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상식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배워서 알고 있지만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다만 자신 마음의 잣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물론 법적인 규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 할 수는 없지만. 특히 성적 취향이라는 것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람을 판단짓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에곤 쉴레는 필자의 가치관에서 본다면 아무리 예술가라는 점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딸만 둘 키우다보니 성적인 가치관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부정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거기에 한국이라는 보수적인 나라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레 성은 감추어야하고 드러내지 않아야한다고 배운 닫힌 사고를 가진 필자에게 에곤 쉴레의 그림은 어떤 누드화가의 그림보다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알아가기 전에 그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 화가의 일생을 안다면 그의 그림을 감상하기가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해서이다. 에곤 쉴레는 14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잃고 자신에게 관심없는 어머니와 지내면서 자기연민에 빠지게 되었다. 자기 연민은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자기과신으로 모습을 바꾸어서 그의 그림에 변화를 가지고 온다. 에곤 쉴레의 그림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을 그린 자화상과 에로티시즘이 가득한 누드 드로잉 자신의 스튜디오에 언제나 여자아이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가 아이들을 꼬여내고 풍기문란을 일으킨다고 고소하기 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 필자는 화가를 이해하기 보단 주민들을 이해한다.
그래서 필자는 예술가가 아닌것이다.
십대 아이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모델이었던 여자와 동거를 하고 그러면서도 또 다른 어린 여자와 결혼을 하는 어찌보면 요즘 말하는 막장 화가이지만 그의 그림만은 확실한 독특한 형상이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배우게 되면서 화려한 색채의 사용이나 여성에 대한 피조물에 대해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클림트의 그림과 닮은 듯 다르다. 클림트의 그림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화려한 여성의 누드화를 주로한다면 에곤 쉴레의 그림은 왜곡된 선과 뒤틀린 형태를 가진 누드화가 주를 이룬다.
그의 대담한 표현과 주제는 보수적 사고의 감상자들을 어느정도는 불편하게 만든다. 그의 그림중에서 오늘필자가 선택한 그림은 누드화이기는 하지만 느낌이 조금은 다른 가족이라는 그림이다. 그가 모델과의 동거생활을 접고 결혼하기로 한 여인 에디트와 에디트가 임신한 아이,그리고 에곤쉴레를 모두 그려넣은 가족이라는 그림은 에곤 쉴레가 꿈꾸는 가족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특히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했다는 피해망상으로 시달렸던 그는 그의가족을 그리면서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는 듯한 포즈로 서로를 보호하는 느낌을 주었다.
이 그림은 에곤 쉴레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1918년 그의 아내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임신한 채로 죽기전에 그의 가족을 그린그림이다. 그는 다른 그림들과는 확연히 다른 터치로 가족을 표현했다. 뒤틀리거나 형태를 왜곡시키는 것을 어느정도 참아낸 것은 아마도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가족으로써의 울타리를 느끼고 싶어서 였지 않을까. 그는 아내를 감싸안고 아내 에디트는 아이를 감싸안은 구조는 누드화로 표현되긴 했지만 가족애가 느껴지는 구조이다. 그가 그리던 삶은 그에게 오지 않았고 그의 임신한 아내는 1918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스페인독감으로 죽음을 맞게된다. 그 또한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3일 뒤 죽는다. 그때가 그이 나이 28세. 그렇게 일찍 떠나기위해서 그들은 그렇게 강렬하게 타올랐던 것일까..
작성자 : 최은미 – 아트매니져 겔러리 대표 (artmanagerv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