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와 몇번 골프장을 찾기는 했지만 대부분 저렴한 가격의 퍼블릭 코스를 다니며 필드에 대한 갈증을 일부나마 푼 것이 고작이었다.
대부분, 그래 그렇게 대부분, 퍼블릭 코스를 다녔지만 가끔, 아주 가끔 동생의 초대로 정규코스를 몇 번 나가봤다. 역시 돈이 더 들어가니 골프장의 그레이드가 달라진다. 골프장의 시설과 코스만이 아니라 캐디 역시 수준이 다르다.
돈이 행복을 부르지는 않지만 품위를 유지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고교 친구들을 반세기 만에 만났다.
까까머리 고교생은 다 사라지고 희끗한 머리에 구부정한 어깨를 가진 장년의 어른들만 남아있다. 그리고 모두들 이미 은퇴를 하고 현직에 몸담고 있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무조건 n분의 1로 부담하는 것이 규칙처럼 정해져 있다.
젊은 시절 누구 없이 모두들 먼저 내겠다며 나서던 촌극은 아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풍경의 변화는 반드시 돈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나이 탓일 런지 모른다. 호기가 사라진 나이 탓.
살아온 날 보다 살아야 할 날이 짧게 남은 생을 자각하게 되면 모든 일에 대한 변명이나 이유에 나이가 따라온다. 모든 게 전부 나이 탓인 게다.
밤 늦도록 스포츠 중계를 보며 날밤을 새우다시피 해도 별로 감흥이 없는 것도 나이 탓이고, 어버이 날이라고 아들애가 지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라며 보내준 영화표를 들고 40년 만에 집 사람과 영화관을 찾아도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도 나이 탓이다. 여름 내내 굵은 비바람이 창문을 때려대다 오랜만에 화창한 하늘이 드러나도 이제 비가 개인 모양이네 하며 지나치는 무신경도 나이 탓이고, 한 달 만에 필드를 나가기로 해도 아무런 설렘이 생기지 않는 것도 나이 탓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에 무신경한 나이에도 유독 돈이 문제가 되면 무심하기는커녕 더욱 예민해지는 것을 보니 참 나이 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돈에서 자유로워져야만 어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늙어서도 대우를 받으려면 가끔 놀러 오는 손자와 며느리에게 용돈을 건넬 수는 있어야 하고, 지인들 애경사에 남들만큼의 돈은 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고, 후배들과 식사나 모임에는 지갑을 먼저 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는 더욱 중요한 일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하나인 워런 버핏이 어느 강연장에서 우주에 기록될만한 부자가 된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인성’ 이라고 대답했다.
참 따분한 대답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성대로 산다. 부자가 될만한 인성을 가진 사람은 부자가 되고 빈곤한 인성의 소유자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찐 부자로 살지는 못한다.
부(富)란 자신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수와 비례한다.
동네 부자는 동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세계적인 부자는 세계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남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물질적인 부분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신적인 보완이 따라야 한다. 즉, 물질적 자산에 어울리는 인성을 지녀야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부자 되기가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드러난다. 그래서 세상에 부자는 많지만 절름발이 부자들이 대부분이다.
부자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인성을 가진 부자와 그렇지 못한 부자는 돈을 쓸 때 구분 할 수 있다. 물질과 정신 양면의 균형을 이룬 부자는 타인을 위해 돈을 쓰고, 물질만 부유한 반쪽짜리 부자는 자신을 위해 돈을 쓴다.
골프의 세계에서도 돈을 쓰는 모양새를 보면 그 인성이 드러난다.
1980년대, 닉 프라이스( Nick Price)라는 유명한 남아 연방 출신 골퍼가 있었다.
우승자에게 1 Million 주는, 당시로는 유례없는 대회에서 Nick Price가 우승하여 백만 달러를 받았는데, 당시 그의 캐디는 “Squeaky” 라 불리는 제프 메들린(Jeff Medlin)이었다. 그는 캐디비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하면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보통 대회 우승 상금이 만 여불 정도였을 때니 만불만 받아도 자신이 다른 대회에서 우승한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데 Nick Price가 활짝 웃으며 10%를 선뜩 주었다. Squeaky는 당장 집 사고 약혼자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
Nick Price의 넓은 아량은 그의 골프 실력만큼이나 좋았다. 그의 인성은 돈으로 더욱 빛났다.
반면 타이거 우즈가 한창 상승세를 탈 때 이야기다.
그의 캐디, “Fluff,” Mike Cowan이 기자 면담할 때 별생각 없이 캐디비를 5% 받는다는 발언을 했다. 매 대회 엄청난 상금을 거두어들이는 타이거로부터 5% 받는 것이 사실 대단한 것이긴 하지만 그의 말이 타이거 우즈의 심사를 건드린 모양이다. 통상적으로 캐디비는 상금의 7-8%이고, 우승 시에는 10% 정도인데 그의 발언으로 타이거의 짠 심이 드러나자 인터뷰를 핑계로 그를 바로 해고한다.
그 후 그 캐디 Fluff는 현재까지 팔자 스윙의 달인 짐 퓨릭의 캐디로 10년이 넘게 성실히 일하고 있다. 요즘 타이거 우즈는 그리 잘 나가지 못하고 있고, 짐 퓨릭은 올해 시니어 골프리그인 Champion League에서 우승을 했다.
타이거의 호도리라는 별칭이 짠도리로 바뀔 판이다.
맷 쿠차라는 키 크고 잘 생긴 미국인 골퍼가 멕시코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하여 일백 2십만 달러는 받았는데, 당시 함께 일한 멕시코 임시 캐디에게 5 천불을 주었다. 멕시코에서는 대단한 금액이었지만 고소당해 망신을 당했다. 법으로는 최소 5%는 주어야 했다. 결국 5 만불을 더 주고 합의를 봤다. 그 후 그의 인기는 폭삭 망하고 매우 “구차” 스럽게 되었다.
쩐(錢)이란 이렇게 사용에 따라 인격이 드러나고 또 행, 불행을 부르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단어가 하나 있다. “generous”
나이가 들면 모든 면에서 너그러워야 한다.
특히 돈 씀씀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이 없어서 그러지 못한다고 이유를 달지 말라.
너그러워지기 위해 필요한 돈은 자신은 이미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자연적으로 조달된다. 따라서 이미 나는 부자라는 믿음이 있다면 곧 진짜 부자가 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지 말라. 닭이 먼저일 수 있고 달걀이 먼저일 수 있다. 자신이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부자가 된 후에 너그러울 수 있기도 하고 이미 너그러워 부자가 될 수도 있다.
단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당신의 몫이다.
믿음대로 세상은 변한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