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유럽의 젊은이들은 베르테르 신드롬을 겪는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읽고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따라 하고 소설 속 자살까지 모방해 청춘들 사이에서 실제 ‘경향’ 이 되자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도 유명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과 무사 같은 정치가의 운명 같은 마지막을 실제로 전해들을 때 이른바 ‘베르테르 신드롬’ 이 회자된다. 250여년 전 소설 속 베르테르는 이 시대에까지 미쳐있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의 작가는 괴테다.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20대 중반에 썼고 이 소설로 인해 18세기에 일약 전세계적인 인기 작가 반열에 단번에 오른다. 그런 괴테를 말해주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또 다른 희곡이 있으니 ‘파우스트’ 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두 소설이 모두 괴테로부터 나왔으니 ‘대문호”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그는 80년을 넘게 살았다. 긴 생애 동안 활동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베스트셀러에서 ‘파우스트’ 같은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폭넓은 작품을 내놓았다. “여기도 사람이 있군”, 나폴레옹은 1808년에 괴테를 만나고 난 뒤 남긴 말이다. 당시 유럽 제1통치자 다음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은 해석했다. 당대 최고의 영웅이며 천재로 칭송되던 나폴레옹이 괴테를 자신에 버금가는 인물로 인정한 것이다. 괴테가 환갑을 맞이한 1809년부터 사망 때까지 20여 년간 비교적 평온한 삶 속에서 괴테의 창작력은 절정에 달했다. 파우스트 제1부(1808)가 이때 쓰여진다. 1825년 말년의 나이에 괴테는 ‘파우스트’ 제2부의 집필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1831년,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에 파우스트를 탈고한다. 그러나 괴테는 자신의 생전 책으로 출간된 파우스트를 보지 못한다. 원고를 봉인한 뒤에 자신의 사후에 발표하도록 유언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후에 출간된 파우스트는 괴테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완성시켰다. 비록 그 생애가 오로지 파우스트에 모든 것을 몰입한 시간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한 인간이 구상에서 완성까지 60년을 걸어 꾸준히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물은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파우스트를 무릎 꿇고 읽은 적이 있다.
방대한 서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요약하자면 파우스트의 ‘천상의 서곡’ 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하느님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내기를 한다. 인간 파우스트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 하던 중에 극은 파우스트의 방으로 바뀐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에 그만 좌절한 중년의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난다. 그는 마법의 힘으로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제안하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대가로 파우스트가 자신이 만족한 나머지 어떤 순간을 가리켜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고 말하게 된다면 패배를 시인하고 영혼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파우스트는 고뇌한다.
“그러나 경직된 상태에서 행복을 찾지는 않겠다. 놀라움이란 인간의 감정 중 최상의 것이니까. 세계가 우리에게 그런 감정을 쉽게 주지 않을지라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보아야, 진정 거대한 걸 깊이 느끼리라.” (p.89)
마침내 결심하고 파우스트는 세상의 절대지혜에 도전하리라는 믿음으로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된다. 파우스트는 결국 악마에게 지게 되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세상을 멈추라는 말을 하게 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와 맺은 계약에 따라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그레첸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다.
인간은 신에 대한 호기심과 자연에 대한 놀라움 때문에 제 자신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그리하면 파멸을 맞이 할 것이나, 자신이 얼마나 진중하고 치열하게 생을 살았느냐에 따라 천사에게 구원 받기도 한다. 파우스트에서 보여주려는 메시지를 우리는 정확하게 읽을 순 없다. 그러나 세계가 보여주는 숨겨놓은 감정, 놀라움과 호기심, 괴테는 신비로운 것에 대한 놀라움이 인간의 가장 귀한 소질이라고 보았고 무관심이 아니라 이런 놀라움에 의해 가치 있는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괴테와의 대화’ 를 썼던 에커만과의 대화에서도 괴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바로 놀라움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그 최고의 경지를 넘어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마의 결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단 한가지를 위해 기꺼이 악마와 결탁할 용기가 있는가? 그리해서라도 생의 연원을 알고 싶은 열정이 있는가? 나는 무엇이 되기를 진정 원하고 있는가? 파우스트가 말한 ‘최고의 순간’ 은 우리에게도 올 것인가? 그 순간을 위해 내 생을 다 받칠 수 있는가? 파우스트와 같이 나의 영혼을 내 놓을 수 있는가? 우리도 이와 같이 외칠 수 있는가.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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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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