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이후 한국에서 체류 중입니다.
2 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속박에 풀려 이제는 자유롭게 외출이 가능해졌습니다. 그간 전화로 인사를 나누며 만남을 대신하던 지인들을 대면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현실을 실감합니다. 한국의 날씨는 그야말로 사랑의 맹세가 어울리는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초록이 점점 짙어진다는 것을 매일 눈으로 확인합니다. 지금 한국은, 여러분 모두 소식을 듣고 알고 계시겠지만, 이제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는 어느 정도 사라진 듯합니다.
사회적거리두기 운동은 지속되지만 거리에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차량은 밀리고 봄이 짙어가는 도시의 숲에는 적지 않은 인파가 나들이를 즐깁니다.
급기야 지난 4월 말에는 국내 확진자가 제로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뉴스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대단했던가 하는 자문이 절로 일어납니다. 하지만 우리 만 잘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다른나라가 다 문을 닫아 걸고 있는데 우리 만 안전하다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성공적인 대응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은 것은 실로 감사할 일입니다.
진짜 하늘이 도우사, 천우신조로 한국은 성공적인 방역으로 국민의 생명도 지키고 나라의 명성도 얻었지만 이번 사태로 많은 나라의 부끄러운 민낮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 중에도 특히 그동안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의 상황은 그들의 위상과는 다르게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과연 이들이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의료체제를 갖춘 선진국 맞나 싶을 정도죠.
이번 사태의 진행을 통해 그들이 아직도 지난 시대의 유물인 동양인에 대한 우월감과 더불어 심지어 인종적 차별의식까지 잔존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요인으로 인한 왜곡된 자만심이 방역을 소홀하게 만들었고 그 대가를 지금 비싸게 치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런 선진국에 비해 오히려 덜 선진화된 아시아의 국가들은 선방을 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이 특히 모범적 모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차이는 국민들의 공동체 의식의 차이에서 나타난 것이라 봅니다. 적어도 서양보다는 동양 사람들이 더불어 산다는 공동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좀 독특하지요. 동양에 속해있으면서 항상 유럽인이 되기를 열망하던 그들은 이번에도 유럽과 함께 동행하다가 그들과 같은 불행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올림픽 개최에 대한 집착이 이런 참사를 부른 원인의 하나일 수 있고, 또 영원히 자신들보다 열등한 국가로 남을 것으로 믿는 한국의 선방을 보면서도 그대로 배우고 따라 할 수 없는 그들의 왜곡된 자존심도 한 몫을 한 듯 합니다. 섬나라 입장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척을 지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참 안타까울 다름입니다.
그리고 가장 관심이 가는 베트남의 경우,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베트남은 거의 완벽한 방역에 성공한 세계 유일한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3주일이 넘도록 새로운 환자가 나오지 않는 쾌거를 이루고 내국적으로는 이미 통행의 제한이 사라진 상태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완벽한 방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은 베트남의 방역의 성공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두고 보도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 이유에 대한 심도있는 성찰이 베트남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포스트 중국을 기대하는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세상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 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중심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사태를 겪으며, 그동안 국제무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추앙되던 가격과 품질이 더 이상 그 위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 정보의 투명성과 제품의 안전성>을 바탕으로 한 ‘신뢰’ 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그동안 저 임금을 무기로 투자를 유치하던 나라들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던져 진 셈입니다. 투명성과 안정성은 단지 공장에서만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행정의 투명성이 바로 국가적 신뢰를 가름합니다. 쉽지 않은 과제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상품의 가치 변화나 투자의 조건 변화가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우리 같은 일반인도 가름할 수 있는 한 두 가지 항목에 불과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제 예전의 세계로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정확히 짚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예칙을 벗어난 널뛰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국가의 위정자, 학자, 사업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 번개처럼 스치듯이 지나가 버릴 변화의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습니다. 아차하는 순간 열차는 지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한번 지나간 열차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방역 성공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적은 생활의 변화가 독배로 등장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심각한 피해로 세상이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타국과는 달리 한국은 그런 변화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작은 상공에 안주하고 있을 겨를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말고 곧 다가올 충격적인 변화에 대한 대응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에서의 라운드
한국에서 참 오랜만에 라운딩을 나섰습니다. 제 아우, 한경민 사장과 그의 친구 두 명을 동반자로 여주에 위치한 스카이 레이크 골프 코스라는 곳을 다녀 왔습니다. 예전에 대명 루미나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코스였는데 시대에 맞게 영어 이름으로 바뀐, 비교적 역사가 깊은 골프장입니다.
주변에는 신륵사와 세종대왕 릉, 명성왕후 생가 등, 역사적 유적지가 풍부한 곳입니다. 해발 200여 미터에 위치한 준 산악 코스라고 볼 수 있는데, 라운드 내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느라 좀 힘이 들긴 했지만 평소에 별 다른 운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은 필자 같은 게으른 인간에게는 운동을 겸한 라운딩을 제공하는 유용한 코스입니다.
라운드를 마친 후 오랜 만에 임금님에게 진상했다는 여주 쌀로 지은 멋진 저녁상을 기대했지만 동반자들이 다른 약속이 있는 바람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날은 한국에서의 라운드 한가지 만으로 만족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우가 제공한 클럽을 사용하여 거의 십 수년 만에 도는 한국에서의 골핑에 더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고 나니 어떤 스코어를 남겼는지 조차 기억이 없다는데 대한 죄책감도 사라지는 듯합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에도 한국의 골프장은 늘 성황을 이룬다고 합니다. 오히려 고객이 더욱 많아 진 듯하다는 캐디선생의 전언입니다.
한국 골프장에서 캐디는 말 그대로 선생입니다. 라운드의 전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과는 달리 4백을 혼자서 담당하는데, 그 솜씨가 일품입니다. 티샷 전에 몸풀기 체조를 시작으로 엄격한 선생님이 4명의 골퍼를 학생 다루듯이 능숙하게 리드하며 라운드를 관리합니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좀 생소하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캐디 선생님의 말씀을 아무런 불평없이 잘 따르는 골프 학생들을 보며 속으로 뜻 모를 미소가 슬며시 피어납니다.
그래서 확실히 느낀 점 한가지, 한국에서 필드의 주인은 결코 골퍼는 아니구나 하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세 좋게 캐디를 나무라기 까지 하는 간 큰 베트남의 골퍼들, 천상의 골프를 즐기시고 있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맘껏 행복한 골프를 즐기시길 바라며 한국에서 베트남 꿈으로 잠을 설치는 외로운 골퍼, 이렇게 아쉬움이 묻어나는 글로 마음을 달래봅니다.
감사합니다. 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