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세상을 바꾼 전염병

전염병 자체는 파괴적인 존재다, 그렇지만 이로 인하여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행동은 더 파괴적이다. 한 예로 2003년 사스 같은 경우 전 세계적으로 직간접적으로 800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였고, 중세시대 흑사병 유행은 유럽에서는 사회구조를 붕괴시키면서 르네상스가 발생하였고, 중국에서는 원나라가 붕괴하고 명나라가 들어서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전염병은 이전처럼 맹위를 떨치지 못하지만, 경제를 위협하고, 국가의 정세를 바꿀 수 있는 위력을 보이고 있다. 2020년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면서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본 기사는 전염병이 세계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지를 바라보면서, 2020년대를 사는 우리가 참고할 사항을 알아보았다.

근대 이전의 전염병

흑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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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균

흑사병 환자 증상

흑사병은 무엇인가?
흑사병은 페스트 균으로 인한 질병이다,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부분적으로 분포해 있는 페스트 균은 숙주 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흑사병의 주요 형태는 가래톳 흑사병(bubonic plague), 패혈증형 흑사병(septicemic plague), 폐렴형 흑사병(pneumonic plague) 등이 있다
흑사병은 인류가 알고 있는 질병중 가장 단시간에 사망으로 이르게 하는 병이다. 급성 페스트로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평균적으로 6시간이며, 중세때 유행이 한창일때는 한 사람이 밤중에 죽으면 장례식을 하러 온 친구 2명, 임종을 지켜보러 온 신부, 시체 나른 사람까지 4명 모두 그 다음날 저승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1차 흑사병, 동로마 제국을 쇠퇴시키고,
이슬람제국을 탄생시키다
흑사병의 1차 유행은 서기 541년 경 발생해서 200여년 간 유행했던 범유행전염병이다, 당시 이집트에서 시작해서,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까지 전염되었다. 본 질병으로 인하여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1차 판데믹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 동로마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주도하에 예전 로마제국 영토를 회복하기위한 군사원정이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인하여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1일에 5,000명씩 사망해서 도시 인구가 60%이상 감소하고 수도권 지역내 인구도 50%감소하였다. 심지어 황제 자신도 흑사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았난다, 결국 동로마제국은 이탈리아 재정복에 성공을 거두지만, 흑사병으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로 인하여 이탈리아 영토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6세기 중반에 침입한 랑고바르드족에게 이탈리아 대부분을 정복하자마자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감소로 국력이 쇠해지자, 사산왕조는 동로마 제국의 중심인 아나톨리아 지방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유럽지방은 슬라브족 및 아바르족의 침입에 시달리게 되었고 패권을 잡고 있던 중동지역의 정세가 불안해 지면서 이슬람제국의 중흥으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중요한 시리아, 이집트를 영구 손실하게 된다.

그렇지만 흑사병이 시작한 제국의 위기는 100여년 이상 지속되게 되며, 당시 동로마제국은 흑사병으로 인하여 관공서 기록도 부실해졌으며 역사서도 부실해지다 못해 사라졌다. 그나마 있는 기록도 글을 아는 자가 없어서 관리 임명에 곤란을 겪는다는 내용이 수록될 정도로 인적자원 위기를 겪고 있었다. 아울러 지방을 지키는 귀족 가문과 가계에 대한 기록도 부실해졌으며, 전염병과 그로 파생된 전쟁으로 인하여 귀족들이 몰락하여 다른 가문으로 교체되었다. 문제는 교체된 가문과 시장의상인들 직공들 조차도 정확히 언제 자신들이 집권했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 The Black Death>

2차 흑사병 판데믹-중세 유럽 봉건제도를
붕괴시키고 자본주의의 씨앗을 열다.
1346년에 유럽 동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353년까지 유럽 전역에 급격하게 확산되었던 그레이트 플레이그(Great Plague)라고 불리는 2차 흑사병 판데믹은 세계사 교과서에 언급이 될 정도로 대규모 전염병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다. 본 역병이전 세계 인구는 4억 5천만 명에 달했으나, 역병 이후 15세기에는 3억 5천만으로 줄어들었을 정도로 인명피해는 엄청났다. (2019년 기준 세계 인구로는 14억 사망과 비슷한 비율) 최소 1억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역사상 한 기간에 발생한 사망자 통계 가운데 가장 급격한 증가다. 2차 흑사병 판데믹은 1348년에서 1350년 사이의 3년간 최고조에 달하여, 이때 유럽 인구의 1/3에서 절반에 이르는 사람이 사망하게 된다.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은 수 년에 걸쳐 대규모의 피해를 보게 된다. 이 병으로 인해 7,500만명~2억 명의 인구 즉, 당시의 유럽 인구의 최소 30%에서 50%, 일부 지역에서는 70% 이상이 몰살당한다.
반드시 흑사병 때문인 것만은 아니지만, 중세의 대유행은 당시까지 유럽의 특징인 봉건제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무리한 십자군 전쟁으로 귀족수가 줄어들고, 유럽내 무역의 증가로 도시인구는 늘어나고 있었지만, 흑사병의 유행으로 인하여 유럽인구의 최소 30%가 감소하면서 흔들리던 봉건제의 기본 질서가 무너져버린다, 특히 봉건 영주의 사망이 잦아지면서 다중 유산 상속을 받아 갑자기 부유한 사람이 생기고, 아울러 농노들이 도시로 도망쳐서 자유민으로 전환되는 인구비율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농부, 농노의 비중이 줄어들고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소작농이 증가하게 된다, 아울러 도시에서도 인구감소로 인하여 노동자의 임금이 많이 상승하는 등 경제적 영향이 있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일꾼들이 식사 제공에 많은 돈을 요구하면서 이를 제재하기 위해 왕이 임금 상승 제한선을 발령하였지만, 인구가 부족한 탓에 일꾼들이 많은 임금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2차 흑사병은 유럽의 봉건제를 확인 사살하고 노동자의 권익 상승과 더불어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의 싹을 틔우는 계기가 된다 .

천연두 – 아메리카, 호주의
원주민을 학살한 진정한 주범

천연두는 무엇인가?
천연두는 Variola major와 Variola minor라는 두 종류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생기는 전염병이다. 전반적인 치사율이 30% 정도로 높으며 특정 경우에는 치사율 75%까지도 올라가는 위험한 병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전신에 나타나는 천연두 특유의 발진이 있다. 심할 경우 타인이 보기에 혐오감이 들 정도로 흉한 발진이 온몸에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사회적 고립이 환자들에게 정말 큰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고립 뿐만아니라 앓는 도중 고열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었으며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곰보자국’이라 부르는 흉터, 열로 인한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무서운 질병이었다. 특히 신경세포가 열에 약하기 때문에 뇌에 손상을 입거나, 시력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전염성도 굉장히 강해, 환자가 1명이라도 생기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주기적으로 대유행을 되풀이하여 많은 사망자를 냈으나, 17세기 이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창시한 종두법이 보급되고부터 격감하였으며, 20세기 천연두 백신이 개발되면서 박멸되었다.

천연두/수두 비교

천연두 바이러스

성지회복을 못하고 신대륙 원주민 학살한 주범이 된
십자군의 천연두
천연두는 본래 이집트 및 중동 지중해 지역에서 시작된 병으로써 약 기원전 1000년경 인도로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이 후 900년 후에는 동아시아 지역으로 퍼졌고 대략 서기 7세기~8세기경 유럽으로 유입되어 십자군 전쟁이후 유럽 내 인구이동이 증가하면서 풍토병이 된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유럽의 풍토병이 된 이후 대항해시대를 거쳐 미주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서기 15세기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미주대륙에 천연두와 유사한 질병이 있었다는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 1509년 캐리비안의 히스파니올라 섬에 전래되었고, 1520년 히스파니올라의 에스파냐인들이 멕시코에 도착함으로써 미주 본토로 퍼졌다. 천연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구를 급감시켰고 에스파냐인들의 아스텍, 잉카 정복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북미 동해안 정착(1633년 플리머스) 역시 북미 원주민들 사이의 천연두 창궐과 그로 인한 인구 감소를 야기했으며, 그 뒤 미주 현지에서 태어난 식민지인들도 천연두에 걸렸다. 미주 원주민들 사이의 천연두 치사율은 80 ~ 90%에 달했다. 호주에는 1789년에 한 번, 1829년에 재차 천연두가 전래되었다. 천연두는 호주대륙의 풍토병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1780년에서 1870년 사이 어보리진 원주민들의 주요 사망원인이었다. 18세기 중반이 되면 천연두는 호주와 여러 작은 섬들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지역의 주요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 유럽의 경우 천연두는 18세기까지 주요 사망원인이었으며 매년 400,000 여명의 유럽인이 천연두로 죽었다. 매년 스웨덴의 유아 중 10% 이상이 천연두로 죽었고, 러시아의 유아사망률은 그보다도 높았다. 18세기 후기가 되면 중국과 영국의 북미 식민지들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 인두법 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부유층 사이의 천연두 영향은 다소 줄어들기 시작했고 20세기 중엽 백신이 개발되었다. 국제협력이 이루어지면서 천연두는 1970년대 말을 기점으로 박멸되어, 연구소에서나 볼 수 있는 질병이 된다.

현대의 전염병

스페인 독감

스페인 독감은 무엇인가?
제1차 세계 대전 후반부터 종전 직후인 1918년 ~ 1919년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조류독감의 유형)에 의해 유행한 독감이다. 유행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나, 병의 이름이 스페인 독감인 이유는 전쟁 중 인 대부분의 나라들이 보도 검열로 이를 다루지 않는 가운데, 자유로운 스페인 언론이 깊이 다루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스페인 독감’이라고 명명되었다. 기원에 있어서는 이견이 많으나 전쟁이 끝난 후 병사들이 귀향하기 위해 모여 있던 캠프에서 발병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3일 열병”이란 이름처럼 짧은 증상기간 이후 단순한 감기 증상을 가지고 귀향한 병사들이 각지에 전파함에 따라 유례없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당시 인구가 약 16억 명이었는데, 감염자는 약 5억 명에 사망자는 최소 2,500만에서 최대 1억(총 감염자의 4~16%, 전체 인구의 2~6%)에 달한다고 추정된다. 사망자 수 통계가 부정확한 이유는, 진단할 겨를도 없이 야전에서 사망한 군인들과 합병증 사망자를 포함하지 않거나 당시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사망자를 추정할 수도 없는 인도, 중국 같은 나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현대적 범유행 질병 – 스페인 독감
스페인 독감의 의의는 위생관념이 어느정도 확립된 상황에서 발생한 질병이라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질병이 냄새로 전파된다거나, 피의 균형을 맞추면 병이 낫는다는 등 현대 기준으로는 괴상한 생각을 하였다. 방역이나 위생개선 등은 소수의인원들만 실행하였지만 이미 20세기 초에는 19세기 콜레라 유행으로 얻은 세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하고 있고 공중보건(상수도, 하수도, 위생 등)에 대한 체제가 어느 정도 자리잡여 있던 근대적인 인류였지만, 위생이 개선된 상황에서도 19세기, 20세기 초 발전된 교통망을 통하여 1차대전 종전후 병사들이 교통수단에서 민간인과 섞이게 되면서 알래스카 이누이트족 마을부터, 영국령 남아프리카까지 전세계로 단기간 내 전염되었다는 점에서, 첫 현대적인 범유행전염병으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전차탑승을 거부당하는 승객 모습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SARS는 무엇인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重症急性呼吸器症候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은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인 사스 코로나바이러스(SARS-associated coronavirus)에 의해 감염되는 질병이며, 이 병은 공기를 통하여 바이러스가 옮겨지면서. 독감과 비슷한 근육통, 기침 등의 증상을 보이게 된다. 아울러 상시 38도 이상의 고열이 발생하는 특징이 있고, 중증 환자에게서는 폐렴 증상과 호흡곤란이 일어날 수 있다. WHO에 따르면 사스 감염자 중 10% 가량이 심각한 폐렴 증상을 보였으며 치사율은 3.4%였다. 전 세계적으로 8,422명이 감염되었고 918명이 사망하는 치사율 10.9%정도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

사스 – 범 아시아 권 수요 감소 및 한국 분기 성장률 마이너스 기록
중앙일보 자료에 의하면 사스는 2002년 11월 발병해 2003년 초부터 한국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전염병의 여파 특히,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여파는 성장률에 곧바로 반영됐다. 2002년 3분기와 4분기에 2%, 1.1%를 기록했던 전 분기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3년 1분기에 –0.7%, 2분기 -0.2%로 주저앉았다. 고공 행진을 하던 수출도 5월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해 월별 수출은 1~4월에 모두 전년 대비 20% 안팎의 증가율을 보였는데, 5월 증가율은 3.5%에 그쳤다.

아울러 당시 사망자 1위, 2위를 기록한 홍콩 싱가포르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데, 홍콩과 싱가포르는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각종 국제전시회 및 행사가 중지되면서 약 130억 달러 규모의 타격을 입었다.
아울러 싱가포르의 방문객수는 사스의 영향이 절정이었던 2003년 4월경 방문객수가 71%나 줄었고, 홍콩도 관광객수가 약 70% 감소하게 되면서, 당시 GDP의 5%정도의 피해를 입게된다. 그렇지만 중국 경기가 회복되는 기저효과로 인하여, 03년 당시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3.06%정도의 선방을 하게 된다.

지카 바이러스

지카 바이러스는 무엇인가?
1947년 아프리카 우간다의 숲에서 사는 한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된 지카바이러스는 주로 주간에 활동하는 모기에 의해 전파되며, 2010년대 이전까지는 큰 유행이 없어 연구가 힘들었다. 주로 적도권 열대기후 국가에서 유행하는 지카 바이러스는 감염 증상이 뎅기열과 비슷하며 가벼운 두통, 반점구진발진, 열, 권태감, 결막염, 관절통 등을 포함한다. 현재까지 지카열은 범위가 한정되고 5명 중 1명 꼴로 증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치명적이지 않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병이지만, 문제는 이 병을 앎은 후의 후유증이다.
지카 바이러스의 후유증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임신한 상태의 여성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태아가 소두증에 걸린 채 태어날 가능성 높다는 점이다. 특히 2015-16년 브라질에서 신생아 소두증이 15배가 증가한 원인을 지카 바이러스로 추정할 정도로, 임신 후의 소두증은 지카 바이러스 감염의 심각한 후유증으로 알려져 있다.

지카바이러스의 숙주인 모기

지카 바이러스의 후유증-소두증

올림픽과 브라질 집권당을 퇴출시킨 지카바이러스
2015년 말엽부터 브라질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지카 바이러스는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2016년 올림픽을 준비하던 브라질에 타격을 주고 아울러 경제난의 가속화로 인하여 브라질에 극우 정권이 들어서는 결과로 이어지는 중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다.
올림픽은 일반적으로 인프라 투자의 상승과 더불어 건설경기가 부양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면 올림픽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 준비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이러한 기저 효과를 누리지 못 하였고, 또한 2015년부터 시작된 유가 하락으로 인하여 전반적으로 경기불황이 매우 심해졌기 때문에 경제적, 정치적으로도 혼란 상황이었다. 2016년 올림픽은 이러한 상황을 역전 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2015년 말부터 시작된 지카 바이러스의 유행은 2016년 1월 30일 기준으로 신생아중 230명이 소두증으로 확인되었고 이중 5명이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참가하는 선수단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브라질올림픽위원회와 에두아르두 파이스 리우 시장도 기자회견을 통해 이집트 숲 모기 박멸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고 브라질은 올림픽 기간이 겨울이라 비가 적고 기온이 낮아지기 때문에 모기가 활동하지 못하므로 지카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고 안심의 메시지를 발표했으나, 소두증의 공포로 인하여 임산부나 노약자 브라질 입국 자제 권고를 각국에서 발령했을 정도였다. 브라질은 지카 바이러스, 경제난, 그리고 늘어나는 범죄로 인하여 정치적인 혼란에 빠졌고, 2015년 지우마 호세프 당시 대통령은 결국 경제난과 계속되는 부패스캔들로 올림픽을 앞두고 탄핵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2016년 리우 올림픽은 지카바이러스, 경제난, 치안혼란, 공무원 월급체불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별 사고없이 끝나 절반의 성공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기대 유치한 해외 관광객수도 올림픽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2014년 수준인 650만명 수준에서 종결되었다.

한국정부의 브라질 출국건 건강관리 권고 포스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의 치안상황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를 어떻게 바꿀까?


흑사병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세상을 바꾼 전염병의 증상과, 경제 사회적 피해를 간략하게라도 알아보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세상은 바뀌어도 우리안에 내재된 공포는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위생과 의학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2020년대 인류는 흑사병, 천연두 같은 엄청난 치사율의 질병의 위협에서 벋어났지만, 공포는 여전하여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같이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에도 공포를 느끼며, 심지어 성인을 죽이지 못하는 질병인 지카바이러스에도 공포에 질려 두려워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포는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도 나오고 있다, 공포로 인하여 봉쇄된 마을과, 대도시, 그리고 중단된 항공편과, 크루즈 선박에 감금된 3600명의 승객,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지난 질병들처럼 경제가 흔들리고 있고, 공포로 인하여 이동도 자제되고 있는 상황은 흑사병때나, 2020년이나 공포의 본질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2003년 사스, 아니 1918년 스페인 독감때도 하지 못하던 국제이동 차단과, 엄격한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신종코로나가 스폐인 독감 수준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하더라도, 공포로 인하여 발생한 우리의 행동은 이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하나의 씨앗이 될 것이다.
글. 한성훈 kosdaq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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