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 대표 축구팀 이란과의 경기 보셨나요?
결과적으로는 최악은 아니지만 늘 그렇듯이 만족이 안됩니다. 어느 중국 팬에 올릴 댓글에서 그런 말이 나옵니다. “한국 팀의 최대의 약점은 벤투 감독이다.
저 이 말에 동의합니다. 감독의 역할을 선수들의 상태를 꽤 뚫어보는 것입니다. 피치위의 선수가 어느 상태인지 감지하고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야 하는데 우리 벤토, 무사안일 하게 처리하다가 골을 먹고 나서야 뒤늦게 선수 교체를 합니다. 벤투감독은 늘 그렇듯이 선제적 조치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결국 실수를 저지른 후, 교체 명분이 생기니 교체를 단행합니다. 리스크를 부를 행위는 절대 먼저 하지 않습니다. 단언하건데, 그는 절대로 이번 이란 원정에서 이긴다는 생각은 품지도 못하고 그저 지지만 말자는 주문을 외운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긴다는 기대를 하지도 않는데 승리를 가져다 줄 우주의 힘은 없습니다.
국민들이 열화 같은 불만을 무시하고 그런 감독을 몇 년째 신임하는 대한 축구 협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벤토는 우리 국대팀을 성장시킬 감독은 아니지만 시험적 시도로 떼로 욕먹을 짓을 안 하는 감독이니 자신들도 그런 흐름에 함께 묻혀가면 욕은 안 먹는다는 자세 같아 보입니다. 이런 자세를 세상 사람들이 무사안일이라고 말합니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무사안일의 대표적인 말투가 하나 있는데, 고객이나 국민들을 직접 대하는 최전방의 창구에서 일처리에 대한 불평을 하는 고객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왜 저에게 이러세요?” 성희롱 피해자가 하는 소리같이 들리는데 그런 거 아닙니다.
이 말은, 나는 그저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할 뿐입니다. 나에게 뭐라하지 마십시오 하며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책임을 피하고 더 이상의 문제를 만들지 않겠다는 심리적 도피 현상으로 대표적인 무사안일의 자세를 드러냅니다.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고객이 물건이 품질이나 가격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는다면 캐시어는 당장 그런 반발로 고객의 입을 다물게 만듭니다. 뭐 그건 한편 이해가 되긴 합니다. 캐시어의 입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이 응답은 안됩니다. 자신과 회사를 별개로 취급하여 회사의 구성원으로 최소의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정규직 운운을 해서도 안될 일입니다. 그런 응대를 망설이지 않는 안일한 자세로는 케시어 일도 과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민원을 다루는 공관의 창구에서 나온다면 어떻겠습니까? 불필요 한 것으로 보이는 서류를 잔뜩 요청한다고 불평하는 민원인에게 상세한 설명 대신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러세요?” 라고 응답한다면 느낌이 어떻겠습니까? 그냥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나에게 왜 그런 불만을 털어놓고 핏대를 올리냐는 거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오히려 다시 묻고 싶은 생각 안 드나요? 그럼 어디에 물어야 합니까? 어느 교민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그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이런 공무원이 많을수록 나라의 해는 일찍 질 것 같습니다.
“근데 왜 저에게 그러세요?” 혼자 말을 실제로 한번 해보십시오. 맘이 놀랍게 편해집니다. 모든 책임을 벗어 던진 것처럼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덤으로 무례하게 쏘아 대는 상대를 무색하게 만들죠. 그런데 그 후련함을 얻은 대가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책임과 기대, 신뢰가 사라집니다.
무사안일의 자세는 이 세상을 심심하게 만듭니다. 안전하기는 해도 흥미롭지는 않지요. 오래 살 수는 있어도 만족스럽지는 않겠죠. 아울러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삶의 환희도 느끼지 못합니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언제나 선택은 그대의 몫입니다. 신이 부여한 자유의지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