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해를 보낸다-해를 맞는다

해를 보낸다는 말은 참 신기한 말이다. 어떻게 마치 사람을 떠나 보내 듯이 세월을 보낼 수가 있을까. 세월이란 것이 만져지는 것도 아니고 앞에 두고 감정을 나누는 상대도 아닌데.
해를 맞는다는 표현은 그래서 더 신기하다. 새로운 해를 내가 초청한 적도 없거니와 그 시간들이 손님처럼 찾아와 나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아닌데. 아니, 그렇게 찾아온다 하여도 손을 들어 기쁨에 찬 환영으로 맞이하며 끌어안을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님에도 우리는 매년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해를 보내고 해를 맞는 일로 바빠진다.
어쨌거나 마지막 장을 넘기는 다이어리와 더불어 해는 가고 새로 받은 탁상 캘린더의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잉크 냄새 사이로 새해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런 해를 보내고 맞는 행사가 나라마다 있겠지만 그중에도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의 새해맞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타임스퀘어에서 함께 하는 새해 맞이. 그것이 더욱 특별해진 것은 타임스퀘어 광장의 대형시계를 바라보며 소리 높여 외치는 카운트다운과 뉴이어볼드롭(New Year Ball Drop) 때문일 것이다. 새해 0시가 되면 흥겨운 음악과 더불어 대형 크리스탈볼에서 오색 색종이가 사람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광장에서의 새해맞이는 절정을 이룬다. 운집한 사람들은 일제히 해피뉴이어를 외치며 환호한다. 이 행사가 어찌나 유명한지 왠만한 겨울철 할리우드 로맨틱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씬이기도 하거니와 여러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포함되기도 한단다.
이 광장에는 12월 31일이 되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00만여 명씩 몰린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상상해 보라. 광장에 모여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숫자를 세는 모습을. 삼, 이, 일, 영! 아, 쏘리, 영어로 했다고 치자. 아무튼 시계의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12를 가리키며 일제히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상상하자! 폭죽이 터져 오르고 사람들이 얼싸안고 새로운 해를 기뻐 맞는 바로 그 장면을! 여기에는 피부색도 나이도 종교도 정치적 성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해피뉴이어를 외치며 새해를 맞는 기쁨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이가 반갑다. 모든 것이 새롭다. 그러니 눈이 마주치는 사람에게 마다 인사한다. 어쩌면 상상을 해보시라 한 것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12월 31일에 섭씨 33, 4도를 오르내리는 곳에서 새해를 맞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아, 오해를 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겠다. 나 역시 맨해턴에서 새해를 맞아 본 적은 없다.

시간에 0시는 없다. 그런데 해의 마지막 날의 자정은 새해의 0시로 바뀌는 신비함을 보여준다. 그것이 신비하다고 한 이유는 그 때부터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시간도 새 것, 캘린더도 새 것, 마음도 새 것이니 새 출발을 외친다. 새해는 그래서 새롭고 우리를 새로운 다짐으로 흥분하게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한 것이 있다. 실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1월 1일 뜨는 태양은 어제 뜬 그 해이지 다른 행성계에서 방문한 새 항성이 아니다. 그러니 새해 첫 날도 어제의 지난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일 뿐이다. 가족이 바뀌는 일도 없다. 그 보기 싫은 직장 상사가 뒤바뀔 리도 없다. 다니던 한국 학교가 베트남 학교로 바뀌는 일도, 1군에 있던 사업장 주소지가 10군으로 변하지도 않는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의 차이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의 사업계획을 세우며 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신년의 계획을 세웠다고 해서 이전 것이 다 사라지고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새해도 변함없이 지난 해의 연장선 상에 있는 어느 한 날일 뿐이기 때문이다. 새해 계획을 세운다고 지난 해의 손실이 갑자기 장부에서 지워지거나, 지난 해에 큰 실적을 거둬 금고에 쌓인 돈이 새해 새 아침에 새로 시작하라고 텅 비어 사라지는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해를 보내고 다시 해를 맞는다는 것의 정체는 그저 우기와 건기로 구분되는 이 도시의 뜨거운 한 날을 지내며 우리가 날짜를 까먹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365개로 구별된 숫자를 부여해두고 하루하루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잡스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새해는 새롭다. 지난 해의 고난이 새해라고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새해인 오늘이 어제와 다름없는 한 날의 연장이라 해도, 새해는 새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도 새롭다. 마음이 새롭고 각오도 새롭다. 비록 어제까지 어려웠어도 오늘은 새해이므로 마음을 다잡고 각오를 다시 하게 하는 것이 새해의 신비이니까. 그러다 보면 같은 일도 다른 시각으로 보이게 되니 생각치 못한 새로운 길도 열릴 일이다. 그러니 가는 해를 아쉬움과 함께 보내고 오는 해를 또한 반가이 맞이할 만하지 않겠는가.

지난 해 뜻하지 않게 씬짜오베트남의 대문 격인 짜오칼럼을 맡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선한 의도도 열매가 좋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은 한 해였다. 설익은 풋과일 같은 글들을 마주 대한 독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시위를 떠나 버린 이 일을 어쩌랴. 그렇게 많은 고민 중에도 해는 간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이 해결 안되는 고민을 가는 해 편에 실어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 맞는 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짜오칼럼을 써야 겠다는 마음을 다진다. 그래 봐야 독자들에게는 지난 호의 글이 이번 호의 글과 다를 바 없겠지만.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펜을 고쳐 쥔다. 아니, 키보드 위에 손을 얹는다. 가는 해는 마지막까지 마감일이라는 압력을 행사하며 떠나는 자기를 잊지 못하게 하는데 저만치 보이는 새해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夢先生

박지훈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가이자 ‘몽선생의 서공잡기’, ‘크룩스크리스티’의 저자이며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했다. 현재 설계, CM전문회사인 정림건축의 베트남 법인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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