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가 되면 베트남의 한인사회는 대규모의 인구이동이 일어납니다.
학생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방학 동안에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하고 그동안 모자랐던 사교육도 보충하고 최근 변경된 한국의 입시정보도 채워놓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없는 저희 집도 방학 때가 되면 일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가족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내년에 백수가 되는 노모를 한국의 집에 모시고 있는 집사람이 여름방학 동안 동생에게 모친을 돌봐달라하고, 남편과 아들이 일하는 베트남에 들어와 근 3달 가까이 지내다 엊그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연중 행사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생활 리듬이 확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예상치 않던 일이 일어나도 하루 이틀 정도 지나고 나면 다시 생활의 리듬을 되찾곤 했는데 요즘은 한 번 변화가 생기면 다시 제 리듬을 찾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죠.
한동안 드라이버 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몇 년째 골프와 거리를 두고 지내다가 이제는 더 이상 대신 할 운동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할 수 없이 골프로 다시 돌아왔는데, 예전의 스윙이 안 나옵니다. 기본적으로 골프 스윙 자체를 잊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골프가 좀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스윙하던 근육의 기억을 찾으려 말고 골프의 또 다른 매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 장년의 나이에 어울리는 좀 세련된 골프를 만들어야 할 텐데…,
우리 인생도 그렇듯이, 골프도 살아온 세월에 따라 그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든 시니어 골퍼는 힘으로 승부하는 젊은 골퍼와는 달라야 합니다.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지만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들과 같은 조건으로 승부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을 보면 좀 안타깝습니다.
세월에 따라 삶의 자세가 바뀌어야 하듯이 골프 역시 세월에 어울리는 골프의 다른 면모를 찾아내야 합니다. 즉 나이에 어울리는 골프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죠. 만약 골프가 세월의 흐름에도 도무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딘가에 심각한 고장이 난 것입니다. 기본조건이 변화하는데 결과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도연명 시인의 싯귀 중에 “(일월척인거) 有志不獲騁(유지불획빙) : 세월이 사람을 버리고 떠나니 뜻을 폼고도 펼칠 수가 없네” 라는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시구가 있습니다.
골프도 이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체력이 받쳐 줄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기능을 다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이런 허접한 시구나 남기며 아쉬움을 토로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골프를 시작했다면 일단 가장 먼저 할 일은 골프의 기능을 최고도로 올리는 것이 우선 과제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스코어를 남길 수 있고, 기록하지 못한 스코어의 아쉬움도 덜어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참에 세월이 감에 따라 달라지는 골퍼의 자세를 좀 돌아볼까요.
젊은 비즈니스 골프
젊은 시절 골프는 고민이 없는 골프입니다. 공 만 잘 맞으면 만사 해결, 싱글 스코어만 그리면 그날의 골프는 만족입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골프는 잘 치기 위해 매달리는 운동입니다.
젊은 그대가 골프를 시작한 이유가 아마 사업상의 인맥을 늘리고 사업의 기회를 확장하는 목적이라면, 그대의 선택은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골프에는 골프라는 운동보다 우선해야 할 사업이라는 또 다른 목적이 있기에, 어느 한순간 골프에 슬럼프라도 오거나, 골프가 당신의 사업에 도움이 안된다고 느낄 때 , 혹은 다른 일로 골프에 집중도가 떨어지면 아마 당신은 골프를 멀리하는데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골프는 우리는 비즈니스 골프라고 명명합니다.
비즈니스 골퍼란, 골프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골프를 통해 사업상의 이익을 기대하며 필드에 나서는 골퍼들입니다. 이런 류의 골퍼는 그렇게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지만, 그 운동의 목적이 골프가 아니라 비즈니스에 있다는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어 만들어 냅니다.
이런 골퍼는 좀 지켜봐야 합니다. 훌륭한 골퍼가 되기 위하여는 아직 그 성장의 방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골프의 기능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골프의 실력을 가름하기 위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업상의 인맥이 목적이기에 오히려 골프 솜씨가 너무 탁월하여 동반자와 비교가 안될 정도가 되면 그 뛰어남 때문에 동반자가 다가서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죠.
비즈니스 골프에서는 필드에서의 게임보다 라운드의 전후의 과정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 사전 사후 관리가 잘못된다면 당신은 그 라운딩으로 사업을 확장시키기 보다 사업을 망하게 하는데 힘을 쓴 결과가 됩니다.
이런 류의 골퍼에게는 골프란 역시 사업입니다. 그들은 골프 실력이 좋고 나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그 라운딩이 비즈니스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에게 진정한 골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만치 않은 골프 라이프를 만들어가는 실무형 골퍼들 입니다. 아마 이런 분이 시니어 골퍼로 생존하리라 기대하기는 좀 만만치 않은 듯합니다.
개인적 인맥을 우선시하는 골퍼
비즈니스 인맥을 중심으로 골프라이프를 꾸리는 사람은 이권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순수한 골프를 개인적인 인맥과 즐기는 시니어 골퍼의 즐거움을 모를 공산이 큽니다.
이렇게 사업적 인맥이 아니라, 개인적 인맥을 우선하는 골퍼의 라운드 목적은 친구와의 친교입니다.
이런 골퍼를 사랑합니다.
이런 분들은 라운딩에서는 엄청 승부에 연연하지만, 그 입담이 라운드의 흥미를 배가하는 데 사용될 뿐이라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라운딩을 갖게 하고 우정의 깊이를 더 합니다. 이런 분 중에 상당한 실력자들이 나타납니다. 비즈니스 골퍼들보다 절대적, 평균적 실력이 상회하는 골퍼들이 많습니다.
이권이나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한 정신력의 강화로 깨닫게 된 골프의 깊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골프를 떠나 있다가도 언제든지 기회가 생기면 다시 필드를 찾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시니어 골퍼로 남아 힘 자랑하는 젊은 골퍼들의 코를 눌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골프는 어떻습니까?
시니어 골퍼의 진정한 실력은 반도체 불황일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걸리지 않은 빈 승부에 최고의 수준이 나옵니다. 승부에 걸린 물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평생을 자신과 함께 친구로, 골프 동반자로 살아온 귀한 인연에 대한 공정한 대접입니다.
평생을 함께 한 친구와의 라운드에는 다른 상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친구가 귀한 만큼 그런 귀중함에는 아무것도 걸지 않는 것이 그 동반자에 대한 예우인 셈입니다.
아무런 인연도 없던 타인과 만나 한평생을 함께 할 인맥이 된다는 것은 생의 기쁨이자 희열입니다. 그런 인연과, 운동에서의 승부라는 가치만을 가지고 치열하게 또는 평화롭게 필드를 거닐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골프 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모자람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던집니다.
그렇습니다. 시니어 골퍼는 일반 젊은 골퍼와는 달라야 합니다.
골프라는 운동은 같지만 자신의 골프 연역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을 골프에 묻혀살면서도 한결같은 대응 자세를 갖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골프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몰입하고 즐길 수 있는 철학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저 단순히 근육의 강도나 기능을 겨루는 것이라면 세월을 이길 용사가 없을 테고, 그렇다면 그 골프는 더 이상 시니어들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을 테니, 나이가 들수록 필드에서의 생존이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골프를 잘 치기 위해 필드에 나서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힘 겨루기 게임은 안하려 합니다.
필드에서는 가끔 혼자 상상을 합니다. 그 필드를 지나친 수많은 골퍼들이 쏟아놓은 아쉬움과 번민 속에 혹시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우연히 주운 낡은 공의 흔적에서 그 공의 주인의 난감한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깊은 벙커에서의 혼란한 발자국을 보면, 물에 젖은 모래와 싸운다 지친 골퍼의 기진한 숨소리가 들여오는 듯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핀 근처에 작은 볼 마크를 발견하고 그 마크의 주인공의 감동을 전달 받습니다.
누군가 필드의 세월 속에서 흘린 작은 부분들을 찾아내어 같이 공감하며 그 교훈을 함께 되새길 수 있다면 성숙한 시니어 골퍼로서 남은 생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은 고수에게는 놀이터이고, 하수에게는 생지옥이다.” 언젠가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 영화에서 나온 대사인데 이 말을 떠오른 순간 오늘 만난 새로운 동반자가 보입니다.
저 친구는 즐기는 고수일까, 아니면 지옥을 헤매는 하수일까?
인간의 삶에는 우리같은 범인의 사고로는 가늠조차 어려운 수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즐기는 자세를 유지하는 자가 바로 우리 생의 고수입니다. 그렇다면 골프에서의 하수와 고수의 차이도 역시, 필드에서 즐기는 자와 필드에서 조차 여전히 일만 하고 있는 자로 구분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놀이터가 되든 지옥이든, 모두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잘 아시죠?
글. 에녹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