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왈츠’에 살고 ‘왈츠’에 웃고,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

‘왈츠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왈츠의 왕’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 ‘빈 숲 속의 이야기’라는 춤곡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왈츠의 아버지’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이다. 유럽의 낭만음악이 뜨겁게 무르익던 19세기 중엽,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왈츠’라는 장르를 통해 세기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덕분이다. 그는 ‘빈’ 스타일의 초기 왈츠 모델을 고안해 대중들에게 최초로 보급하기 시작한 ‘왈츠 1세대’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의 이름과 작품을 혼동한다. 19세기 중엽 오스트리아를 기점으로 ‘‘왈츠’라는 씨앗을 퍼뜨린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왈츠의 왕을 있게 한 왈츠의 아버지.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외로운 고아, 음악으로 일어서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180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다. 부모는 선술집을 겸한 여관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그러던 중 요한이 일곱 살 되던 해에 모친이 열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고, 열두 살에는 부친이 도나우 강에서 익사하는 바람에 그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양복점에서 재단일을 하던 옆집 아저씨가 요한을 양자로 거두어 주었지만 그 역시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기에 음악을 좋아했던 요한에게 레슨선생을 붙여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마을의 악단을 기웃거리던 요한은 한 악사의 눈에 들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살펴보니 영특했던지 악사는 요한에게 음악이론과 악보 그리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불과 몇 년도 지속되지 않았던 그 무료교육이 요한이 받은 음악교육의 전부이다. 비록 유명한 선생을 사사하진 않았지만 요한은 그 짧은 음악 밑천으로 악단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친해진 친구 ‘요제프 란너’와 4중주단을 결성해 활동하더니 얼마 안가 자신의 이름 <요한 슈트라우스>를 딴 악단을 창단하였다.
요한은 시대의 흐름을 잘 읽는 사람이었다. 돈이 되는 음악이 무엇인지 단번에 눈치 챈 그는 최초로 ‘빈’스타일의 초기 왈츠 연주양식을 개척해 사교 파티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갔다. 슈트라우스의 ‘빈’ 왈츠는 단순한 듯한 3박자 리듬에 신나고 활발한 멜로디를 가미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었다. 악단에 관한 소문은 일사천리로 퍼졌고 사교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요한은 그 지긋지긋하던 가난에서 탈출해 경제적인 여유와 명성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왈츠의 시조’가 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슈트라우스 악단>을 창단하던 1825년에 가정을 꾸려 삼형제를 낳았다.(물론 딸도 둘 있었다) 위로부터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차남 요셉 슈트라우스, 그리고 삼남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 삼형제 모두 아버지의 음악성을 닮았고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 했지만, 요한 1세는 당시 음악계가 너무 치열해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아들들의 음악 공부를 극렬히 반대했다. 특히 장남 요한 2세는 다른 아들들보다 음악성이 출중해 아버지의 우려대상 1호였다. 그는 마음 약한 어머니를 설득해 레슨비를 챙겨 몰래 몰래 음악레슨을 받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매질을 당하곤 했다. 하지만 기침과 사랑이 숨겨지지 않는 것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한 일. 요한 2세는 아버지가 활동으로 바쁜 틈을 타 꾸준히 음악공부에 매진하였고 결국 사고를 치게 된다. 19세가 되던 해, 그는 ‘돔마니어 카지노’라는 레스토랑에서 자작 왈츠곡들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앵콜곡을 무려 아홉차례나 연주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슈트라우스 2세의 데뷔연주가 성공하자 빈 전체가 들썩거렸다. 신문들은 앞다투어 “슈트라우스 1세는 지는 해, 슈트라우스 2세는 뜨는 해”라는 글을 게재하였다.
아들의 성공적인 데뷔. 기뻐해야 정상인 것을…. 하지만 요한 1세는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이 어렵사리 쌓아 온 성이 서서히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에 사로 잡히게 된다. 하필 아버지의 주력장르였던 ‘춤곡’ 세계에 발을 들여놓다니. 아들놈의 성격이 보통 당찬 게 아니었다. 요한 1세와 2세의 갈등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요한 1세는 자신의 심각한 외도(이후 바람이 난 여인과 혼외자를 6명이나 두었다)로 아들의 신뢰를 절대 얻을 수 없는 빵점짜리 아버지였고, 아들이 어떤 일을 하던 그것을 반대하기엔 소위 ‘말빨’이 서지 않는 아버지였다. 아들의 연주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4년 후 죽음이 다가오던 그 순간까지도 요한 1세는 아들 요한 2세와 라이벌이 되어 비교당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삼형제, 아버지를 뛰어 넘어 세계 속에 왈츠를 심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초기 왈츠’에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한층 발전시켰고, 그것을 세계 곳곳에 알리는 데 일생을 바쳤다. 두 부자의 왈츠 스타일은 사뭇 달랐다. 요한 1세의 왈츠가 주로 사교댄스를 위한 반주를 목적으로 했다면, 살짝 저는 것 같은 3박자 계열의 ‘쿵짝짝’에 세련미 넘치는 요한 2세의 왈츠는 무도회장을 떠나 음악회장에서 연주되는 ‘정식 연주회 작품’으로까지 지위가 격상되었다.
한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자신의 아랫 동생 요셉 슈트라우스에게 손을 내밀어 음악가의 길을 열어 주었다. 어려서부터 형만큼의 음악적 재능은 없었지만 역시 아버지 몰래 음악 공부를 꾸준히 해왔던 요셉 슈트라우스. 그는 아버지의 독재적인 교육방침 때문에 음악이 아닌 엔지니어링을 전공했지만 형 요한이 과로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자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가업이라 여기고 오케스트라 지휘를 떠맡게 되었다. 잘 되어갈 그림이었다. 감수성만 풍부했던 형에 비해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요셉이 경영을 맡은 후 오케스트라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져 유럽을 넘어 신대륙 미국에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다.
한 때,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재무와 경영 총책임을 맡았던 둘째 요셉이 과로로 단명한 것이다. 그 때, 맏형 요한 1세는 막내 에두아르드를 새로운 지휘자로 영입했고, 그의 아들 요한 마리아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까지 슈트라우스 악단의 마지막 지휘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즉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를 시작으로 요한 2세와 요셉, 에두아르드, 그리고 그의 아들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 (활동명:요한 슈트라우스 3세)에 이르기까지 전 3대가 ‘춤곡’을 위해 살다가 떠나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영원한 자랑 <슈트라우스 가족>
오스트리아의 ‘빈’은 매해 1월 1일 신년 음악회에서 어김없이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의 춤곡들을 연주하며 전 국민들에게 기분좋게 새해를 열어준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위대한 작곡가인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을 제치고 ‘빈 신년음악회’에서 1순위로 선곡될만큼 슈트라우스 가족의 음악은 지금도 오스트리아의 자랑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는 안타깝게도 20세기에 들어서던 1901년 2월 13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미국으로부터 재즈와 블루스 등 새로운 음악사조들이 물밀듯이 들어와 설 자리를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낭만이 절정을 이루던 당시, 슈트라우스 가족의 왈츠가, 그들의 춤곡이 세계인들의 낭만과 흥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점은 꼭 기억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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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 희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교육학 학사) / 미국 맨하탄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석사) / 한세대학교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박사) / 국립 강원대학교 실기전담 외래교수(2002~2015) / 2001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태리, 스페인, 중국,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연주활동 중 / ‘대관령 국제 음악제’, 중국 ‘난닝 국제 관악 페스티발’, 이태리 ‘티볼리 국제 피아노 페스티발’, 스페인 ‘라스 팔마스 피아노 페스티발’ 《초청 피아니스트》 E-mail: pianistkim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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