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코로나에 몸도 마음도 포위되어 버린 형국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젯밤에 사라졌던 태양이 커튼 사이로 얼굴을 비치며 노크를 하지만 별로 반갑지 않습니다. 뭔가 할 일이 있어야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 얼굴이라도 씻으러 갈 터인데 맨날 휴일이니 참 고욕입니다.
오늘은 또 어떤 일로 시간을 보낼까 하는 궁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근데 사고가 막혀버렸습니다. 코로나의 함정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모든 생각이 온통 자유를 앗아간 이 코로나 사태에 대한 사고에 잡혀 있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어올 여지가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화장실을 들려 변기에 주저앉아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쉽니다. 우울한 기분을 털어 버리기라도 하듯이 옷을 훌렁 벗고 샤워장에 들어가 찬물을 머리부터 쏟아내 봅니다.
울 집의 유일한 동반자 냥이 녀석이 샤워장 문 앞에서 집사의 벗은 몸을 무표정하게 올려 봅니다. 저 녀석도 오늘 하루를 어찌 보낼 지 궁리하는 모양입니다.
한국에 있는 죽마고우가 연락이 왔습니다. 그저 안부 연락입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베트남의 상황을 무심히 듣고 있던 친구가 하는 말,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냐? 그 나이에 이국에서 헤매지 말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와 새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 죽마고우 답게 직설적으로 엄중한 현실을 서슴없이 지적합니다.
그의 냉혹한 조언이 할말을 잃게 만들지만, 그의 말 속에서 들린 한 단어가 마음 한 곁에 충격을 줍니다. 새 출발!
은퇴가 새 출발이라는 생각이 참으로 참신합니다. 그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넋 놓고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은퇴가 되는 셈입니다.
참신한 사고가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은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한 윤곽이 잡히지 않으니 섣불리 실행에 옮기기 힘들었는데, 새출발을 한다고 하니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래, 새출발을 하는데 뭘 망설여, 한시라도 빨리 결행하는 게 좋은 일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이리 가볍습니다. 말 한마디 바꿨더니 그간의 삶의 행로마저 바꾸려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어떻게 보면 말 장난 같은 일인데도 표현하는 말의 차이에 의해 느끼는 감정이 천지 차이가 납니다.
흰 머그컵에 커피를 가득 채우고 천천히 마시며 생각을 해 봅니다.
너무나 감사할 일은, 어느 영화의 주인공처럼 지난 5월 봉쇄가 시작하기 전에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혀 명을 달리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않고, 은퇴를 하고 새출발을 할 수 있다는 기대로 새로운 삶을 구상할 수 있는 시간과, 나이 칠순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무모함을 감수할 용기와, 봉쇄가 풀리는 대로 골프장을 나가 멋진 스윙을 하고 야 말겠다며 빈 스윙을 힘차게 해대는 건강한 신체를 주신 신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곧 다시 일어나 어떤 바이러스도, 어떤 정부도 막지 못할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심장이 뛰는 싸움’ 을 한판 벌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