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는 왜 쿠데타가 일어났을까?
2008년에 제정된 헌법이 내포하고 있는 불완전한 민주주의와 특이한 권력 분점체제 원인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 갑자기 아웅 산 수 치 고문이 감금당하고, 윈 민 미얀마 대통령이 군부에게 구금되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그리고 미얀마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 상급대장이 이끄는 군부는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인터넷을 통제하면서 전권을 장악했다. 미얀마의 국부 아웅 산의 딸인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집권 국민민주연맹(NLD)이 압승한 2020년 11월 총선 결과에 군부가 불복하며 일어났다.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 이전부터 이미 정부운영에 대하여 상당한 권한을 쥐고 있었고, 문민통제가 부재했다. 이로 인하여 1988년 쿠데타에 이어 2021년 쿠데타에서도 별다른 저항이나 무력충돌 없이 소규모로 굉장히 쉽고 빠르게 쿠데타에 성공하면서 미얀마의 불안정했던 민주주의 정권은 5년 만에 무너지게 되었다, 이번 뉴스포커스에서는 왜 쿠데타가 발생했고, 시민들의 저항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흔들고 있는 미얀마사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봤다.
원인 1. 강력한 군부와 허약한 민간정부
미얀마에서 왜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는지를 분석하려면 1962년부터 50년이상 이어 져온 강력한 군부체제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도 30년에 걸쳐온 군부독재를 경험했지만, 미얀마 군부의 영향력은 한국의 군사정권시절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경제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선 현행 헌법인 2008년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미얀마 군이 스스로 임명한 사령관이다. 그리고 통수권자는 군부가 과반수로 구성된 국방안보위원회가 선택한 사람만 후보자가 될 수 있고, 대통령은 후보자 외 인물을 임명할 수 없다. 즉 대통령의 문민통제 기반인 인사권이 사실상 불인정되는 것이다.
아울러 대통령과 총리 등의 민간정부 인사는 군통수권이 없기 때문에 군부에 명령할 권한이 없다. 특히 2010년대 미얀마에 자유선거를 재도입하는 과정에서 만에 하나 있을 개헌을 막기 위해 개헌을 저지할 만한 의석 25%를 군부가 임명한다는 조항이 있으며 심지어 헌법 40조에서는 비상사태시, 군 총사령관에게 권력을 인계할 수 있다고 명시해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조항이 신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헌법의 특성을 이용하여 미얀마 군부는 민간 정치권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할 때마다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쿠데타 위협을 가하여 정부의 행동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2015년 민주화 이후에도 사실상 정국의 주도권은 군부에 있는 상황이었다.
원인 2. 선거패배
2020년 11월 실시한 총선에서 미얀마 시민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아웅산 수 치가 이끄는 집권당 국민민주연맹(NLD)는 하원(국민대표원) 의석 440석의 58.6%인 258석을, 상원(민족대표원) 의원 224석의 61.6%인 138석을 각각 차지했고. 미얀마 군부의 후원조직으로 시작해 2010년 정당이 된 연방단결발전당(USDA)은 하원에서 26석, 상원에서 7석으로 각각 4석을 잃고 더욱 위축되는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특히 미얀마 군부에서 충격적인 사실은 2020년 총선에서 군부에게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도 집권당 NLD에게 참패를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집권당이 새로운 의회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헌법개정을 약속했고, 의석을 기반으로 밀어 붙일 수 있는 상황이 생겼다는 점이 기득권을 빼앗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원인 3. 아웅산 수치와 군부의 관계 변화
2015년 NLD 집권이 후 여당고문인 아웅산 수치와 군부와의 관계는 공생 관계였다. 군부는 복잡한 내정을 이용해 계속 기득권을 누려왔고. 수 치 여사도 민주화 이후 군부와 결탁해 로힝야 탄압을 변호하며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군부의 악생을 변호하는, 서로 악어와 악어 새의 관계로 공생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19년 11월 총선의 결과로 NDL이 83%대의 득표를 하자, 수치의 권력이 절정에 도달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즉 민심을 확인하고, 군부를 누를 수 있는 차기 권력을 쟁취한NDL군부와의 권력 균형을 깨고 민간 정부가 수준이 되면서 아웅 산 수치를 지지하는 민간 정치인 등이 현재 군부가 상·하원 의석 25%를 할당 받고 내무·국방·국경 경비 등 치안과 관련한 3개 부처의 수장과 강제 할당 국회의석을 허용한 현행 헌법을 개헌을 주장하고 이를 실천하려 하자 미얀마 군부 권력을 축소화에 대한 갈등으로 빛어진 사태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군부가 쿠데타 직전 민간 정부에게 자발적인 의회 해산 후 군부 주도하의 재투표를 실시할 것을 강요하였다는 점, 그리고 선거 직후부터 유권자 수 3700만 명을 기재한 유권자 명부가 실제와 860만 명이 차이가 난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점이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알려져 있다.
왜 시민들은 쿠데타에 저항하는가?
미얀마 군부는 역사적으로 지난 50년간 군부에 저항하면은 무자비한 학살을 통한 진압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88년,
07년, 21년 미얀마 민중은 주기적으로 저항했다. 특히 금년에는 특수부대까지 투입이 되었는데도 저항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통치신뢰를 잃은 군부
미얀마인의 대부분은 지난 50년이 넘는 군부통치 속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2015년 민주화 이전의 군부통치는 가난과 고난의 가슴 아픈 기억이다. 이러한 국민 정서가 바로 선거를 통한 지지율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유신정권시대에는 1/3의 의석이 배분되었지만, 나머지 의석을 두고 벌어진 선거에서도 1973년에는 146석 중 73석(50.0%), 1978년에는 154석 중 68석(44.2%)을 차지하는 등 어느 정도 지지기반을 유지하고 있었고, 군부세력이 경제를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반면, 현 미얀마 군부는 직전의 두 차례 선거에서 득표율은 6~8%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군부는 쿠데타 이전까지 배정된 1/4의 의석으로 개헌에 대한 거부권만 간신히 유지해왔던 실정이다.
또한, 반공주의나 산업화처럼 국민들을 유인할 이념이 있던 과거의 한국과는 달리, 미얀마는 전시상태도 아니며, 2015년 민주정부하의 미얀마 경제는 군부 통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힘을 보고, 믿고, 이어 가고자 하는 민심을,
군부의 쿠데타 세력으로 억압하여 군부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으로는
미얀마 국민들을 설득 시킬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가 중요하다. 왕 같은 절대주권자가 존재하지 않기에 선거가 정부가 존재하는 명분이자, 이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0년 총선은 결과가 매우 명백했다. 수치여사의 NDL은 득표율 83%였고, 군부정당의 득표율은 6%정도였다. 즉 자발적인 군부 지지자는 이해관계 당사자를 제외하면은 매우 낮은 수준인 것이다. 모두가 싫어하는 권력이 절대적인 민의를 무시하고 선거 결과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분노가 쿠데타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최소 50명 이상이 사망하고, 특수부대가 투입되는 (3월 9일 기준) 상황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