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하기 위해 천상에서 하강한 장수
베트남 민족의 고대 영웅 바찌우 여장군과 오나라 육영장군과의 치열한 공방전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는 고대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를 받던 1천년의 역사 가운데 3세기경 중국 오나라에 의한 탄압이 가장 극심했던 때로 22세의 꽃다운 나이의 가녀린 여성이 민족이 도탄에 빠지자 분연히 일어난 이야기는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민중들 속에 회자되고 있다.
역사 속으로
3세기 초, 고대 베트남은 중국 오(Ngô)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중국의 정세는 후한이 망하고(220년 10월) 위(220~265), 오(222~280), 촉(221~263) 등 삼국이 서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오나라 관리들은 전투를 모르던 이곳의 선량한 농민들을 닥치는 대로 징발하여 싸움터로 내몰았다. 게다가 그들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당시 비엣(越)족들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던 북부지역인 끄우쩡 (Cửu Chân)과 야오찌 (Giao Chỉ) 사람들을 눈에 띄는 대로 끌고 가 노역에 종사시켰다. 그 결과 이곳저곳에서 민중들의 신음과 불평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금빛 갑옷의 전사 태어나다
바로 이 시기에 바찌우(찌우부인)가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찌우티찐 (Triệu Thị Trinh)으로, 전설에 의하면 229년 음력 10월 2일 구엉잉 (Quân Yên, 끄우쩡 지역) 산에서 사냥 축제일 흥겨운 북소리를 들으며 태어났다고 한다. 찌우(Triệu) 족은 당시 명망 높은 족장 가문으로 인근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당시 족장 찌우는 찌우티찐과 찌우구억닥 (Triệu Quốc Đạt) 두 남매를 구별하지 않고 함께 무술과 학문을 배우게 했다. 영특하고 건강한 두 남매는 찌우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특히 여동생 찌우티찐의 가장 큰 장기는 활쏘기였다. 어느 날 동네 청년들과 사냥을 갔다가 거대한 표범 한 마리가 나타나 청년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찌우티찐이 순식간에 화살을 날려 쓰러뜨리자 이때부터 그녀는 동네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항거의 발단과 부친의 급사
어느 날 ‘오’ 나라 군사들이 아버지와 오빠, 형제와 동료들을 못살게 구는 것을 보자 그녀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반드시 이 치욕을 갚아한다”고 말하자 두 부자가 즉시 호응했다. 두 사람은 다시 그 전에 먼저 철저히 사전 준비를 한 후 때를 기다리자”며 그녀를 독려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버지는 병으로 급사하고 만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족장이 된 오빠 ‘구억닥’의 지시로 어머니의 고향 뚱산으로 들어가 거기서 오빠와 합류하기로 했다.
거병의 요람 뚱산
뚱산은 천하절경의 명산이면서도 산세가 험해 비밀리에 군사훈련을 하기 적합했다. 한편 오빠 ‘구억닥’은 이전보다 더 많은 공물(상아, 술, 그밖에 각종 특산품)을 오 나라에 갖다 바쳐 충성을 맹세하는 척했다. 다행스럽게도 오 나라 관리는 반역의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뚱산에 흉폭한 흰 코끼리가 나타나 물소와 가축들을 짓밟고 죽여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장정들과 합세하여 이 코끼리를 늪에 빠뜨린 후 그 머리에 올라타고 양 귀를 잡은 후 마침내 복종시키자 그녀에 대한 소문이 불붙듯 퍼져나갔다. 얼마 후 그녀의 소문을 듣고 산간지방의 족장 출신 리 가문의 3형제가 찾아왔다. 이들은 각기 활, 도끼, 창 등을 쓰는데 달인들로, 평소 그녀의 소문을 듣고 그녀를 흠모하던 차였다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심지어 어느 눈먼 노인은 전국을 돌며 찌우 부인의 뒤를 따라 성전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이때부터 ‘바찌우’(찌우부인)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천상에서 하강한 장수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마침내 거병!, 파죽지세
마침내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탄호아 성 끄우쩡 지역 뚱 (Tùng) 산꼭대기에 의의 깃발을 꽂으며 항전을 호소했다. “나 찌우 장군은 하늘의 명을 받들어 개국의 깃발을 꽂았다. 뜻있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 즉시 수많은 백성들이 이에 호응했다. 바찌우는 금빛 갑옷을 입고 빛나는 흰색 코끼리를 탄 채 선두에 서서 진격해 들어갔다.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였다. 오나라 군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바찌우의 의병들을 환호하기 위해 곳곳에서 수많은 군중이 밀려 나와 양식과 의복을 바쳤다.
하지만 진격 도중 그녀의 오빠가 복병이 쏜 독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하지만 바찌우는 코끼리 등에서 내려와 죽은 이를 잠시 애도한 후 눈물을 삼키며 진격을 계속했다. 마침내 바찌우의 주력부대는 끄우쩡(Cửu Chân) 태수가 있는 본부를 에워쌌다. 흰색 코끼리 위에 탄 바찌우를 본 태수는 겁에 질려 어찌할 줄 몰랐다. 집요한 공격 끝에 성문이 열리자 바찌우는 제일 먼저 오빠의 원수인 태수를 찾아내어 단칼에 목을 자르자 백성과 병사들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가는 곳마다 저항하는 자들을 모조리 처단하자 적병들은 두 손을 들고 자진하여 투항했다.
룩영장군의 등장과 전세의 역전
바찌우에 의해 야오쩌우 (Giao Châu)가 함락되었다는 비보를 접한 오나라 조정은 다시 또 한 사람의 장군을 태수로 파견했다. 새로 부임한 태수 룩영 (Lục Dận)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장수로, 특히 권모술수에 능한 자였다. 독사처럼 교활한 룩영은 먼저 이 지역 마을 촌장들에게 뇌물을 주어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후 산속 깊은 곳에 병사들을 매복시켜 바찌우군의 무기와 식량을 공급하는 길목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심지어 그는 야오쩌우의 샘물과 강에 독을 타고 식창고에 불까지 질렀다. 전세는 나날이 불리해져 갔다. 마침내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지자 용맹한 바찌우 군도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최후항전, 그리고 자결
그녀의 오른팔인 리(Lý)가의 장수와 그 휘하 병사들은 바찌우의 주력군이 후퇴할 수 있도록 생명을 바쳐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바찌우는 결국 뚱산으로 후퇴했다. 식량은 바닥나고 다친 병사들은 고통을 호소했지만, 대다수 병사들은 그녀와 생사를 함께하겠다고 맹세했다. 음력 2월 21일,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야비한 육영은 또다시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바찌우가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 전국으로 하여금 벌거벗은 미친 자들처럼 춤을 추며 진격해 들어갈 것을 명했다.
바찌우가 이 광경을 보고 안절부절못하는 동안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고 엄청난 인명피해가 난다. 결국,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자 그녀는 뚱산 꼭대기에 올라가 고향을 바라본 후 검을 꺼내 자결하고 만다. 30여 차례의 빛나는 전과를 올린 베트남 민족의 영웅, 바찌우는 결국 이날 22세(248년)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다이남녁통찌). 그동안 충성스럽게 그녀를 태우고 다녔던 흰 코끼리는 주인의 죽음을 목격한 후 구슬픈 소리를 내며 한참을 울다가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전투가 끝나자 병사들은 뚱산에 사당을 세워 민족의 영웅인 바찌우를 명복을 빌어주었다. 지금도 음력 2월 21일이 되면 이곳 뚱산에 세워진 바찌우 사당에서 해마다 성대한 제사가 거행된다.
바찌우는 세간에 천사가 하강했다고 할 정도로 출중한 외모에, 활 하나로 표범을 잡고 흉폭한 코끼리를 일거에 제압하여 자신의 충복으로 삼는 등 용감무쌍함과 지혜를 겸비한 여장부였다. 의협심의 화신 바찌우는 특히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 분연히 일어섰고 인덕이 있어 각지의 영웅호걸들이 자진하여 그녀에게 몸을 의탁했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고대 베트남의 여걸 하이바쯩 자매와 늘 비견되는데, 사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인류 역사상 이 같은 유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 다음 호에는 응오 전투 밧당에 대해서 알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