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옛말에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 서방이 맞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베트남 버전으로 하면 ‘사이공 강가에서 돌을 던지면 응우엔 서방이 맞는다’ 쯤 될 듯하다.
성씨 태반이 응우엔(Nguyên,완)씨다. ‘베트남인의 성과 이름’ 이란 책에 따르면 베트남의 가장 흔한 성들은 Nguyên (38,4%), Trần (11%), Lê (9,5%), Phạm (7.1%), Huỳnh (Hoàng)(5,1%), Phan (4,5%), Vũ (Võ) (3,9%), Đặng (2.1%), Bùi (2%), Đỗ (1,4%), Hồ (1,3%), Ngô (1,3%), Dương (1%)등. 아주 낮은 비율을 차지하는 남은 성은 Lý, Vương, Trình, Trương, Đinh, Lâm, Đoàn 등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성씨인 김 씨. 베트남을 대표하는 성씨에는 응우엔(Nguyễn)인것이다. 전 세계 약 9천만 명이 쓰고 있는 응우엔(Nguyễn) 성은 중국의 이(李) 성과 장(張) 성에 이어 3위로 많다. 응우엔(阮)은 베트남과 중국의 성이다. 베트남인 40%가 가진 응우엔 성은 베트남의 가장 흔한 성씨로 중국에도 있지만 크게 많지 않고, 한국에서는 ‘원’이나 ‘완’으로 발음되는데 이 또한 높은 비율이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베트남에서 응우엔, 쩐, 레 성씨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적 원인을 살펴보자.
왕조가 멸망을 할 때마다
전왕조들의 성씨를 응우엔으로 바꾸다.
이들 3대 성씨는 왕조와 관련이 있다. 응우엔 왕조 (1802 ~1945), 쩐 왕조(1225~1400), 레 왕조(1428~1788)의 영향으로 세 성씨를 따르는 사람이 60%에 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의 이유는 쩐(Trần)왕조와 관련이 있다. 쩐 왕조 이전은 리(Ly) 왕조(1009~1225)였다. 리 왕조는 1009년 Lý Công Uẩn 즉위로부터 Lý Chiêu Hoàng 퇴위 후 Trần Cảnh에게 양위할 때까지 총 216년을 통치했다. 쩐 왕조의 시초 Trần Cảnh은 나이가 어려서 Trần Cảnh의 삼촌인 쩐 투 도가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이 기간에 베트남인의 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일이 일어난다. 쩐 타이 동(Trần Thái Tông, 즉 쩐 깐) 왕조 시대에 왕조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후에 쩐 투 도(Trần Thủ Độ)는 쩐씨의 조상이 ‘리’라는 이름을 가진다는 이유로 퇴위한 왕과 인척관계가 있는 리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응우엔 성으로 바꾸게 하는 명령을 내렸다. 쩐 투 도의 속셈은 사람들이 리 왕조를 잊어버리고 리 왕조를 깨끗이 없애기를 원했던 것이다. 역사 서적은 “쩐씨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전국에 리 성을 가진 사람을 전부 응우엔 성으로 바꿔야 되었다”고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그 왕조의 성을 가진 사람은 응우엔성으로 바꿔야 했던 관례가 많아 응우엔 성을 가진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게 되었다.
1232년에 리 왕조가 쇠망했을 때에도, 쩐 투 도는 리씨의 후예들에게 응우엔 성으로 바꾸게 했다. 그 이후 정권을 잡은 호 퀴 리(Hồ Quý Ly)는 쩐 왕조 타도시에 많은 쩐씨의 후예를 죽였고 호 왕조가 무너지자 호씨의 후예들은 다음 왕조의 보복이 두려워 모두가 응우엔으로 성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1592년에 막(Mạc) 왕조가 무너졌을 때 또한, 막씨의 후예들을 응우엔으로 성을 바꾸게하였고 1802년 응우엔씨가 다시 정권을 장악했을 때에도 쩐왕(Chúa Trịnh)의 일부 후예도 응우엔으로 성을 바꾸었던 것이다.
응우엔 왕조의 법률에 따라 응우엔 성을 가진 사람은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연유로 많은 죄인들은 죄를 감하고 은총을 받기 위해 응우엔으로 성을 또 한번 바꾸게 되었고 왕조들의 변경에 따라, 응우엔 성을 가진 사람은 갈수록 많아져 결국 응우엔 왕조가 설립된 것이다. 응우엔은 베트남의 마지막 봉건왕조이다.
19세기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자 처음으로 프랑스인은 베트남 전국에서 대규모의 인구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과정에 대부분 상민들이 성이 없어 통계할 수가 없다는 난관에 부딪혔고 이 때 프랑스인은 해법을 생각해낸다. 응우엔 성이 베트남인의 마지막 왕조임으로 성이 없는 사람은 응우엔 성을 가지게 한 것이다. 이로서 응우엔 성은 한번 더 전무후무한 대규모 확장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응우엔 성을 쓰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소통에 성을 사용하는 중국이나 서양과 달리, 베트남인은 주로 이름을 사용해서 서로 이름을 부르는데 어려움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박 사장님~~미쓰리 리~~ 등의 성으로 호칭을 사용하지 않아, 서로 이름을 부르는데 혼동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이름이 같으면 가운데 이름으로 구별할 수 있어, 더더욱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자를 쓰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자기 이름의 의미는 알지만 한자로 쓸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이름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베트남 사람들은 성씨 대신 이름으로 호칭한다.
응우엔 반 남(Nguyen Van Nam)이라는 이름을 예로 들자면, 여기서 응우엔은 성씨(a family name), 반은 중간이름(a middle name), 남은 지어준 이름(a given name)이다. 베트남에서 정식으로 성씨와 이름을 다 함께 적어 미스터 응우엔 반 남으로 표기한다.
베트남은 보통 호칭할 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높은 자위에 있는 상대라도 성이 아닌 이름으로 호칭한다. 예를 들면, 베트남 총리는 응우엔 쑤언 푹(Nguyen Xuan Phuc)인데 응우엔 총리가 아니라 푹 총리라고 부른다. 베트남은 남성과 여성의 이름에 들어가는 성씨 글자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끝 이름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기에 끝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높은 경의를 나타내고 싶은 경우
예외적으로 성을 호칭으로 쓸 때도 있다.
연장자를 직집 부를 때에는 형/오빠(Anh) 이나 누나/언니 (Chi)를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가령 “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 뻘 되는 남성들에게는 “탄 형”(Anh Thanh)이라고 부르고, 같은 이름을 가진 언니 뻘 되는 여성에게는 “탄 언니”(Chi Thanh) 라고 부르는 식이다.
그리고 자기 부모보다 조금 젊은 정도의 연장자라면 Cô나 Chú를 붙여서 부른다. 상대가 여성이라면 Cô를 붙여서 “꼬 탄” 이라고 부르고, 남성이라면 Chú 를 붙여서 “쭈 탄”이라고 부른다. 동생 뻘 되는 사람을 부를때에는 성별에 관계없이 em을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중간 이름, 여자는 ‘티’, 남자는 ‘반’
성씨에 대해서는 이미 얘기했고 다음은 중간이름은 영어로 middle name 또는 cushion name이라 부른다. 이름의 중간자로 남자는 반 (Van), 여자는 티(Thi)를 많이 쓰는데 요즘은 여자이름에 티를 잘 붙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1945년 이전 여자이름의 경우 ‘티’를 100%붙였다고 한다.
어쨋든 중간이름 ‘티’의 의미는 소속을 표시하며
‘쩐티미’라는 여자의 이름은 쩐씨 집안 소속의 ‘미’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표시한다. 한편 남자의 중간이름으로 반(Van), 흐우(Huu), 득(Duc),탄(Thanh), 꽁(Cong), 꽝(Quang) 등이 다양하게 쓰인다. 남자들의 중간 이름의 경우는 한국으로 말하면 항렬격으로 세대별 구분을 위해서 쓰이는 용법, 성씨 내지 파를 표시하는 경우 등이 있다. 남자의 경우 중간이름이 생략되기도 하는데 1988년 통계에 의하면 약 22%가 중간 이름이 없는 경우라고 한다. 레 러이,응우엔 짜이가 여기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