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사기열전 마지막 이야기 _ 사성 사마천

“사람을 얻으면 모두 얻는 것이다.”

사기열전은 방대한 책이다. 요약하거나 간추리거나 요점만 정리할 수 없는 책이다. 그러나 책의 어디를 펴서 읽더라도 사람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고전이다. 사기열전은 하나같이 ‘사람’에 관하여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인재 등용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한 장면을 소개한다.
뛰어난 전략가 중의 한 사람에 한신(韓信)이라는 인물이 있다. 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게 될 때 이 사람의 힘을 빌지 않았다면 대업을 이루기 불가능했을 테다. 사마천은 사기열전 32편 ‘회음후 열전’에서 이 인물을 다루고 있다. 한신의 열전을 쓰기 위하여 사마천은 직접 그의 고향에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인물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에게도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든 겁쟁이 한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한신은 평민이었고, 가난했고 더욱이 방종했다. 관리가 될 수도 없었고,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아갈 능력도 없었다. 항상 남을 따라다니며 얻어먹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때 한 관리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몇 달이 지나자 그 관리의 아내가 귀찮게 여겨 새벽에 밥을 지어 이불 속에서 먹고,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추어 나타난 한신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빨래를 하여 먹고 사는 아낙네 하나가 한신이 굶주리는 것을 가엽게 여겨 밥을 주었는데, 수십일 동안 먹여 주었다. 한신이 아낙에게 말했다.

“내 언젠가 이 은혜에 보답하겠소”
아낙이 화를 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사내대장부가 제 힘으로 살아가지 못 하길래 내가 다만 가엽게 여겨 밥을 준 것뿐이요. 어찌 보답을 바라겠소.”

한신은 한때 평균도 되지 못하는 인물로 평가 받았다. 한신은 항우에게 가서 여러 번 계책을 올렸으나 항우가 써주지 않았다. 그 후 유방에게로 가서 곡식창고를 관리하는 보잘것없는 벼슬을 받았다. 한번은 법을 어겨 참수를 당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 같이 처형되는 13명의 목이 잘리고 한신의 차례가 되었다. 한신이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우연히 관리였던 하우영과 눈이 마주쳤다. 한신이 그를 보고 외쳤다. “왕께서 천하를 얻으려 하지 않습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려 합니까?” 하우영이 그 말을 기특하게 여기고 모습이 장하다 여겨 살려 주었다. 그러나 그는 등용되지 못했다. 한신이 등용된 것은 승상 소하 때문이었다. 한신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어 본 소하는 한신이 뛰어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유방이 한중의 왕이 되어 험지로 좌천되어 들어가게 되자 모두 미래를 비관하였고 급기야 도망가는 장수들이 수십 명이나 속출하였다. 소하가 유방에게 자신을 여러 번 추천했지만 등용되지 않자 한신도 그 도망자 중에 섞여 도주했다. 소하가 한신의 뒤를 쫓아가 막은 후에 유방에게 찾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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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에 견줄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왕께서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보내도 좋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다투려면 한신이 아니고는 함께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유방은 한신을 불러 대장으로 삼으려고 했다. 소하가 다시 말했다.

“왕께서 본래 오만하여 예를 차리지 않습니다. 지금 대장을 임명하는 데 마치 어린아이를 부르는 듯하니, 한신은 떠나고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날을 택하여 재계하고 대장을 임명하는 단장을 차려 예를 갖추십시오”

유방이 이 말을 따랐기 때문에 한신을 얻을 수 있었다. 한신을 얻었기 때문에 천하를 얻어 400년 한 제국의 시조가 될 수 있었다. (사기열전 32편 ‘회음후 열전’ 중에서, 구본형 著 ‘사람에게서 구하라’ 재인용)
한신이 이인자가 되어 유방을 보좌할 때 유방은 그를 정성껏 대우했다. 자신의 수레로 한신을 태워 주었고, 자신의 옷을 입혀 주었고, 자기가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한신 역시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그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그의 근심을 제 가슴에 품고,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해 죽는다.’는 말을 명심하고 있었다. 이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그들은 서로 훌륭한 동지였고 파트너였다. 리더십 이론의 대가인 워렌 베니스는 조직 내의 이러한 평등주의를 ‘협력자 정신’(Co-Leadership) 이라고 부른다.
2천여 년이 지난 오늘, 사기열전의 텍스트는 여전히 살아있다. 인간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재등용은 정부와 기업은 물론 모든 조직과 집단의 가장 첨예한 관심사다. 좋은 사람이 없다 한탄할 일이 아니다. 신용이 있는 사람에게 돈이 모이듯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어 있다. 이것을 지극하다 부른다. 지극한 사람은 인복이 있다. 지극함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처세술이기 때문이다. 사기열전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도 이와 같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에 관한 한 사기열전을 따라갈 텍스트는 없다. 사기열전은 2천 년을 살아 숨쉬는 ‘인간학’ 교본이다.

장재용 | 작가, 산악인, 꿈꾸는 월급쟁이 |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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