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짐승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하하 호호 웃고 떠들었던 것 같은데 차돌박이가 불판 위에 올라가자 여전히 웃고 있지만 날카롭게 변한 눈빛은 그들의 모습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다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시장은 반찬이 아니라 사람을 흉포하게 한다.
잠시 10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약속 시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간판만 확인하고 1층을 둘러볼 새도 없이 2층 203호 룸을 찾기에 바빴다. 시골집 같은 미닫이문이 열리자, 김치와 젓갈과 쌈무 등의 절임 채소 일곱 가지가 가지런히 차려져 있고 달짝지근한 육회가 들깨 냄새가 고소한 된장국과 쌈 채소가 기본 반찬으로 나와서 환영해주었다. 불판에는 환기구 길게 목을 늘어뜨리고 아직 나오지 않은 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웃으면서 밑반찬을 즐기고 있었다. 옆에서 된장국이라고 하는데 된장과 들깨의 비율이 라면 수프만큼이나 비율이 좋은 게 된장이 아닌 것 같았다. 역시나, 메뉴판을 다시 보니 감자탕이다.
감자탕 국물이 기본으로 나온다. 사장님이 술을 파실 줄 아시네 하며 은근히 감탄했다. 메뉴판을 보고 사장님의 취향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나와 같은 고기 인(人)이자, 꾸이 인(人)이다.
탕수육에 찍먹(찍어서 먹는)과 부먹(부어서 먹는)이 있다면 고기는 굽든가 안 굽던가로 나뉜다!
리고 메뉴판에서 맘에 들었던 점 또 한 가지, 식사 메뉴는 ‘후식’이라고 적혀있다. 고기가 메인 메뉴이고 식사가 후식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돌솥비빔밥이나 묵직하지만 부드러운 뼈 해장국이 본 메뉴가 아니고 후식인 거다. 암,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 고기 좀 먹는다고 할 수 있지.
이 집 사장님 맘에 든다. 볶아 먹어보기만 했던 모닝글로리를 장아찌로 나오니 마늘종처럼 산뜻하고 감칠맛이 있다. 육회와 젓갈로 식욕을 돋우고 있을 때쯤, 초록 대파와 팽이버섯이 장미꽃다발처럼 돌돌 예쁘게 말린 소고기에 둘러싸인 우삼겹과 차돌 야채말이가 나오자 모두 눈길이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에 말했던 짐승의 표정이 되었다. 벌건 고기가 갈색으로 변하자 다정하던 그 눈빛들도 식욕으로 검게 차올랐다.
돌돌 말렸던 핑크빛 차돌을 불판 위에 다시 길게 펼치고 지글지글 소리내며 노랗게 익어갈 때쯤 옆에서 같이 익히던 한입 크기의 파란 대파와 새하얀 팽이버섯을 한소끔 올려 다시 김밥처럼 말아서 접시에 올렸다. 앙증맞게 나온 소금, 겨자, 매운 치킨양념 맛, 불고기 양념 맛의 4가지 소스를 번갈아 찍어가며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다.
제일 먼저 기대했던 건 오랜만에 먹는 1cm의 벌집 껍데기였다! 곱창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쫄깃하지만 부드러운 갈색 유혹에 메뉴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메뉴였다.
네모반듯하게 잘린 파운드 케이크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껍데기에는 촘촘하게 칼집이 들어가 있고, 호떡을 누를 때 쓰는 누르개로 꾹꾹 눌러 가며 익혀서 모서리까지 골고루 익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으레 껍데기는 굽다 보면 타거나 덜 익은 부분이 조금씩 나오는 데 호떡 누르개로 아낌없이 익히니 버리는 부분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현기증 날 것 같이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고기가 뱃속으로 들어가자 진정이 되면서 메뉴판 마지막 장에 있던 총각님들의 결의와 시간이 곧 돈이라는 ‘알바생’ 배지와 ‘나만 믿으라’ 와 ‘참 안 어울리는 갑’이라는 사장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우울한 날에는 들을 만한 곡은 ‘소곡이’나 ‘돼지곡이’가 좋다는 문구와 계산대 앞에 고기가 친절하고 사장님이 신선하다는 문구까지 소소하게 드러나는 위트에 피식 나오는 웃음과 함께 1986년생의 젊은 사장님의 감성도 느껴졌다.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정종만 한 큼직한 라이공 리버 아이스 보틀과 오향 돼지 꼬리.
소꼬리 곰탕은 익히 아는데, 오향족발도 아는데, 돼지 꼬리는 꽤 생소하다.
사장님한테 여쭈어보니 예약 안 하면 주문하고 싶다고 졸라도 먹을 수 없는 이 집만의 수량 한정 메뉴란다. 혹시나 해서 주문할 수 있냐고 하니 운이 좋게 딱 1인분이 남았단다. 오예~
꼬불꼬불 말려서 구이를 할 만한 부위가 있었던가? 라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가운데 단단한 뼈를 어른 손가락 2개만 한 굵기 살이 실하게 들어있다. 생긴 게 꼭 족발 같다. 익으니까 하얀 지방인지 살인지 포슬포슬 올라오는데, 꼭 곱창 속에 새하얀 곱이 익으면서 삐져나오는 것 같다. 젓가락으로 뼈 쪽을 집어 올리니 살이 헤벌리고 살짝 벌어진다.
굉장히 쫄깃한 식감일 줄 알았는데 마시멜로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다.
어차피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먹기 위해 살던가, 살기 위해 먹던가. 맛있는 음식이 삶을 즐겁게 하고, 즐거운 삶은 음식을 감사히 즐기고 음미할 수 있게 한다.
계산하고 가계를 나가기 전에 이 집과 꼭 어울리는 노래가 떠올랐다.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고기가 있기에, 자 이제는 차가운 기름을 닦고,
(총각네로) 컴백홈!
* 택시로 갈 때는 기사님한테는 미딩송다라고 말하고 근처에서 찾는게 길 찾기 더 쉬워요!
총각네 1986 식육식당 (doc thanh quan 1986)
주소: Đỗ Đình Thiện, Mỹ Đình, Từ Liêm,Hà Nội l 전화: 0338 324 563
영업시간: 월~일 휴무 없음. 오전11시~밤 11시 (휴게시간 없음. 구정 설 연휴 휴무)
돼지고기(삼겹/목살/가브리/항정/껍데기/꼬리/갈매기살), 소고기(생갈비/양념갈비/차돌구이/우삼겹), 식사(돌솥비빔밤/된장찌개/순두부/뼈해장국/김치찌개/불고기)외 냉면, 라면(포장/배달 준비 중)
기사 제공 : 앨리스 리 Alice LEE (alice.lee@the-ascott.com)
Somerset Grand Hanoi mana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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