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적응의 생물, 인간

출구가 자꾸 멀어져 가는 코로나 정국을 지나며 참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군에 입대했을 때 정식 입대가 아닌, 가 입대로 신체검사를 하며 일주일을 보내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 때 느낀 참담한 감정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방만한 시절을 보내다 엄격한 규율하의 군영에 들어와, 이 생활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황상태에 빠져 거의 초 죽음이 되었던 기억입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 생활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는데, 참 인간이란,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정식 훈련복이라도 차려 입고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하게 되니 그런대로 적응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던 생각이 납니다. 고작 몇 주 만에 그 생활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이번에 코로나 봉쇄가 시작되고 보름만! 하던 것이 한달이 되고, 두 달이 넘어 석 달, 넉 달 째가 되는데, 처음 심정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백팩 하나 둘러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비틀대는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버티고 있었는데, 그렇게 3-4달이 되니 이제는 뭐 그런대로 익숙해져 그냥 지낼 만합니다. 잡지가 못 나오는 대신 씬짜오데일리 뉴스라는 것을 만들어 매일 발행하며 지리하던 시간을 일로 채워가며 그런대로 버티며 살아갑니다. 백신을 맞고 나서 기뻐하던 생각을 하면 참 어이가 없습니다. 백신이라는 것이 우리 생활에 그토록 필요한 가치로 들어왔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자신에게 또 놀랍니다. 이미 우리는 이런 생활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만 그런 게 아니더군요. 베트남 인들의 적응력은 상상을 뛰어 넘습니다. 이번 사태로 직장을 잃고 수입도 떨어진 많은 베트남인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 갈 수 있는지 불안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런 황당한 봉쇄사테에도 별다른 불평도 드러내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봉쇄의 생활에서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그 가운데서도 밥벌이를 만들어갑니다. 시골에 있는 친지들에게 연락하여 채소나 과일 류를 받아서 봉쇄로 식품 구입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게 판매를 합니다. 이제는 주변의 베트남인은 거의 모두 이 일을 하는 듯합니다. 구입자보다 판매자가 많을 지경입니다. 아무리 식료품 구입을 위한 외출마저 통제를 해도 돈이 없어서 못 사지, 방법이 없어 식품을 못 사서 굶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살아갑니다. 아마도 베트남 정부도 자국민의 놀라운 적응력을 믿고 있기에 이렇게 봉쇄를 계속 늘여가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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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의 변화에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합니다. SNS는 더욱 활발해지고 화면을 통한 대화가 늘어갑니다. 평소에 별로 교감이 없던 사람들마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관계유지에 더욱 신경을 씁니다. 그런 교감을 통해 서로를 더욱 알아가며 관계가 깊어 갑니다. 이렇게 혼자가 되어 외로울 때 누가 위로가 되고 어떤 친구가 마음을 써주는지 알게 되는 것도 코로나로 얻은 귀한 부산물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은 확실히 적응의 생물이 맞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법을 찾아내고 또 만들어 갑니다. 이제 별다른 걱정이 없어집니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이라는 새로운 시대에도 우리는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하며 또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휘영청 차오른 저 큰 한가위 보름달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기울어 질 것을 알고 있듯이, 우리 삶에도 고된 시절이 오면 또 즐거운 시간이 다시 온다는 것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제 바닥을 쳤으니 다시 올라 갈 일만 남았으려니 합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간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세상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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