는 다른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회에 사로잡힌다. 이런 무한의 공허를 바라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사람은 일찍이 몰랐던 불안에 떨게 되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애착을 느끼는 이런 아름다운 세계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과연 정말인가, 하고 자문한다. 이 심장, 가슴 속에 불타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이 사랑의 아궁이가 어딘가 암흑으로 사라지기 위해 한때 흔들리고 있는 작은 불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자연을 동경하여 산에 올랐지만 그 산을 두려워했다. 어느 날, 그는 산에 올라 우주의 시간을 생각하고 자신의 미천함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물인 자신이 우주가 빚어낸 산 앞에서 시간 너머의 세계를 가늠하곤 감히 그곳으로 들어가서 비벼대는 일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가 남긴 장자적 사유는 어떤가. 잡새의 소확행 류의 저 차원의 자유를 찬양하던 사람들에게 붕새의 대자유를 설명하듯 소요유를 잡고 있다.
‘아, 인간의 초라함이여. 오, 세계의 왜소함이여, 이런 그림을 앞에 두고 그대들은 무엇인가. 이 빛의 나라, 이 순결의 영토에서 바라볼 때, 그대는 대체 누구인가?’
‘최후의 인간이 최후의 오두막 그 폐허 위에서 멸망할 때 소크라테스의 사상, 셰익스피어의 창조, 라파엘로의 심상, 베토벤의 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동시에 두 개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둘이 다같이 무궁하며 멋지기 때문이다. 두 개의 세계 중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이란 말인가?’
또한 그가 남긴 산과 계곡, 폭포, 광막한 알프스의 준봉들을 표현한 심상은 어떤가. 기가 막힌다. 나는 그가 남긴 주옥 같은 자연에 대한 표현이 산악인의 글에서 나오게 되었음을 깊이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산을 사랑하여 산에서 한 평생 놀다 가고자 한 것이 자신의 유일한 철학이라 말했던 에밀 자벨은 그 깊은 철학적 사유에 더하여 산이 그를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나 한다. 왜냐하면 산이 그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까운 36년 짧은 해를 산과 함께 보내어 산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그의 사후에 펴낸 유고집이다. 주로 그의 등반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는 등반기를 쓴 산악인이라기 보다는 등산하는 문학가에 가깝다. 글은 심오하고 마치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산 한 가운데 있는 듯 깨끗하다.
199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어 현재는 절판된 귀한 책이기도 한데 그래선지 모르지만, 책의 구성은 매우 단조롭다. 더 이상 단조로울 수 없을 만큼 단조롭지만 그 묵직한 단순함 속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말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한 등산가의 강철 같은 신념을 읽을 수 있다. 에밀 자벨 Emile Javelle, 그가 마치 나였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의 표현을 이곳 저곳에 인용하기도 했다. 오늘 죽은 산악인을 다시 살려내 내 옆에 앉혀 본다. 그리고 서로의 고향 산천을 떠올리며 황망한 그리움에 나눈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김장호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그 외로운 봉우리와 하늘로 가야겠다.
묵직한 등산화 한 켤레와 피켈과
바람의 노래와 흔들리는
질긴 자일만 있으면 그만이다.
산허리에 깔리는 장밋빛 노을과 동트는
잿빛 아침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혹은 거칠게, 혹은 맑게, 내가 싫다고는 말 못할
그런 목소리로 저 바람 소리가 나를 부른다.
흰 구름 떠도는 바람 부는 날이면 된다.
그리고 눈보라 속에 오히려 따스한 천막 한 동과
발에 맞는 아이젠,
담배 한 가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곳,
들새가 가는 길, 표범이 가는 길로 나도 가야겠다.
껄껄대는 산 사나이들의 신나는 얘기와 그리고
기나긴 눈벼랑 길이 다하고 난 뒤의
깊은 잠과 달콤한 꿈만 있으면 그만이다.
장재용
dauac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