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쯤 자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컴퓨터 도스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습니다. 막 컴퓨터가 도입될 당시였죠. 당시에는 업무에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해 도스를 배워야 했습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하여 도스로 컴퓨터를 부팅하여 하드도 없는 컴퓨터를 돌려서 간단한 업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 윈도우가 나오면서 도스는 사라졌죠. 지금 와서 생각하니 공연히 배우느라고 시간과 돈만 날렸습니다. 잡지를 만들면서 홈피를 만들고 운영하는 게 맘에 안 들어 내 손으로 직접 해보겠다고 코딩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고는 조금 듣다가 말았습니다.
대학을 나와 수입 오파상을 시작하고 꽤 잘나가다가 IMF로 한방에 전부 날렸습니다. 다행이 베트남에 자수공장을 투자한 것이 있어 그것으로 먹고는 살다가 20년전에 잡지를 시작하면서 그 자수 공장 역시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교민잡지를 만들며 살다가 이제 코로나로 거덜이 날 판입니다.
가만히 보면 뭐하나 제대로 완성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하다가 말았고 하나도 완성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리로 이제는 은퇴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제 인생은 그 자체가 미완성인가요?
은퇴라는 글을 며칠 전에 올리면서 왜 우리는 은퇴를 두려워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무리 은퇴는 새 출발이라고 되뇌어 봐도 은근히 밀려오는 두려움은 지우기 힘듭니다. 아마도 이제 새로 시작해서 완성시킬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은퇴를 하면 다 손을 놓고 그냥 지내죠. 이 나이에 내가 뭘 시작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언제 결과를 봐, 하며 말입니다.
흔한 말로, 인생을 하루로 치면 이미 오후 5시는 넘었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해야 할 시간인데 뭘 새롭게 시작을 해, 언제 끝내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한편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실제 완성품이나 완성작을 만든 것이 얼마나 있나요? 한 개라도 다시는 손볼 필요 없는 끝마침을 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하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완성도 대부분 자의적 판단일 뿐이지, 객관적으로 본다면 아마도 그 누구도 완성이라는 판정을 내린다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여성작가가 라디오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나이가 좀 된 미혼의 여성 작가인데 화제가 되는 책을 써서 인터뷰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질문자가,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과연 인생을 알고 글을 썼다고 얘기할 수 있나요? 하는 식의 질문을 합니다. 결혼도 못한 여자가 무슨 인생을 안다고 그런 책을 쓰는가 하는 힐난에 가까운 무례한 질문으로 보입니다. 이 작가 대답,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을 하며 사는 인생을 알지 못하고, 그 반대로 결혼을 한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의 생을 알 수가 없지요. 어느 쪽이 완성되고 어느 쪽이 미완성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두가지를 다 경험하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어차피 한가지를 선택하여 사는 것이 인생이지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미완성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문현답입니다.
완성과 미완성은 어떻게 구분되나요? 그 개념은 그저 마음에만 담겨있습니다.
베트남정부의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성된 방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자꾸 완성된, 보다 완전한 방역을 찾으려 하니 일이 이리 꼬여갑니다.
세상이 계속 변화하는 한 우리는 완성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신이 시간이라는 것을 만들어 우리에게 완성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만물이 변화하는 한 모든 것은 영원히 미완성이고, 우리도 그런 미완성의 상태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니, 완성하지 못함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는 완성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숨을 멈출 때까지 시작해야 합니다. 은퇴라는 것도 어찌 보면 마감이 아닙니다. 지난 일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또 다른 미완성을 만들어 가는, 우리가 평생동안 늘 해왔던 바로 그런 일상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