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돌아왔다! “내 모든 영혼, 미국 통합하는데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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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의 대통령 리더쉽의 성공조건은, 지도자의 자질을 비전으로 제시하는 능력, 의사소통 능력, 정치력, 공감능력 등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미국 등의 서구형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고전적인 잣대가 한 정치인을 국가의 지도자로 이끄는 절대변수는 아니다. 일반론에서 강조하는 리더쉽 스타일이나 자질론 만으로 오늘날과 같은 전환기에, 보편적 자질을 강조하는 입장보다는 시대상황에 걸 맞는 리더쉽의 덕목과 자질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팬데믹으로 인해, 엄중한 국내, 외적 상황에서 정치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해졌고 리더쉽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민이 싫어하더라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면 담대한 의지를 갖고 국민을 설득하여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원한다. 저평가된 인물이었지만 과거 어는 지도자보다 심화된 양극화 사회속에서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여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나갈 것이라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세상의 이 목이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1. 조 바이든은 누구인가?
전세계 최강 권력의 지도자인 미국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부로 바뀌었다. 4년만 미국을 통치한 아웃사이더인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4년만에 민주당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조 바이든 (Joe Biden) 대통령은 1942년에 태어나, 1972년부터 40년 이상 상원의원 및 부통령, 그리고 민주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을 3번 참가했던 미국정치의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바이든은 노이즈 마케팅의 귀재인 트럼프와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그는 평범한 중산층에서 태어나, 자수성가로 정계에 입문한 뒤, 의회에서 평생을 보낸 온건중도 성향의 정치인으로 그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은 아니지만 소싯적부터 명확한 정치적 야망과 그 뜻을 이루기 위한 끈기의 행적을 통하여 4년도 하기 어려운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40년간 유지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집안배경
바이든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프랑스계 혈통이며 종교적으로는 미국 역사상 두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다. 아버지 조셉 바이든 시니어(Joseph Biden Senior, 1915~2002)와 어머니 캐서린 바이든(Catherine BIden, 1917~2010)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었다. 도시공학자였던 그의 증조부 조지 T. 바이든(George T. Biden)이 부를 쌓아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까지 지냈고 이후에도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바이든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다가 1950년대조
바이든 시니어는 일자리를 찾아 펜실베이니아 주를 떠나 델라웨어 주 월밍턴으로 이주했고, 여기서 보일러 청소부로 일하다 중고차 중개업자로 자리를
잡으면서 형편이 나아졌던 미국의 전형적 중류층 집안 출신이다.
성장기
어럽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진 중류층 집안에서 자란 조 바이든은 어렸을 때 말더듬증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동생 밸러리 바이든은 오랜 시간 동안 조 바이든의 옆에서 조의 연습을 들어주면서 말더듬증을 극복하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조 바이든이 고등학교때 처음 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때 그 옆에서 열심히 선거 운동을 열심히 돕기도 했다. 델라웨어 주 클레이몬트에 있는 가톨릭계 사립학교인 아키메어 아카데미(Archmere Academy)로 진학하면서 외모와 더불어 인기가 높았으며, 학교에 재학하면서 미식축구를 즐겨했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농성 운동에도 참여했다. 1961년 델라웨어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전공은 역사학과 정치학 (복수전공), 부전공은 영어로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아 평균 C학점, 688명 중 506등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벼락치기에 재능이 있었는지 시라큐스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 재학 중에 인용을 날림으로 하다가 표절 시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대학에 다니면서 고등학교때 하던 미식축구를 병행했으며 델라웨어 파이팅 블루헨즈(Delaware Fightin’ Blue Hens)에서 프로선수로 활약했다. 대학졸업 후 로스쿨 진학중 첫 아내인 네일리어 헌터(Neilia Hunter)를 만나 결혼했으며, 대학 및 대학원 재학 사유로 5차례 입영연기를 한 후 1968년 4월 5일, 선병검사에서 천식 때문에 면제를 받아 베트남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정치활동 | 지방의회에서 상원의원까지
바이든은 대학재학때부터 흑인민권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시위에 참가했으며 로스쿨 재학때 결혼을 허락받았을 때장인에게 변호사가 된 후 정치를 하고 대통령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정치적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1969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고 힘있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에 자괴감을 느껴 국선변호인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국선변호인 활동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지역 로펌에 재취업하게 되는데, 이곳을 통해 민주당 내 개혁을 다루는 포럼에 참여하게 된 바이든은 이 모임에서 델라웨어 뉴캐슬 카운티 출마 권유를
받게 된다. 당시 뉴캐슬 카운티는 공화당 강세 지역이라 민주당에서는 후보로 나서려 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는데, 바이든은 그런 지역에 출마해 2천 표 차이로 1970년 11월 뉴캐슬 카운티의 카운티 의회 의원이 되었다. 당시 민주당은 델라웨어 지역에서 바이든 외에는 대부분의 후보가 참패하면서 그 힘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덕분에 바이든은 28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델라웨어 민주당에서 상당히 저명한 인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1972년에 민주당으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당시 해당 선거구의 상원의원은 J. 보그스(J. Caleb Boggs)로 델라웨어 지역에서만 3선을 지낸 현역이었고 바이든이 갓난 아기일 때 처음으로 공직에 선출된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다. 당시 델라웨어 민주당 내에서는 그 누구도 경쟁 후보인 보그스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보로 나가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때 바이든은 젊은 나이에 어차피 카운티 의원 재선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이유로 떠밀리듯이 출마하게 되었다. 사실 그는 카운티 의원은 한번만 하고 이후에는 자신의 로펌을 꾸리는 일에 집중하려 했었다. 사실상 패전 처리 투수 역할이었던 갓 서른의 바이든은 기적적으로 3천 표 차로 보그스를 이기는 이변을 일으켰고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되었다.
상원의원 취임과 비극
그러나 그 해 12월 18일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하러 차를 끌고 나간 남동생 지미와 가족들이 교차로에서 트레일러에 추돌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 닐리아(Neilia)와 장녀인 나오미(Naomi)가 사망했다. 보(beau)는 뼈가 여러 곳 부러져 전신 깁스를 하게 됐고 헌터(Hunter)는 머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직원 채용을 위한 면접으로 워싱턴에 있던 바이든은 지미에게 전화를 받은 누이 발레리가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고 인생의 발판이 발밑에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때 바이든이 자식들 때문에 워싱턴 D.C.에서 선서할 수 없다고 하자,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였던 마이크 맨스필드 의원이 병원으로 상원 서기를 보내 별도로 선서하도록 하여 결국, 그는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윌밍턴 종합병원에 입원한 아들들의 병실에서 하게 되었고 부인과 사별 후 5년 뒤인 1977년 지금의 부인인 질 바이든(Jill Biden)과 재혼한다. 이러한 바이든의 비극은 2010년대에도 계속되어 1972년 사고에서 살아남았던 장남 보(Beau)바이든이 2015년 부통령 재직 시절 뇌종양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폭넓은 외교경험
그의 상원 생활은 2009년 부통령 당선 때까지 이어지지만, 상원의원 시절 그는 영향력 있는 중견의원으로써 가정폭력법 제정부터 이라크 전쟁까지 많은 입법분야에 관여했지만, 바이든 주 분야는 외교였다. 그는 상원의원 초창기인인 카터 행정부 시기부터 대통령의 부탁으로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와 소련 수상 알렉세이 코시긴 등 공산권 지도자들과 만나며 외교 경험을 쌓았고 1980년대에는 아프간, 레바논 문제에 관여했었고 1990년이후 탈냉전시대에는 발칸문제에 특히 많이 관여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코소보 사태에 미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인 존 매케인과 결의서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NATO가 보스니아에 개입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고, 밥 돌 의원과 함께 사라예보를 방문해 학살에 책임이 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라도반 카라지치를 대면하기도 했다. 결국 NATO군의 공습이 내전을 종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클린턴은 휴가 중에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코소보 사태를 방관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떠봤다고 한다. 아울러 2003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이를 용인했고 대신 사담 후세인의 제거에는 반대했다. 부시와 네오콘들의 무책임한 사후 처리로 이라크가 총체적인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2003년 6월 요르단의 이라크 경찰 훈련 센터를 방문한 이후 미군과 영국군의 과중한 부담을 줄이고 이라크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오합지졸인 이라크 군경의 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부통령 재직기간에는 (2009년~2016년) 우크라이나 사태, 한반도 핵문제, 대중국 외교에서 오바마대통령 대신 활약하면서 외교분야에서는 실세임을 알 수 있었다.
2. 외교정책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정책은 외교분야에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되는거는 그의 행적과 경험을 기반으로는 너무나 당연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전반적으로 ‘고립주의’ 와, ‘미국 우선주의’ 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르게 다자주의에 기반하여 미국 패권을 지키는 것을 지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그가 지난 2020년 5월 외교전문지 Foreign Affairs에 기고하였던 글에서 (Why America Must Lead Again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By Joseph R. Biden, Jr.) 그의 외교정책의 전반적인 블루프린트를 엿볼 수 있다.
트럼프 지우고 미국내 정치적 역량 강화
우선 바이든은 윗글에서 최근 4년간 기후변화부터 코로나 19 같은 질병까지 미국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전반적으로 복잡해졌고 이러한 상황을 타파할려는 필요가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그의 외교정책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민주주의적이지 않는 국가들이 늘어난것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민주주의 국가내의 정치적인 부정부패와 경제적 양극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는 이러한 상황의 결과가 민주국가간의 협력과 정치체계의 약화, 그리고 트럼프와 그를 지지하는 지도자들이 정치를 스스로의 정치적인 이익을 얻기위한 수단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바이든은 이러한상황에 대항하여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실행할 3가지
약속을 언급하면서
● 미국과 미국 동맹국가의 민주주의를 재활성화하고
● 미국 경제의 미래를 보호하여, 미국이 다시 세계를 이끄는 지도국가로 부활
● 2차대전과 냉전을 승리로 이끈 힘과 대담함을 부활
이 3가지 약속을 통하여 자유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권위주의를 이긴것을 상기시키면서 이러한 체제 경쟁이 단지 우리 과거만이 아닌 미래를 형성할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트럼프가 미워도 정책의 일부는 계승된다
바이든 행정부에 자문하는 외교정책 전문가 다수는 아이러니 하게도 트럼프가 주창했던 외교정책과 비슷하게 대아시아, 대중동, 대동맹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Thomas Wright연구원에 의하면, “2021 Democrats”라고 불리는 비공식 민주당 출신 외교안보정책 전문가들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이들은 트럼프 시대 외교정책을 무조건적으로 되돌리거나 오바마의 정책을 비판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보다 나은 방향의 외교정책을 설계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미국이 그간 중국을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세계질서로 편입시키는데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기술 혁신 부문에서의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산업정책을 통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때 대중강경책은 틀을 달리하면서 유지될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존의 시도되었던 중동을 안정화 시키고 유럽 및 아시아 대미동맹 역할 분담 확대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듀크 대학교의 피터 피버(Peter Feaver)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 수행방식은 비판적이지만 미국에게 우위를 제공한 정책을 부문별로 이어가야 하며. 예를 들어 아브라함 협정 준수, 예루살렘으로의 미 대사관 이전, 이란에 대한 압박 증대를 강조하고 아시아에서는 특정국가를 인식하는 가운데 그 국가에대한 경제적 강압 행위에 대한 규제 강화, 미국 내 외국 불법 정보활동 퇴치, 그리고 쿼드(Quad) 결성에 대한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진단했다. 아브라함 협정 2020년 8월 13일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협정이다. 이 협정으로 아랍에미리트는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은 아랍 국가 중 이집트, 요르단에 이은 세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페르시아만 국가 중에는 처음으로 맺게 되었다. 쿼드 4자 안보 대화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 약자인 쿼드는 4개국 인도 – 태평양 지역의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이 국제 안보를 주제로 정기적으로 가지는 외교장관 회담을 말한다. 쿼드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전략의 일환으로서, ‘일대일로(一帶一路)’ 로 대표되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국내 민주주의 강화
바이든 정책의 특이점은 미국내 민주주의 강화를 외교정책의 베이스로 본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 역사상 해리 트루만 정부가 한국전이 발발한 직후 미국 진영을 방어하기 위하여 민주주의의 무기고 (Arsenal of Democracy)라는 정책을 주도 했지만, 본 정책은 미국내정책과의 연계성은 없는 정책이었고, 주로 군사, 경제적인 측면이 강조된 정책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미국내 민주주의 강화는 미국제도 자체를 바르게 세움으로써 스스로 도덕점 규범이 되어서 이를 외교에 적용하겠다는 것으로써 카터 정부 이후 사용되지 않은 특이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정책의 첫 단추를 연속적인 행정명령을 집행을 통하여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2013년 대법원 판결로 폐기된 1965년 투표권법 5조의 부활(주정부의 선거법 개정시 연방의회 통과 필요를 인종차별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위헌판단을 내린 사례)과 그리고 트럼프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발령했던 이민자들의 존엄성을 해치는 반이민 정책과 차별적인 규제를 바로폐지하고, 법집행시 특정집단을 타깃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미국이 이러한 방식으로 미국내 민주주의 역량을 키워서 세계 민주주의 국가를 다시 이끌수있는 주역으로 들겠다는게 취지다.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간 다자주의 협력 강화
바이든은 국내적인 거버넌스 역량 강화를 통하여 미국이 세계를 존경 받을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게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한 동맹의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자는 미국의 전통적 동맹의복원(restore)과 함께 이를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래지향적 관계로 재구상(reimagine)할 것을 밝힌 바 있다. 특히, 그는 임기 첫해에 보편적 공유가치인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글로벌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of Democracies)” 개최제안하면서 또한 민주당내 정강(Democratic Party Platform)에도 동맹을 대체 불가한 국가안보의 초석으로 정의하면서, 미국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을 밝히고 있다.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
바이든 외교정책의 마스터 플랜 특징 중 하나는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이다. 특히 이 부분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바이든은 지적하면서, 미국의 이노베이션 강화와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경제적 힘을 모아서 낡은 경제적 관습을 버리고 양극화를 줄이는 데에 힘을 기울여야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산층 외교를 위하여 그는 미국내 연구개발의 투자강화를 주장한다. 미국이 미래 기술분야(인공지능, 양자컴퓨터, 고속철, 암정복)등의 분야에서 중국에 뒤쳐질 이유가 없고, 미국은 항상 그래왔던거 처럼 기술발전의 선두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바이든은 말한다. 또한 그는 무역분야에서의 공정성 확보가 자신의 중산층 외교의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한다. 이 분야는 트럼프가 주장한 미국 고립주의에 기반한 공정무역이 아니라, 미국 외교의 전통적인 무역개발확대라는 전제하에서 미국이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무역공정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며, 무역보호주의로 흐르는 국제무역 환경을 타파하겠다는 것이 바이든이 외치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이다.
미국이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지난 4년간의 트럼프 시대는 가고 1월 20일 바이든 시대가 시작됐다. 그리고 바이든의 행정부는 트럼프대에 비하여 조용하다. 정상간의 전화통화도 제한적이고 기자회견은 매끄럽고 모든 국정노력이 판데믹 방역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바이든의 외교는 보이지 않으면서 물밑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선 대만과의 공식 단교 42년만에 주미 대만 대표부의 수장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면서 그가 예고했던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간 다자주의적 협력을 강화를 노린다는 점은 명백해 졌다. 그리고 취임후 그가 약속한대로 취임후 일주일 100개 이상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대부분이 그가 공헌한 대로 코로나19, 기후변화, 인종 형평성, 경제, 보건, 이민, 글로벌 지위 회복등의 7개 분야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흔적을 지우는데에 촛점이 맞추어진것이 보일정도로 국내적으로는 대담하게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파리기후조약, WHO에 재가입하는 행동을 취하고 국가간의 정상간의 전화를 드물게 진행하지만, 미국의 입장을 단호히 반영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고립에서 돌아오고 있다. 세계로 다시 돌아온 미국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떨지 다시 주목을 해야할 때가 왔다. 분명한 것은 바이든의 외교는 바이든의 반대파가 주장했던 친중 이런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자주의를 원하고 있고 미국의 우선주의가 미국의 국익만이 아니라, 서방진영의 가치과 이익을 지키는데에 최선을 다할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아직 심각한 국내적 상황으로 국외에 집중 할 상황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미얀마의 최근 쿠데타에 대한경고를 호주, 영국, 캐나다 등과 다자적으로 발표하여 서방권의 다자주의의 부활이 물밑에서 이루어지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러한 행위가 전세계적으로 어떠한 영향이 미칠지는 모르지만, 바이든의 정책은 그의 행동이나 기분에 좌우되지않고 정책과 논리의 대결에 기반한 외교가 펼쳐질것이다. 미국 우선주의 논리는 뒤집혀서 기존 미국 고립주의에 기반했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중산층을 우선하면서 다자주의에 기반한 우선주의로 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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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
Foreign Affairs- Why America Must Lead Again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By Joseph R. Biden, Jr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united-states/2020-01-23/why-america-must-lead-again
Frontline- President Biden – https://www.pbs.org/wgbh/frontline/film/president-bi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