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원래 정상적으로 많은 콧수염을 키우고 있었는데 1차대전 당시 방독면을 쓸 때 콧수염이 방해가 되어 상부의 명령으로 콧수염을 토막내고 방독면을 착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게 그대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굳어진 것이라 한다.
한 1년 전쯤에 한국에 있을 때 하는 일도 없고 늘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한 1주일쯤 면도를 생략하다 보니 수염이 누렇게 자란 것을보고 갑자기 젊은 시절 너무 동안으로 보이는 얼굴이 사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 콧수염을 키울까 고려를 해봤던 때가 떠올라 그 기회에 그냥 콧수염을 길러봤다. 그런 새로운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묘했다. 나이가 든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다 지저분하다는 평가인데 의외로 젊은 직원들은 신선하고 괜찮다, 예전보다 푸근한 인상을 준다 등등 호의적인 반응도 나왔다. 주변 인사 대다수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였음에도 젊은 애들의 응원에 기대서 한 6개월을 키워봤는데, 매일 얼굴을 볼 때마다 이 수염을 어찌할까 하는, 콧수염을 키우기 전에는 전혀 있을 수 없었던 새로운 깜을 만들어놓고 매일 고민을 반복하는 내가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들었다. 결국 수염은 매일 아침 날 선 면도기로 얼굴을 자극하는 피 가학적 기쁨을 새삼 인식시킨 공헌을 남기고 거울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와서 궁금해진 것이 있다. 그때 왜 콧수염을 길렀을까? 어떤 심리 상태가 일탈의 시도로 보이는 그런 행위를 하게 했을까?
예전의 수염은 일종의 어른이라는 표현이었다. 어른이라면 수염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수염을 제대로 길러야 진정한 어른의 풍모를 갖춘다고 믿었다. 적어도 서양보다 문화가 앞선 중동과 동양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요즘처럼 다양화된 세상에서는 그 메시지가 조금은 달라졌다.
요즘 수염을 기르는 유명인들을 보면 외국의 경우 IT업체 최고 경영자들이 많다. 이미 고인이 된 스티브잡스를 비롯하여 오라클회장인 렐리 엘리슨, 위키토피아의 지미 웨일스, 이미지 공유 사이트 플리커의 스튜어트 버터필드 등이 있고 한국의 경우 주로 정치인들과 방송인, 연예인들 중에 얼굴에 개성이 없고 미남형이 아닌양반들이 주를 이룬다.
수염은 일종의 자기 이미지의 선언이다.
나는 뻔하게 살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자신은 개성이 강한 남자로 창조적인 일탈을 즐기는 전문가이자 카리스마까지 넘치는 인간이라는 선언인 셈이다.
또한 수염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 하나처럼 보이기도 한다.정해진 틀 안에서만 살지는 않는다는 일탈의 선언 같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기대는 남들과의 차별화 그리고 자유인이라는 인식의 공표가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창조성과 전문성을 가장 우선하는 정보산업 기업의 경영자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하다.
실제로 수염은 사회적 저항의 한가지 표현방법이었다. 19세기초 서양에서는 수염은 시민들의 저항을 상징했으며 그래서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는 수염을 법으로 금지시키기도 했다. 수염이 지닌 저항의 의미는 20세기에도 이어져 기성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을 꿈꿨던 수 많은 사회주의 지도자들, 마르크스, 레닌, 엘겔스, 체게바라 그리고 베트남의 호찌민 등의 모습에는 항상 범접하기 힘든 특유의 수염이 함께 등장했다. 수염이 없는 체 게바라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는 수염으로 자신의 미남 얼굴을 저항의 상징으로 변화시켰다.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 전해오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심리는 어떨까?
두가지 심리가 있을 것이다.
한가지는 수염으로 자신의 진짜 얼굴이 가려졌다는, 마치 가면을 쓴 것과 같은 익명성의 자유가 그것이고,두 번째는 수염으로 인해 남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자의성이 강화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가면을 쓰는 사람의 심리를 살펴보면 수염을 기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가면을 쓰면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게 변할까? 할로윈 축제 때 상점들 중 일부는 가게 안에서는 가면 착용을 금지시킨다. 축제인데 가면을 좀 즐기면 안되냐는 질문에 “가면을 쓰면 사람들이 막 나가거든요” 라는 대답이 나온다.
즉 가면을 쓰고 익명의 일탈을 즐기는 것처럼 수염으로 얼굴을 일부라도 가렸다는 물리적 기능만으로 가면을 쓴 것과 같은 익명성의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이 감정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라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왜 콧수염을 길렀을까?
어떤 심리 상태가 일탈의 시도로 보이는
그런 행위를 하게 했을까?
두 번째로 감지되는 심리는 자의성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익명의 일탈과는 상반되는 심리인데, 수염으로 인해 남들과 달라진 모습을 보며 느끼는 자의성의 강화다. 이런 심리를 즐기며 수염을 키우는 사람은 남의 눈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따라서 윤리적 사회성이 강화된다.
이렇게 수염이 주는 순 작용도 있기는 하지만, 수염은 남성만이 갖는 것이라는 마초적인 성향으로 인해 행동이 거칠어지는 경향도있다. 바로 그런 인식을 남에게 심어주고 싶은 것이었을까? 즉, 수염은 자신을 위해 기르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남들에게 자신은 마초기질이 있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남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확 밀어보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 아닌가?
2003년 본지가 창간된 후 11년이 넘도록 잡지가 나오는 2주일마다 매번 반복되는 똑 같은 일을 계속해왔더니 마치 자신의 삶이 어떤 외부의 관성적인 힘에 이끌려 타의적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어 그런 의례적인 생활을 탈피하고 싶은 심정에 수염도 안 깎는 게으름이라는 깨알 반항을 시도한 것뿐인데 반응을 보니 세상을 저항하고 살기에는 너무 늦은 모양이다. 다시 수염을 깎고 게으름이 용서되지 않는 원래의 인간으로 돌아와버렸다.
그래도 한동안 심각하지 않은 가벼운 고민으로 거울을 볼 때마다 심미적 갈등을 즐겼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심장의 박동에 힘을 주었다는 자족을 한다.
그럼, 다음에는 또 어떤 변화를 시도해볼까?
너절한 소리를 늘어놓는 필자에게 친구가 던지는 말,
아직 젊은 겨~
작성자 : 한 영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