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한주필 칼럼-추석에 찾아온 해병대 순검

요즘처럼 봉쇄로 발이 묶여 있을 때는 문을 두두리는 벨 소리가 정말 반갑습니다. 대부분 잘못 찾아온 배달이라 실망도 크지만 그래도 이런 봉쇄를 뚫고 누군가 내 집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 반가울 따름입니다. 그만큼 수개월 지속되는 봉쇄에 숨이 막혀가고 있는 상황인 듯합니다.

베트남의 전형적 우기답게 비가 왔다 갔다 하던 추석 연휴 어느 날, 오랜만에 햇볕이 반짝이던 정오 무렵,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예전처럼 집을 잘못 찾은 방문객이 아니라 저를 목적으로 찾아온 제 손님입니다.

마치 까막소에서 지내는 사람에게 면회가 왔다는 소리처럼 반가웠습니다.

호찌민 해병대 전우회에서 곳곳에서 묶여 지내고 있는 해병들에게 위로의 추석 선물을 들고 찾아온 것입니다. 와우, 이리 고마울 때가. 한국에서 보낸 마스크 100장과 소주 2병 그리고 우리 해병 회원이 직접 만들었다는 김치를 한 묶음 들고 서슬 퍼런 봉쇄를 뚫고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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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봉쇄기간에 어찌 다니는 겨? “해병 정신으로 검문소를 돌파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라’ 가 저의 해병 정신 아닙니까? 이 정도에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지요.” 뒷 트렁크에 선물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택시를 타고 해병 전우회 후배가 아파트 앞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을 들고 온 해병 후배도 60이 넘은 나이로 혈기 넘칠 젊음은 없지만 해병 정신으로 무장된 그에게 나이가 걸림돌은 아닙니다. 집안까지 방문은 사양하는 터라 아파트 단지 앞에서 선물을 받아 들고 얘기를 나누다 콧등이 찡해집니다.

육군에는 저녁마다 행하는 점호라는 것이 있는데 해병에는 이를 순검이라고 부릅니다. 해병대 군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시간이 순검 시간입니다. 산천초목도 떤다는 해병대만의 순검입니다. 피같이 붉은 명찰에 칼처럼 각이 선 팔각모자를 깊게 눌러쓴 순검자가 내부반을 들어올 때면 모든 내무반 해병들의 눈동자는 정지되고 심장은 고동을 칩니다. 순간 내부반 공기마저 숨을 삼킵니다. 하얀 장갑에 지휘봉을 잡은 손이 눈앞을 지나가다 휙~ 돌아섭니다. 관물대의 정돈이 한 치라도 어긋나 있다면 졸지에 들리는 ‘완전무장 집합 5분 전!’ 이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모든 해병이 연병장에 집합을 완료합니다. 완전무장이란 전투복장에 15킬로에 달하는 전투배낭을 매고 개인 화기를 들고 전장에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무장을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고작 5분입니다. 그렇게 해병들은 항상 전투를 준비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추석을 맞이해 우리 해병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는 차원에서 그 무시무시한 순검을 돌겠다고 해병대 전우회에서 마련한 행사입니다.

예전 험악하던 순검을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빠져봅니다.

베트남이라는 이국에서 단지 같은 군을 복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전장을 함께 누빈 전우처럼 서로를 배려하며 사는 모습이 남 달라 보입니다. 봉쇄기간동안 전우회 단톡방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더 알게 되었으니 나름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 이 지루한 봉쇄를 통해 느끼는 점이 참 많습니다. 대화가 뜸한 가운데 진정한 대화를 발견합니다. 누군가는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누군가는 새로운 친구로 다가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 교민은 모두 이국 땅에서 생전 처음 겪는 황당한 어려움을 함께 공유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더욱 돈독해진 우리의 공감이 이곳에서의 생활에 보다 큰 버팀목으로 다가올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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