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뽑은 윗글이 좀 도발적이죠,
그렇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도발적이고 단도직입적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데 거침이 없습니다.
그녀의 강연을 인터넷으로 들을 때 마음이 정신없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그저 머리 속 어딘가에 무의식적으로 잠자는 우리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부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유미리, 최돈미 작가 그리고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된 ‘파친코’의 저자 이민진 교수
오늘은 골프 얘기가 아닌 좀 다른 얘기를 하려 합니다.
베트남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고국의 문화에 대한 무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진다는 것입니다.
이건 단지 베트남에 사는 우리 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외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이 겪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외국으로 떠난 이민자들의 문화적 사고는 고국을 떠나는 그 순간에 멈춰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정체된 우리 교민들의 문학적 사고에 새로운 정보를 넣어주기 위해 오늘은 이 글의 주제를 조금 틀어봤습니다.
최근 한국의 문화는 한국을 떠난 우리들에게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달라져 있습니다. K-드라마로 시작된 한국의 문화의 세계적 확장은 그 후 음악, 영화, 음식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더니 급기야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가장 접근하기 힘들었던 도서 창작 분야까지 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해(2020) 전미 문학상 번역 소설 부분의 수상자는 ‘우에노 역 공원 출구'(Tokyo Ueno Station)를 쓴 재일 동포 유미리 작가이고, 시 부분 수상자는 재미 동포인 최돈미 시집 ‘DMZ 콜로니’가 선정되었습니다. ‘DMZ 콜로니’는 비무장지대(DMZ)를 소재로 한 시집으로, 비전향장기수인 안학섭씨와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또한 번역소설부분상을 받은 유미리의 소설은 노숙자로 살다 죽은 뒤 우에노역 공원에서 떠도는 사내의 혼을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그 외에 지난 2017년 발매되어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베스트 셀러로 꼽는 ‘백만장자의 공짜 음식’와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의 등장은 전세계에 한국인의 문학적 자질을 아낌없이 보여줍니다.
최근 이민진, 애머스트(Amherst) 대학의 교수이자 위 책을 쓴 작가인 그의 강연을 유튜브로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강연을 들은 소감이 바로 이 글의 서두 문장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발언이지만 유머를 잃지 않은 그의 강연은 다시 한번 한국인의 자긍심을 일깨워줍니다.
이 글의 제목으로 뽑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괜찮아’ 라는 표현은 바로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입니다.
“나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좋아합니다. 한국인은 엄청나게 강력한 역사와 유산을 가진 아주 놀라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이름 이민진을 사랑하고, 부모님이 내 이름과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깁니다. 동시에 나는 내가 서양인인 것도 사랑합니다. 동양과 서양 문화 양쪽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특권이죠. 나는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이고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역사전공자답게 인류의 역사를 가장 얼룩지게 만든 인종적 종교적 차별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냅니다. 미국사회에서의 동양인에 대한 차별, 그런 차별과 배제로 상처입은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에 대하여 ‘엄청 화가 난다’는 직설적 표현으로 그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작품에서 나타난 일본에서의 재일 동포들의 차별과 유사한 아픔은 미국에서도 존재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2부작으로 된 그녀의 작품 ‘파친코’는 그런 차별, 일본인에 의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은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입니다. 합법적 직업 선택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재일 동포들의 유일한 돌파구일 수 있는 파친코를 통해 동포들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녀는 전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이번 ‘파친코’에 이어 다음작품으로 디아스포라 ‘한국인들(The Koreans)’에 관한 3부작의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그녀의 다음 작품인 The Korean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출간을 더욱 기다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 파친코는 애플 영화제작사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로 드러날 우리의 얼룩진 역사를 마주할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집니다.
위에 언급한 세 작가의 공통부분이 있습니다.
모두 우리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 합니다. 이민진 작가는 재일 동포의 아픔을, 유미리 작가 역시 일본의 잔인한 민낯을 드러내고, 최돈미 시인은 이념적 분단으로 갈라진 우리의 아픔을 시어로 드러냅니다.
특히 유미리 작가의 경우는 일본에서 엄청난 반향을 보이며 화제를 몰고 다닙니다. ‘헌등사’라는 작품을 쓴 다와다 요코 이 후 두번째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작가의 출현이라고 흥분하며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마련하며 그를 칭송하려 한 일본은 12월 23일 회견에서 나온 유미리 작가의 말 한마디에 모두 얼어 붙어 버립니다.
그녀는 “일본 언론에서 전미도서상을 수여한 두번째 일본인 혹은 두번째 일본작가라는 말을 하는데 저는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어로 생각하고 있지만 일본인이 아닙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적의 한국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말로 일본 기자들이 얍삽한 젓가락 올리기를 사양합니다. 또한 수년 전 ‘가족 이야기’로 아쿠까와상을 받고 서점에서 사인회를 열 당시 일본 우익들의 협박으로 7군데 사인회가 전부 최소된 사연을 언급하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일본인들로부터 차별받은 부당함을 잔잔한 목소리로, 그러나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실재로 그녀는 학창시절의 이지매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는가 하면, 결국 고교 1학년에 퇴학을 당하고 독학으로 글 쓰기를 공부하여 세계적 작가로 스스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런 수상 소식이 한국인에게는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또 한편 이렇게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작품들이 모두, 얼룩진 한국의 역사로 인한 한국인의 고난을 이야기 한 것이라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이 글들은 모두 한국인 독자에게 불행한 우리의 역사를 마주보는 용기와 인내를 요구하는 불편한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보면 이 모든 작품은 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괜찮아 ‘ 라는 표현은 역사를 통해 드러난 인종, 종교, 국적, 이념적 차이를 초월한 사랑, 그리고 사랑하기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절절한 아픔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어느 날 먼 이국 땅에서 우연히 들은 그녀의 강연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울림으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