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쭈황과 함께 알기쉬운 베트남어

작년 3월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내렸을 때 가졌던 낯설음이 이제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베트남어 전공자는 아니지만 외국어 공부에 흥미를 갖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베트남어 공부를 하면서 ‘아 이렇게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발음, 성조를 비롯하여 비슷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고유어들로 인해 베트남어는 참 배우기 어렵다는게 중론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유리한 한자어를 효과적으로 익히는 방법을 알고, 무조건 반복해서 암기해야 한다는 통념 대신에 베트남인들의 언어 습관과 표현의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베트남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아직 베트남어에 능통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러한 저의 학습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작년 11월에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여 ‘같이 공부하는 채널, 집중해서 봐야 하는 채널, 가르치는 관점이 아닌 배우는 사람의 관점에서 얘기하는 채널’ 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운영 중입니다. 앞으로 통상적인 교재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베트남어 특유의 언어 습관과 그 배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의 강점인 한자어를 어떻게 베트남어 공부와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겠습니다. 미흡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혹시 설명에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 주시고 이견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새롭게 베트남어를 배우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크나큰 영광이겠습니다.

Đi, Đến, Về
우리는 통상 베트남어를 처음 접할 때 ‘đi 가다’, ‘đến 오다’, ‘về 돌아오다/돌아가다’로 배운다. 그러나 실제로 베트남어 문장을 보면 그렇게 이해해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의 위치를 기준으로 ‘가다’, ‘오다’를 구분하는 한국어나 영어와는 달리 베트남어는 위치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 식으로 생각한다면 ‘đến trường’은 ‘학교에 오다’이고 ‘학교에 가다’는 ‘đi trường’ 이라고 말할 것 같지만 베트남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의 실체에 대해 좀 더 깊숙히 들어가 보자.

đi는 동사와 함께 쓰면 목적을 나타내므로 ‘…하러 가다’ 라는 의미가 된다. ‘đi học 공부하러 가다(학교에 가다)’, đi làm 일하러 가다 (직장에 출근하다)’, ‘đi du lịch 여행 가다’ 가 되는 것이다. 한편 di 다음에 장소가 나오면 그 장소가 가진 본래의 목적을 위해 그 곳에 간다는 뜻이다. đi chợ 는 장보러 시장에 가는 거고, đi bệnh viện 은 진찰받으러 병원에 가는 거고, đi thư viện 은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가는게 된다. 만약 의사 친구를 만나러 병원에 간다면 đi bệnh viện 이 아니고 đến bệnh viện 이라 해야 하며, 도서관 구내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다면 đi thư viện 이라고 하지 않고 đến thư viện 이라고 해야 한다. 그 외에도 ‘đi công viên (산책하러) 공원에 가다’, ‘đi bảo tàng (유물을 감상하러) 박물관에 가다’, ‘đi ngân hàng (예금하러) 은행에 가다’ 등 많은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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đến 다음에 장소가 나오면 ‘그 곳에 다다르다, 도착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아침에 등교하면서 엄마에게 ‘저 학교 가요’라고 할 때는 ‘Con đi học’ 이라 하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나 회사 가요’라고 할 때는 ‘Anh đi làm’ 이지만, ‘나는 7시에 학교에 간다 (도착한다)’ 라고 하면 ‘Tôi đến trường lúc 7 giơ’ 이 되고, ‘나는 매일 7시에 회사에 출근한다 (도착한다)’ 라고 하면 ‘Tôi đến công ty lúc 7 giờ hàng ngày’ 라고 말한다. 즉 우리말에서는 두 경우 모두 ‘학교에 간다’, ‘회사에 간다’라고 하지만 베트남어에서는 공부한다는 목적에 중점을 두면 ‘đi học’ 이고, 물리적으로 학교에 다다른다는 행위에 중점을 두면 ‘đến trường’ 으로 표현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어느 경우에도 đi trường, đi công ty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 학교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려요?’는 ‘Tư đây đến trường mất bao nhiêu phút?’ 라고 한다.
đến 은 그 외에 우리 말의 ‘오다’ 의 뜻으로도 쓰여서 엄마가 아이에게 ‘이리 오라’고 할 때는 ‘Con đến đay’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về 의 용법이다. về 의 의미는 ‘출발했던 위치로 되돌아가다 혹은 되돌아 오다’이다. 예를 들어 출장 가서 호텔에 투숙하고 있는데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가 호텔로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Chúng ta hãy về khách sạn (우리 호텔로 돌아가자)’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베트남에 거주하는 교민이 한국에 갈 때는 어떻게 표현하는가? 우리는 ‘저 다음 주에 한국 가요’ 라고 하지만 베트남어에서는 다르게 말한다. ‘Tuần sau tôi về nước’ 이라고 하지 ‘đi nước’ 이나 ‘đến nước’ 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고국은 원래 ‘내가 태어난 곳 (출발했던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디에서 고국으로 가든지 그것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돌아가는 것 (về) ’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노이에 사는 사람이 잠시 고향에 다니러 가도 về quê 라고 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있다.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우리는 ‘나 집에 갈께’ 라고 하지만 베트남어로는 반드시 ‘나 집에 돌아갈래 (tớ về nhà) 라고 해야 한다.
nước(고국), quê(고향), nhà(집)은 모두 원래 내가 출발했던 곳이므로 그 곳으로 갈 때는 베트남 사람들은 항상 ‘về (돌아간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유난히 귀소 본능(?)이 강한 것일까?
언어를 통해 비쳐지는 외국인들의 생각과 정서를 가늠해 보는 일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저자 소개
황경석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였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였으며 현재 하노이에서 베트남어를 공부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저서로는 ‘속도경쟁사회’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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