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군주로 기록 되었습니다. 이는 전쟁에 승리한 신라와 당이 역사를 기록하기였기 때문입니다. 삼천궁녀와 낙화암 이야기는 당시 기록에는 없습니다. 백제멸망 천년 후 조선시대 유교사상에 젖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면서 만들어낸 남성 중심 사회의 결과물 입니다.
구석기 시대의 모계사회
“소서노”, 필자가 접한 역사인물 중 참 신비한 여성입니다. 어떤 학자는 소서노의 업적에 대해서 고대사회의 흔적인 모계사회가 남긴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인류 역사는 고대에서 중세까지 여성의 사회활동을 극히 제한하였습니다. 모계사회는 구석기 시대에만 존재 했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정착된 주거지가 없고 동굴 생활을 했는데 집단 거주를 합니다. 결혼제도가 생기기 전이라 수십 명의 남녀가 혼숙하다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는 엄마만 알고 아버지를 모릅니다. 동굴에 사는 모든 남자들은 아이들의 아버지이고 모든 아이들은 동굴에 같이 사는 남자들의 자식입니다. 당시에는 결혼 제도가 없었습니다. 학자들은 미화하여 구석기 시대의 결혼제도를 군혼이라 (무리혼) 하지만 수십 명의 남녀가 자유롭게 잠자리를 가져 2세를 생산하므로 결혼과 가정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가족 중심은 어머니 입니다. 아이들 양육과 교육도 어머니 몫 입니다. 따라서 남자들은 가족의 구성원에서 제외됩니다. 남자는 양식을 구하기 위해 사냥했고 여자들은 열매와 뿌리식품 등을 채집하여 양식으로 충당하고 아이들의 가장 역할까지 하므로 자연히 여성 중심으로 생활합니다. 그래서 구석기 시대를 모계사회라고 합니다. 이렇게 수백 만년 동안 우리 인간은 모계사회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 후 농경생활을 시작하는 신석기 시대에는 움집이 생겨 정착생활을 합니다. 집이 생기자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같이사는 일부일처제 결혼 제도가 생깁니다. 이때부터 남자들은 가족의 중심이 되고 모계사회는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신석기시대 5천년 동안은 빈부격차 없는 사회, 계급 없는 평등사회가 됩니다. 이러한 이유는 잉여 생산물이 없으니까 부자도 없고 권력자도 없는 평등 사회 또한 축첩제도 없는 남녀평등 사회가 됩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모든 부부가 열심히 일해도 자기 가족의 먹는 것 해결도 어려우니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습니다. 즉 절대 빈곤상태의 평등사회 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등 사회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업과 목축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부자가 생깁니다. 부자들은 주위의 사람들을 모아 힘을 가집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람을 모아 힘을 가지니 권력자가 생깁니다. 권력자는 청동으로 무기를 만들고 이웃 마을을 정복하여 재물을 약탈합니다. 또한 정복 당한 이웃 주민을 노예로 만듭니다. 이렇게 계급제도와 권력자가 생깁니다. 권력자는 수십명의 여자를 원해 일부 다처제의 결혼제도가 생깁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에는 철저한 남성 권력자 중심의 사회가 됩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가 발달하면서 생기는 부작용 입니다. 청동기 시대 2천년 동안은 모계사회 풍습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두 개의 국가를 창업한 여성 ‘소서노’
고구려를 남편에게 양보하고 두 번째 창업한 백제는 아들에게 양보한다.
소서노는 초기 철기시대를 살았던 여성입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신석기시대 5천년 청동기시대 2천년 합계 7천년 동안 모계사회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따라서 소서노가 살던 2천년 전에는 남성 권력자 중심의 사회 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소서노는 국가창업 그것도 두 번이나 국가를 창업한 여성입니다. 세계 역사에 소서노 이 외의 여걸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소서노와 질적으로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권력을 차지하는 경우는 뛰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권력자의 총애를 받아 이미 만들어진 권력을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하지만 소서노는 만들어진 권력이 아니라 자신이 벽돌 쌓듯이, 하나 하나 계단을 밟고 권력을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국가를 세우고 창업한 국가의 기반을 다집니다.
하지만 남녀 차별의 벽에 부딪혀 소서노는 자신이 창업한 고구려를 남편에게 양보하고 두 번째 창업한 백제는 아들에게 양보 합니다. 또한 소서노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삼국사기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고 다른 기록들을 참고하여 소서노를 추적 하겠습니다. 물론 삼국사기 내용 중 신뢰하기 힘든 내용은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정 하겠습니다. 삼국사기에 소서노 출생 기록은 없고 사망 기록은 있습니다. BC 6년 소서노는 61세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산하면 소서노는 BC 67년에 출생 했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소서노의 아버지 연타발은 (연타취발 이라고도 함) 졸본(홀본) 지역 왕이라는 기록과 지역유지 혹은 지역 권력자라는 두 가지 기록이 있는데 그 중 지역 권력자라는 설이 다수 설이므로 필자도 지역유지 설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 하겠습니다.
연타발의 둘째 딸 소서노는 십대 후반에 북부여 해부루 왕의 서손인 부여우태와 결혼합니다. 결혼 후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는데 남편 우태가 곧 사망하여 소서노는 20대 중반에 과부가 됩니다. 과부가 된 소서노는 부여에서 도망친 주몽을 만납니다. BC 38년으로 추정되는 20세 주몽과 29세의 소서노 두 사람의 만남은 우리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됩니다.
주몽을 본 소서노의 아버지 연타발은 주몽의 재능이 뛰어난 것을 간파하고는 과부가 된 둘째 딸 소서노의 배필로 점 찍었다고 합니다. 소서노를 만날 때, 주몽은 이미 부여에서 결혼하여 임신한 예씨부인이 있었습니다. 당시 주몽은 임신한 부인을 두고 도망칠 정도로 급한 상황이었죠.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의 이주 세력은 힘 있는 졸본 지역의 실력자 연타발의 도움이 절실했고 연타발 역시 능력있는 주몽과 결합하는 것이 세력 확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소서노보다 주몽의 입장이 더 절실 했을 것 같습니다. 아들이 둘이나 딸린 9세 연상의 과부를 부인으로 맞이한 사실은 주몽의 절박함과 맞닿아 있습니다. 소서노는 전 재산을 걸고 주몽을 지원합니다. 주몽과 소서노가 결합한 이듬해 압록강 북쪽 졸본 지역을 근거로 국가를 창업합니다. 하지만 건국 도중에 연타발이 사망하고 소서노는 남편 주몽을 연타발의 후계자로 만듭니다. 대신에 소서노는 자신의 아들인 비류가 주몽 다음의 후계자로 약속 받은 듯 합니다. 고구려 건국은 소서노의 힘 없이 불가능하므로 현실을 인정한 두 사람의 타협이라 느껴집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주변국을 흡수하여 국력을 증강시키는데 이번에도 소서노 집안의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힘을 발휘합니다. 고구려 창업 후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이 어느 정도 끝나고 후계자 선정 문제가 대두될 때 주몽은 후계자 선정을 자꾸 미룹니다. 소서노의 생각은 어차피 자신의 아들이 후계자로 선정될 것으로 믿고 기다립니다.
하지만 주몽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사람을 부여로 보내 첫사랑 예씨부인과 아들 유리를 찾습니다. 예씨부인과 아들 유리를 만난 주몽은 유리를 후계자로 선정합니다. 주몽의 결정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 두 아들에게 말합니다.
“대왕께서 곤궁하던 시절에 나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자리에 올랐건만 우리를 박대함이 이와 같으니 우리도 살길을 도모함이 좋겠다”
그러나 주몽은 이러한 소서노의 반발을 예상한 것 같습니다. 주몽은 사망 6개월 전 아들 유리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후일을 대비합니다. BC 18년 주몽은 40세의 나이로 사망 합니다. 죽기 전 군권을 맡긴 부분노와 책사 소실묵거에게 유리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21세의 나이로 고구려를 건국하고 여걸 소서노와 고구려를 다진 주몽은 분쟁의 불씨를 남긴 채 사망 합니다.
주몽이 고구려 창업의 동반자 소서노를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록이 없어서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1. 친아들 유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욕망
2. 첫사랑 예씨부인과 소서노 중 여자다운 예씨부인이 더 주몽의 마음을 차지한 것 같습니다
3. 창업의 동반자 소서노는 마음 편한 아내 이미지 보다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낀 건 같습니다.
하지만 주몽의 첫사랑 예씨부인은 결혼 후 신혼 6개월간
남편 주몽과 함께 살았고 주몽이 죽기 전 6개월 함께 했으니 예씨부인도 여자로서 행복은 잠깐 느끼다 끝난 슬픈 여인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고구려 건국의 주역 소서노는 후계자 선정 약속을 어긴 주몽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고구려를 떠납니다. 남쪽으로 내려간 소서노는 두 번째 국가를 창업하는데 백제의 건국입니다. 세계사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두 번 국가를 창업한 소서노 이야기 다음 시간에 살펴봅시다.
전 종 길
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前 (주)대은영상 대표,
現 아마추어 사학가 활동,(주)하나로 축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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