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지고 갈 짐이 없을 때 인생이 가장 위험할 때이다. 

호찌민 시의 봉쇄가 풀리면서 서서히 일상의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뀐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 지,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머리를 짜내며 힘겨운 출발을 시작한다. 이미 익숙하던 일상이었지만 몇 달사이에 정신없이 변화된 환경은 미래의 불투명성을 부르며 은근한 두려움을 조장한다. 그렇지, 여전히 삶은 고통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티비 프로가 있다. 프로그램을 시작한 초기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듯했으나 지금은 중년 남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그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 장년층 즉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프로 시청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왜 중년의 남자들은 이런 자연인의 삶을 동경하는 듯이 그들이 나오는 프로는 보며 침을 흘리는가? 

이 프로는 2012년에 시작되었다고 하니 이제 10년이 되는 모양이다. 첫 프로가 방영된 것을 기억한다. 산속에서 나체로 사는 어느 남자를 소개한 방송이었다. 아마 그 첫 방송에서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 왜 남성들은 자연인에 열광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벗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제약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 등 모든 삶의 짐을 벗어버린 나신이 되고 싶은 남성들의 숨은 욕망이 그 프로에 눈이 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과연 그런 나신의 삶이 신의 부름에 제대로 부응하면 사는 삶일까 하는 데에는 의문이 따른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짐이 부담스럽다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듯이 훌훌 벗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은 안다. 오히려 짐이 사라질 때야 말로 삶의 의미 역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의 생산자로서 기능이 점점 약화되면 젊은 시절에는 그리 무겁고 벅차던 짐이 이제는 축복이 되고 살아가는 동기가 된다. 지난 번 코로나로 봉쇄가 지속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는가. 단지 경제적 활동 중단에 대한 어려움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허상의 삶에 위기를 느껴 비명을 질러 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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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갈 짐이 없을 때 인생이 가장 위험할 때이다’ 라는 격언이 있다. 무슨 말인가? 우리의 삶에 주어진 짐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발전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천형 같은 짐이야 말로 실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근본적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짐의 무게가 사라질 때야 말로 우리의 삶은 발전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기에 가장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로 이해가 된다.  

그래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삶이 쉬워지는 일이다. 쉬운 삶에서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한계점을 넘지 않은 한가한 운동으로는 운동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일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이 쉬워지면 더 이상 좋은 글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작은 변화로도 우리는 새로움을 경험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자 노력하며 늘 긴장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도공은 이미 망가진 그릇을 손으로 두드려가며 시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그릇을 이리저리 두드리며 시험을 하며 더욱 완성된 그릇을 만들려 노력한다. 병약한 소와 건강한 소가 있다면 어느 소에게 일을 할 쟁기를 물릴 것인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처럼 신은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한다. 

오늘 사는 일이 너무 무겁고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그만큼 그대에 대한 신의 사랑이 깊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신의 축복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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