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한 책 :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s –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한길사, 2005.01.25)
잔디밭 익어가는 수박을 위한 변증법
어느 날, 늦은 저녁을 먹은 뒤 물이 많은 수박을 한입 베어 먹었다. 입속엔 붉고 맑은 물이 넘친다. 넘친 물이 침과 함께 입가로 한 줄기 나왔다. 급하게 얼굴을 들어 올리지만, 닦지 않는다. 씨를 입안에서 오물거리며 빨간 수박에서 까만 수박씨를 발라낸다. 투득, 콩처럼 쪼개진 반쯤 씹힌 서너 개, 그날따라 왜 그 수박씨를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이튿날, 검은색 직사각형 모종 대야에 어제 모아놓은 수박씨를 손가락 한 마디 깊이로 쑤셔 넣고 흙을 덮었다. 순전히 심심했다. 외롭다 하기엔 내 마음은 천진했고 허전함이라 하기엔 내 양팔은 쳐지지 않았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어떤 목적이 나를 이끌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입에서 걸러진 수박씨를 흙에다 심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히려 다라이를 낑낑대고 옮겼다. 햇살이 강하다 싶으면 응달로 옮겼다. 몇 번을 이리저리 옮기다 귀찮아서 양지바른 곳에 그냥 두었다. 소식은 한참 동안 없었다.
싹이 돋아난 건 이젠 틀렸다 싶을 때였다. 한번 육중한 흙을 밀고 올라온 연두의 싹은 거침없었다. 흙의 압력에서 벗어난 싹은 금세 줄기가 되어 모종 다라이를 넘어섰다. 불퇴전을 감행하는 스파르타쿠스와 같이 잔디밭을 기어 다니며 돌진하더니 어느 날, 줄기 중간에서 혹처럼 수박 열매가 맺혔다. 환호했다. 연두의 콩처럼 조그맣던 수박 열매는 삼 일이 지나 수박 특유의 세로줄이 희미하게 나타났고 일주일 지나더니 탁구공만큼 커졌다. 혀를 내둘렀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제법 수박다운 검은 세로줄을 세기고 있다. 태어나고 커가고 산다는 건 환희다.
수박씨가 싹으로 되더니 싹이 줄기가 되었고 줄기에서 열매가 열렸다. 내가 경이로움으로 수박이 커가는 모습을 확인하듯 꼭 그와 같이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말해 줄 수 있을 텐가, 내가 다 전개되고 나면, 삶을 다 살 게 되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나는 수박을 보던 중에 궁금한 것이다. 나의 지금은 미래의 나를 위한 필연적 계기인가? 그저 허송일까? 쇼펜하우어처럼 보이지 않는 의지라는 게 있어서 수박도 나도 그 의지에 따라 살아지게 되는 건가? 수박씨를 딛고 싹이 되는 것처럼 나를 딛고 일어선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를 관망할 수 없다. 그것은 언어와 사유 너머에 있는 것이어서 지금의 나는 다가갈 수 없을 것 같다. 진리라는 것이 있어서 나의 생멸 전체를 안다고 그 진리가 말할 수 있다면 그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누구인가. 나는 플라톤이 말한 미메시스 mimesis를 믿지 않는다. 그 어딘가에 이상세계 eidos가 있어서 내가 한낱 그 에이도스의 모사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수박과 같이 나를 보는 누군가가 나타나 그리 살지 마라 했을 테다. 마찬가지로 무수한 ‘나’들이 그려내는 이 세계 전체를 그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 너머의 것들을 사유하려 했던 무리한 시도는 플라톤에서 멈추지 않았다. 헤겔은 플라톤의 무리한 시도를 끝까지 밀고 나간 최후의 사람이다.
철학자 강유원의 지적처럼 ‘나’와 ‘수박’은 유한자고
‘신’은 무한자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극단으로 밀고 가면 나, 그리고 수박이라는 유한자는 무한자가 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은 헤겔 사변철학의 핵심 주제다. 기존의 철학사상에 있어 절대적인 것인 무한자는 대체로 유한자와 대립되는 것이었다면 이처럼 유한자를 매개로 함으로써 비로소 성립하는 무한자는 헤겔 철학 특유의 것이다. 선행하는 것이 후행하는 것의 필연적 계기로 포섭되면서 전개되어 가는 것이요, 시초부터 종국에 이르기까지의 전 역사는 진리 전체인 것이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 가는 정신을 헤겔은 세계정신이라 부른다. 다른 한편으로 무한자를 신, 유한자를 인간으로 본다면 유한자와 무한자의 진정한 통일은 인간과 신, 신과 인간의 통일을 뜻할 수도 있겠으며 이는 헤겔 철학에서 신학적인 부분을 이룬다.” (강유원, ‘신화를 위한 서사시: 헤겔을 위한 독법’ 중에서)
“인간이 벌레에서 신적인 것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그의 시선을 별들로 향하게” 해야 한다. 인간의 시선은 수 천 년 신을 향해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유한의 단명을 깨달으며 무한으로 가려는 헛발질이 인간의 역사인지도 모르겠다. 헤겔이 보기에도 그랬는지 인간의 역사는 “골고다의 언덕을 거쳐 온 역사” 라 말하며 스스로 운동하는 정신의 전개 과정이라 말한다.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역사라는 것이다. 정신현상학 서문에는 그 자신감이 그대로 묻어 있다. 자, 나, 헤겔은 무한에 이르는 길을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겠노라는 19세기 근대인의 오만과도 같은 자신감이 행간에 정렬되어 있다. 그래서 읽어 내리기가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수박아, 부디 잘 익어라. 지나는 개에게 먹힐지, 애꿎은 고양이에게 줄기가 뽑혀 나갈지, 마당에서 체조 연습하는 딸래미 뒷걸음질에 으스러질지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익어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마라. 무한이건 유한이건 이상적인 수박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이미 알지 않느냐. 쏟아지는 열대의 비를 핏물처럼 빨아먹고 자라라. 나는, 한때 이상적인 ‘나’ 를 꿈꾼 적이 있다. 너를 보며 그런 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고맙다, 나도 너처럼 지난날도, 앞으로의 날들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지금의 정신으로 살겠다. 다른 삶을 곁눈질 하지 않겠다.
(사족,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은 정신현상학 전체가 아닌 정신현상학 서문을 먼저 숙독해 보기를 권한다. 18, 19세기 독일인이 쓴 내용을 21세기 한국인이 알아먹기엔 역부족인 탓도 있고 사전 지식 없이 전체를 읽기엔 난해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문의 분량 또한 만만치 않지만 헤겔 철학 일반과 정신현상학의 전문을 집약하고 있으므로 의미가 있다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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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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