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의 방은 영원히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이 현실이 우리 옆의 학부모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수업 중 단어를 찾기 위해 검색한 스마트 폰에서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을 처음 접했습니다. 아들이 고3이라 놀란 마음에 한국에 전화하니 수학여행은 고2때 간답니다. 그래서 안도했습니다. 그렇지만 내 아들이 그 배를 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한없이 비굴한 어른이 되어 있는 것에 분노합니다.
구명조끼를 입고 두려움에 웅크려 떨고 있는 애들의 모습을 TV 에서 보고도 저녁 내내 눈물만 흘려야 하는 무능력한 대한민국 어른인 것이 정말 쪽 팔립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이틀 후인 27일 밤 10시부터 ‘서울 중앙 방송국’에서는 “대통령 이하 전 국무위원이 서울에 있고 국회도 서울을 사수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군은 오늘 오후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가는 적을 격퇴 중이니 국민 여러분은 조금도 동요 마시고 직장을 사수하시기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를 집중적으로 라디오를 통해 방송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각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어른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쟁 발발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27일 새벽 4시 그가 죽도록 사랑했던 그의 외국계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대전행 특급열차를 타고 이미 서울을 탈출해버린 뒤였습니다. ‘
서울 중앙방송의 대통령 담화는 대전에서 녹화하여 서울 중앙방송으로 송출한 꼼수였습니다. 국민은 그의 담화에 속아 서울에 있었고 서울에 있었던 국민들은 적들의 총칼에 죽어갔지만, 국민을 속이고 제일 먼저 서울을 탈출한 국민의 어른인 대통령은 하와이의 어느 휴양지에서 그가 사랑하는 외국계 부인과 함께 명줄대로 다 살고는 90살이나 되어서야 평화롭게 죽어 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54년이나 지났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300여 명의 고등학교 수학여행 단 과 함께 47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인천발 제주행 ‘세월호’의 중앙 안내 방송에서는 “배가 위험하오니 안전 조끼를 착용하고 선내에 안전하게 계시기 바랍니다.” 란 안내원의 목소리가 객실 내 스피커를 통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내 방송이 흘러나오는 시간에 ‘세월호’의 어른이신 선장과 그의 동료들은 배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첫 번째로 배에서 탈출했으며 윗옷에 물기 하나 묻지 않고 구조선에 올라 육지를 밟고 있었기에 그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장 어른의 명령에 따라 안내 방송만 믿고 배 안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리던 우리의 착하디착한 어린 학생들은 수학 여행지인 제주도에 가 보지도 못하고 배 안에서 손톱이 시커멓게 발버둥 치다가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54년 전 국민은 국가의 어른인 대통령의 말에 죽어갔고, 54년이나 지난 2014년 우리의 젊은 학생들은 배 안의 어른인 선장의 말을 믿다가 죽거나 실종되어 갔습니다.
분노합니다. 이들의 비겁함에 분노하며 대한민국의 어른인 것에 쪽 팔려 합니다. 당신들 한 명만 목숨 걸고 임무를 다하였다면 수백만 명의 국민을, 수백 명의 젊음을 살릴 수 있었는데 54년 전에도 54년이 흐른 지금도 진정한 어른이 없는 대한민국에 분노합니다.
1993년 10월 10일 서해 페리호 정원초과로 침몰 292명 사망
1994년 10월 21일 부실시공 및 관리로 성수대교 붕괴 32명 사망
1994년 10월 24일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25명 사망 4명 실종
1994년 12월 7일 대구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사고 101명 사망 202명 부상
1994년 10월 21일 부실시공 및 관리로 성수대교 붕괴 32명 사망
1994년 10월 24일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25명 사망 4명 실종
1994년 12월 7일 대구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사고 101명 사망 202명 부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각종 안전대책을 쏟아 냈습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으며 국민에게 사과했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새로운 장비를 도입했습니다. 그때마다 국민들은 하나같이 내 일인 것처럼 쌈짓돈을 모아 성금을 전달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20년이나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대한민국은 11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1인당 국민 소득은 3만 불이나 된다고 발
표하고 있습니다.
국격이 올랐다기에 베트남 직원과 학생들에게 뽀대 잡고 돌아다녔습니다. 이렇게 뽀대 나는 위대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미개발 국가인 에티오피아 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에 또다시 희생되어 가고 있습니다.
힘들게 공부하여 진학한 대학교에서 강의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경주의 어느 리조트 건물더미에 묻은 지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정부는 부실의 책임을 물었고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유족과 국민은 울었지만, 정부의 대책을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또 수백 명의 어린 젊은이를 차디찬 바닷속에 몰아넣었습니다. 중앙 재난 대책본부는 20년 전이나 선진국이 되어 있는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수많은 젊은 장병을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수몰시킨 것이 억울해 국민의 세금을 1,600억이나 들여 만든 최신식 구조함인 ‘통영함’의 진수식을 TV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 ‘통영함’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문제가 발생하면 지하 벙커로 들어가는 ‘국가 안전 보장 이사회’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젊은이가 300명 이상 죽게 된 것만큼 국가의 안전을 위협받는 일이 어디 있기에 이사회 한번 열지 않고 이렇게 대책본부를 수십개 만들어 놓고 구조는 고사하고 실종자 파악도 못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근대사 10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가 기억하는 국가적 재난만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재난과 사고를 대비한 실용적 매뉴얼 하나 없는 것입니까? 조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 국가입니까?
20년 전이나 20년이 지난 지금이나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마음놓고 맡겨 놓을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 놓지 못한 것에 분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쪽 팔립니다.
우리는 오늘을 잊을 수 없습니다.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의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20년 전에 일어난 페리호 사건처럼 두 달 전에 일어난 경주 리조트 사건처럼 세월이 지난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아들과 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또다시 세월 속에 지워버린다면, 우리의 또 다른 아들과 딸들이 오늘의 사건처럼 죽어 갈 수 있습니다.
국민은 정부에 관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에 관대한 국민은 부패하고 무능력한 정부와 공무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아침에 나가는 아들과 딸들을 보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작성자 : 최 은 호
안산의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다녀오면서
미안하고, 먹먹하고 , 분노의 감정이었는데
가족과 사고 당사자들은 어떠했을까요.
한국인 인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기성세대가 된 스스로가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네요.
100%공감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