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설 연휴는 길고 중요한 날로 생각되는 반면, 추석은 언제 지나갔나 싶은 날이다. 휴일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한국의 추석보다는 어린이날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매년 한국에 전화 한 통 드리고 부모님께 용돈 보내드리는 것 말고는 특별한 날이라는 걸 모르고 지냈는데, 올해는 시부모님과 시동생이 베트남에 방문하게 되어서 명절답게 가족들과 함께 모여 시끌벅적한 추석을 보냈다. 시부모님은 큰아들네가 호찌민에 나와 살고 있으니 손자들을 자주 못보셔서 아쉬워하셨는데 몇 개월 만에 또 쑥 커져있는 아이들을 보시면서 즐거운 한 주를 보내고 가셨다. 이번 추석은 호찌민은 시댁 가족들로 북적대고, 부산은 친정 식구들끼리 시끄러운 바람에 명절이구나 싶게 보낸 듯 하다.
추석 전 날, 한국에서는 전 부치고 생선 굽고 나물 무치느라 정신이 없을 친정집에 연락했더니, 뭔가 분위기가 썰렁한 것이 좀 이상하다 싶었다. 오후에 여동생한테 연락을 했더니 안 그래도 낮에 소란이 좀 있었다고 한다. 전해들은 스토리는 이러하다. 독립해 나와 살고 있는 여동생은 추석을 맞이하여 집에 와서 추석 준비를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아직 부모님 댁에 얹혀 살고 있는 막내 남동생은 연휴라고 종일 누워만 있다가 오후 되니 친구들 만나러 나간다며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뭐 하나 먹을래? 튀김 좀 묵고 갈래?’ 라고 엄마가 물으니 남동생은 ‘튀김 하나 무까. 딱 하나만 도’ 하니 엄마가 하나 집어서 쇼파까지 갖다주었다. 그걸 보고 여동생은 ‘아예 씹어주지’ 라고 한마디 했고, 이걸 들은 남동생은 나가는 길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자기 행동 하나하나 간섭하고 못마땅해 한다며 난리를 부렸다는 것이다. 다 큰 자식 둘이 싸우는 걸 들은 아버지가 둘 다 그만하라고 해서 싸움은 끝이 났으나, 여동생은 아직도 분이 안 풀려서, 지가 아직도 10대 청소년인 줄 아나, 부모님이 아직도 40대인 줄 아나. 지가 도와드려야 될 판에 아직도 막내아들 노릇하고 있네…하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여동생의 말만 들으면 남동생은 천하의 나쁜 막내 아들이다. 그런데 또 바꿔 생각하면 여동생은 본인 집에 있다가 부산 부모님 댁은 잠시 와서 지내는 집이지만, 남동생에게는 편하게 쉴 수 있는 자기 공간이다. 또 경찰이라 3교대 근무를 하니 어떤 때에는 대낮에 자고 TV 보는 게 영락없는 백수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이야기를 다 듣고서는 ‘추석 분위기 좀 냈네. 명절에 식구들 사이에 고성도 좀 오가고 해야 명절 답지’라며 농담으로 위로했지만, 썰렁한 명절 분위기가 걱정 되기도 했다. 조금 뒤에 여동생이 자기가 말이 좀 심했다, 미안하다고 남동생에게 사과했다고 연락이 왔지만, 벌써 30대 중반으로 들어선 여동생과 남동생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부모 및 형제와의 관계가 한 사람의 성격을 오롯이 결정짓지는 않겠지만,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여동생은 위로 언니, 아래로 남동생 그 사이에서 치이며 컸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반면 남동생은 기가 센 누나 둘 때문에 자기는 큰 소리 한 번 못 내고 컸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는 순한 남동생이라 나와 여동생이 많이 놀려먹기도 했고, 누나들에 비해 좀 늦되고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며 커 온 탓일까.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큰 싸움 없이 잘 커 왔는데, 오히려 사회에서 각자의 몫을 하는 성인이 되어서 둘의 갈등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이건 전화기를 통해 전해들은 친정집의 이야기라면, 시댁 식구와의 대화에서도 형제 자매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남편과 시동생, 형제 둘을 키우신 시어머니는 둘이 클 때 큰아들은 이랬고 작은아들은 이랬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완전히 다른 아들 둘의 성장기와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이니 재미도 있었지만, 서로 비교되는 내용이 많아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남편과 시동생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큰아들은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둘째 아들은 공부를 곧잘 했다는 말씀을 하실 때에는 20년 전 학창 시절 공부 이야기를 아직도 이야기 하신다는 게 놀랍기도 했고 동시에 나의 말하기를 되돌아 보게도 되었다. 쌍둥이다 보니 ‘둘이 어때요? 비슷하게 크나요?’ 이런 류의 질문 내용이 많기도 했고, 나부터가 시연이와 시우를 비교하며 생각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을 비교한다는 것이 다른 집 아이들과 우리집 아이들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옆집 누구누구는 벌써 한글을 읽는다더라, 두자리 덧셈까지 한다더라, 영어를 문장으로 말하더라에서 시작해서 조금 커서는 반에서 몇 등 한다던데, 어느 대학 갔다는데, 어디 취직했다는데… 다른 누군가와의 비교는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집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어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과 다른 친구들의 발달 속도를 비교하며 키우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시연이와 시우 둘을 비교하는 말과 생각을 많이 해 온 것은 아닌지. 둘을 똑같이 사랑하고 있으니 둘을 비교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나의 착각이었다.
누군가 ‘시우가 책을 잘 읽네요.’ 라고 하면 괜히 민망해서 ‘시연이는 아직 지 이름 밖에 못써요. 글자에 관심이 없어요’ 라고 시연이의 한글 실력을 대답 뒤에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고, 시우가 식당에서 산만하게 굴다가 컵을 쏟거나 하면, ‘시연이는 차분하게 앉아서 잘 먹는데, 시우는 정신없이 행동하다가 뭐든 하나 쏟는다’ 며 둘을 비교하고, 시연이가 원하는 걸 못해서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면 ‘시우는 다른 걸로 달래지는데, 시연이는 끝까지 떼를 쓰고 본다’ 며 둘의 고집을 비교하는 등등등. 수많은 상황에서 둘의 다른 점을 비교하는 것이 습관처럼 붙어있지는 않았나 되돌아본다. 이제 웬만한 대화는 다 알아듣고, 문맥적 의미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어린아이 취급하고 둘을 대놓고 비교하는 말들에 이미 상처받은 것이 있지나 않는지……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쌍둥이를 키우는 것이 처음이라, 아들과 딸을 같이 키우는 것도 처음이라, 서툴고 미숙한 게 많다. 다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좀더 넓어지고 나의 미성숙함을 깨닫고 세상에 겸손해져 가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나의 성장기를 돌아보면서, 주변 사람들의 성장과정을 들으면서 육아의 기술을 또 하나 배운다. 시연이와 시우도 내 자식이긴 하나 완전히 다른 둘임을 잊지 말자. 그러니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는 것을 걱정하기 전에, 내 자식 둘을 비교하고 있지는 않는지 먼저 되돌아 볼 것임을 기억하자.
J.Sai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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