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은 하나도 없고 절대로 부서지지도 않는 쇠로 된 방이 있다고 치세. 그리고 그 안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다고 하세.
다들 곧 질식해 죽겠지! 만일 몇 사람만이라도 깨어난다면, 쇠로 된 방을 부수고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 절대로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중국 인문정신의 출발, 루쉰(魯迅)의 “외침” 서문에서 발췌한 글이다.
하지만 방에서 깨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장은 아무도 열 수 없게 그 방 열쇠를 바다에 버리고 그 곳을 떠났다. 아니 쇠줄로 아예 단단히 묶어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었다. 차갑고 어둡고 무서운 그 곳에서 아이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애들을 삼켜버리고 말없이 누워있는 바다를 애비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에미의 극한 고통을 인간의 그 어떤 말과 글로 위로하려 들지 말라.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도 많이 속으며 살아왔다. 이 세상에 신(神)이 있다면 나서 주길 바란다. 제발 몇 명만이라도 깨어 나서 그 존재를 증명해 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아Q는 날품팔이꾼으로 지극히 무능하고 우매하지만 자존심은 강한 성격이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욕을 소위 < 정신적 승리법>이라는 것으로 이겨 나간다. 근대화 과정의 혼란 속에서 제법 약삭빠르게 처신하려 하지만, 그의 무지와 급한 성격으로 인해 파멸에 이를 뿐이다. 시골마을까지 밀어닥친 신해혁명(辛亥革命,1911년 청나라 멸망, 중화민국탄생)의 물결을 보고 그 혁명의 이념과 구체적인 전개 과정에는 무지한 채, 단지 힘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부화뇌동(附和雷同,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하지만 결국 총살당하고 만다. 작가는 그의 성과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다. 살아 생전에 사람들이 그를 “아Q”라고 불렀을 뿐 죽은 다음에는 그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阿)는 중국에서 성이나 이름 앞에 붙여 친근감을 나타내는 글자로 통한다. 전기(傳記)에는 열전(列傳), 자전(自傳), 별전(別傳), 가전(家傳), 본전(本傳)등 수많은 종류가 있으나 아Q에게 적합한 것이 없어 결국 ‘정전(正傳)’이라 붙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작품은 현대 중국문학의 아버지, 루쉰의 유일한 중편소설로 세계 최초로 번역 소개된 중국 현대소설이다. 작가는 일본으로 유학 가서 의학 공부를 하다가 수업시간에 간첩 혐의로 체포된 중국인이 참수 당하는 것을 다른 중국인들이 미소를 띤 채 구경만 하는 충격적인 사진을 본 직후, 민족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것은 몸을 고치는 의술이 아니라 정신을 바로 잡는 일임을 깨닫고 그 길로 문예부흥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후 문학을 통해 관습적인 타성에 젖어 있는 중국인들의 허위의식과 침묵하는 자세에 대해 끊임없는 비판을 제기하고 나섰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아Q야말로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하고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이중적 모습을 보여주는 우월주의와 노예근성,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패거리 문화,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는 낡은 관습, 현대 사회에도 여실히 드러나는 온갖 부조리를 향해 날카로운 비수를 던졌다. 이 모든 추악한 모습들이 현재 우리 모국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투척했던 상하이 홍커우공원이 현재의 루쉰공원 이다. 루쉰을 기념한 곳으로 그의 친필원고와 세계 각지에서 출판된 저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윤의사의 의거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청년이 해냈다”며 감격했다.
이런 혼탁한 시대일수록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위인들이 그립다. 최근 공원 인근에 한국의 유명 제빵점 P의 124호 중국매장이 오픈 됐다고 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는 듯하다.
작성자 : 박동중 – 영남대 영문과 졸업/조흥은행 안국동 근무, 現 창작활동 및 백산비나 근무중 (frog09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