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이란 숫자가 참 멋져 보여서, 다른 해보다 더 설레었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6월 이미 한 해의 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비는 하늘에 구멍 난 듯이 내리고, 으레 그렇듯 이번 우기에는 아파트 벽에, 창에 혹은 에어컨에서 물 새는 곳은 없는지 체크해 봅니다. 무슨 아파트에 물이 세나 하실까 의아스러울 분들도 계시겠죠?
저도 베트남 온 첫해에 창틀에서 세 들어오는 비에 깜짝 놀랐었는데, 두 번째 해에는 타일 바닥이 며칠 만에 모두 들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정말 ‘오마이, 베트남’ 했었습니다. 헌 아파트, 새 아파트 상관없이 으레 우기가 되면 한꺼번에 쏟아지는 비 양과 피니쉬가 항상 부족한 베트남 건축물의 조화라고 해야 하나. 물이 새 거나 파이프가 터지거나 물 때문에 고생을 자주 하게 됩니다. 심지어 5성급 호텔 벽에도 물자국이 있고 로비에 놓인 물 버킷을 보고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즘, 내가 베트남에 상당히 오래 살았구나란 생각이 들죠.
저는 베트남의 문화 속에서 살면서도 한편으로 국제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매일 만나요. 유아들을 처음으로 원에 보내는 부모님들 중 국적별 정말 일관된 특징이 있는데요. 바로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에 관한 태도입니다. 분리불안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애착 대상인 주 양육자와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불안한 심리를 말합니다. 이는 아동의 성장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대게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흔히 유치원에서는 1-2주의 적응 기간이라고 칭하며, 저는 울음 기간(Crying Period)라고 말씀드립니다. 익숙지 않은 환경과 처음 보는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울음’을 사용합니다. 입맛이 떨어진다거나 면역력이 떨어져서 잠시 아프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1주일이면 충분히 적응을 하게 됩니다.
이 분리불안에서 빨리 벗어나게 도와주는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정확히 아이에게 ‘네가 가게 될 곳’ 과 ‘있어야 하는 시간’ 에 대해서 인지 시켜주는 것입니다. 이는 12개월 유아에게도 해당되는 과정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실수하시는 부분이 아이들과 교실에 들어와서 놀아주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인데요. 이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꼭 엄마가 가는 것을 알리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떠야 합니다. 그래야 갑자기 엄마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고, 다시 온다는 약속이 지켜졌을 때, 그리고 이것이 반복적으로 유지가 될 때 불안이 사라지게 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우는 것을 못 견뎌 하십니다. 헤어질 때의 애절한 아이의 울음에 차마 발걸음을 못 떼시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의 울음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길게 우니 엄마가 더 오래 함께 있어준다는 걸 알려준 셈이니 영리한 아이일수록 더 강하고 길게 웁니다. 구토를 하기도 하고, 바닥에서 누워 스스로 몸을 다치게 하기도 합니다.
분리불안이 아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도 울고, 어머님도 울고, 아버님도, 심지어는 유모님도 우시고. 온 가족이 웁니다. 아이 울음 끝내는 건 선생님들의 몫이고, 가족들 울음을 끝내는 건 디렉터인 제 몫일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설명을 여러 번 해드립니다. 저도 숫기없는 딸이 있어 교실 밖에서 많이 울었다는 공감 어린 경험담도 풀고, 아이를 망설임 없이 선생님께 넘기시는 어머님께 무한 칭찬도 많이 해드립니다. 그런 협조를 해주셔야 아이들의 첫 독립이 가능해집니다. ‘울음’이 끝나는 시점은 울어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빨리 엄마와 비슷한 대체 엄마를 선택해서 내 불안을 끝내야 한다는 걸 아이가 인지하는 순간입니다. 울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르거나 긴 시간 함께 있어준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참 신기한 게, 이런 시행착오가 첫 초보 부모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더라고요. 둘째 아이한테서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첫 단계를 서양인 부모보다 동양인 부모가 압도적으로 어려워합니다. 그래서인지 평균적으로 동양인 아이들이 서양인 아이들보다 울음 기간이 더 긴 편입니다.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운다는 것은 부모 또한 부모의 역할이 변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것은 신체적 발달이 미숙한 유아들에게 하는 것이지, 다 큰 청소년에게 하지 않죠. 이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게 하는 연습이 청소년기에는 꼭 필요합니다. 이를 모두 부모가 하려고 하면, 결국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자녀는 신체적, 물리적으로 독립되어 성장할수록, 정신적인 독립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성인이 되어서 한 인격체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이는 준비되었는데, 부모가 준비가 안되어 보일 때가 있어요.
과일을 매일 달고 사는 저로서 초창기에 열대 과일 망고를 정말 질리도록 많이 먹었었어요. 노랗고 말랑말랑한 망고도, 소금에 찍어 먹는 푸르고 딱딱한 망고 둘 다 좋아했는데요.
노란 망고는 손질이 좀 어렵습니다. 크기도 크고 자르기에 무르기도 해서 손질할 때는 손에 과즙이 흥건하기 마련이죠. 망고 안에 들어있는 길고 커다란 씨에 붙어있는 과육이 칼로 자르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아까워서 결국은 갈비 뜯듯 먹게 됩니다. 그럼 배가 불러서 잘생긴 과육 부분은 먹지도 못하거니와 아이들 입으로 이미 사라져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매번 망고 갈비만 뜯다 보니 차츰 신경질이 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생선 몸통만 주고, 엄마는 생선 머리만 발라먹었더니, 나이 들어서 아들이 엄마는 생선 머리만 좋아하신다면서 쭉 머리만 내밀었다는 일화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래서 망고 갈비에 아무리 과점이 많이 붙어있다 한들 칼로 잘라낼 정도만 손질하고 과감하게 버리기 시작했어요. 아이들과 네모깍둑 잘 생긴 망고 과육을 함께 먹기 위해서요. 별거 아닌 변화지만, 스스로에게도 조금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는 시작점이 되었어요.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심이 있는 엄마가 자녀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존중하고 독립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을까. 헌신의 엄마상보다는 당당하고 자녀를 응원해 주는 멋진 엄마상이 21세기에 더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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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Saigon Montessori International
Kindergarten Director
현 Vietnam Montessori Institute
Founder & Director
국제 몬테소리 교사 (MIA), MIA 및 PNMA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