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퍼(Phở)’가 대표적이다. 중국 영향을 받아 오래전부터 국수를 먹어 왔던 베트남은 쌀국수를 주로 닭 육수에 말아 먹었다. 하지만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인들은 기존 쌀국수 제조 방식에 자신들 요리법을 접목한다. 하노이 최초 외국인 수석 주방장인 프랑스인 콜루는 프랑스식 소고기 육수인 ‘포토퍼(pot-au-feu)’를 이용한 쌀국수를 고안했다. 이때부터 포의 육수는 그 재료가 소, 돼지, 닭, 생선 등 그 무엇이든 상관없이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맛을 내게 된다. 포와 함께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 바로 ‘반미(Bánh Mì)’ 이다. 반미는 밀가루로 만든 빵을 의미한다.
프랑스인이 바게트 사이에 햄과 채소를 끼워 샌드위치처럼 만드는 것을 본 베트남인은 이를 응용했다. 버터 대신 돼지 간으로 만든 파테를 바르고 베트남식 햄과 각종 향신채를 끼워 독자적인 맛을 창조했다. 반미는 프랑스식 바게트 샌드위치와는 전혀 다른 특유의 풍미를 갖고 있으며 재료에 따라 수만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퍼와 반미는 오늘날 베트남을 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음식이다. 누구도 그 음식이 베트남 전통 음식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육수를 내는 방식이, 바게트를 사용하는 것이 비록 식민 지배의 흔적이었다 할지언정 오늘날 베트남과 전 세계에서 먹는 포와 반미는 베트남이 키운 다양한 식재료와 베트남인의 치열한 삶이 낳은 결과물이다. 베트남은 바로 이 점에서 강한 자부심을 느끼며 퍼와 반미는 의심할 바 없는 베트남 전통 음식임을 확신한다. 그들에게 피지배 역사는 상처를 넘어 현재의 자산이다.
최초의 패스트푸드- 반미 샌드위치의 시작
Bò Bít Tết에서 Bánh Mì로 변형되는 과정에는 재미있는 창업 스토리가 있다. 하노이에서 프랑스 식당에 돼지 내장을 공급하던 Nguyễn Thị Tịnh이라고 하는 요인과 남편인 Lê Minh Ngọc은 1958년 사이공으로 넘어와 Bò Bít Tết 식당을 운영했다. 두 사람의 식당은 인기가 있어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Bò Bít Tết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침 시간에는 항상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낸 이들 부부는, 손님들이 포장해갈 수 있게 지금의 Bánh Mì와 같은 8인치 크기의 샌드위치 형태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 아이디어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베트남 최초의 패스트푸드이며 지금까지 베트남 사람들의 한 끼 식사로 사랑받는 국민 음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Hòa Mã는 지금도 여전히 호찌민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곳이긴 하지만 맛이 최고도 아니고 그냥 그렇다. 베트남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미 집은 호찌민에 있는 Huỳnh Hoa이다. 이곳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항상 긴 줄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 외에도 깔끔한 반미 체인점인 ‘Bánh Mì 362’ 는 깔끔하고 청결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레시피로 외국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 10대 음식으로 꼽히는 반미(Banh Mi)의 역사
세계 10대 음식으로 꼽힐 만큼 호불호가 거의 없는 마성의 샌드위치 ‘반미’. 베트남어로 ‘바게트 빵’을 일컫는 반미는 본래 ‘빵’을 뜻했으나 가장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빵이 바게트였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바게트, 또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1883~1945)에 프랑스인들에 의해 서양의 각종 빵과 과자류가 베트남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반미의 주재료인 바게트도 그 중 하나다. 당시 반미는 베트남 부유층의 고급 음식으로 주로 연유에 찍어 먹었다.
시간이 흐르고 입맛에 맞게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사용해 베트남식 바게트를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바게트는 점차 대중 음식으로 거듭났고, 초등하교 학생들에게 빵과 우유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장작불에 구워서 학교에 공급을 시작했는데, 한 번에 7~10개 정도 밖에 굽지를 못하여 공급하는 양이 충분치 못했지만, 1970년에 일본스타일의 벽돌 오븐이 도입되면서 반미를 대량으로 굽게 되었다. 벽돌 오븐으로 구워진 반미는 안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바삭한 것이 특징이다.
지금의 반미를 처음 먹기 시작한 곳은 사이공이었다. 이 때문에 반미는 사이공 바게트 또는 반미 사이공이라 불리기도 한다. 현지인은 물론 전 세계의 입맛을 훔친 반미 샌드위치도 큰 위기가 있었다. 195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베트남 전쟁을 치르며 식량 부족을 겪게 되었는데, 반미 역시 일상식에서 거의 사라졌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경제 개혁을 위한 도이모이 정책이 추진되면서 베트남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다시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사라질 뻔한 큰 위기를 겪으며 반미의 역사와 맛은 더욱 탄탄해졌고, 베트남 대표 길거리 음식을 넘어 베트남을 대표하는 요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반미 샌드위치의 인기가 뜨겁다. 베트남의 다낭과 호이안이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오른 것도 반미 샌드위치에 대한 사랑이 한몫 했다. 쌀가루로 만든 바게트와 베트남 특유의 향이 물씬 풍기는 재료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또한 유명지의 가판이나 노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맛볼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반미의 속 재료는 매우 다양해 취향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다.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는 새콤달콤하게 절인 무와 당근 절임, 오이, 고추, 고수, 파테, 마요네즈, 간장 등이다. 그 외에 베트남식 돼지고기를 바나나 잎에 감싼 후 찐 ‘짜’와 햄이나 소시지 같은 육가공품을 얇게 썰어 넣은 ‘팃 응우오이’, 양념한 돼지고기를 그릴에 구워 얇게 잘라 넣은 ‘팃 느엉’ 등이 있는데, 대체로 돼지고기를 이용한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넘쳐흐를 만큼 속 재료를 가득 채워 내놓는다. 제 각기 진정성 있는 맛과 푸짐한 양, 그리고 노련한 서비스로 고객들의 취향 저격을 하고 있는 베트남의 반미 핫플레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