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동안 기침이 끊이질 않는다. 감기는 아닌 것 같은데 가슴이 답답하면서 마른 기침이 난다. 인터넷이 의사라고 아내는 내 몸에 이상한 징후만 생기면 인터넷부터 찾아보곤 한다. 구글병원, 네이버선생님의 진단을 먼저 받는 셈이다. 그런데 아는 게 병이라고 인터넷으로 진단해보면 결과가 대체로 심각해진다. 단순한 감기로 인한 기침도 폐렴이 아닌지 고민하게 만든다. 전문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을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풀어 전달하려니 생기는 한계이다. 그런데 그걸 고려해도 내 경우는 제시된 증상의 범주에 거의 속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검색엔진 선생님들이 실력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한 셈이다.
기침은 나는데 열은 없다. 콧물도 몸살기운도 없다. 목이 부은 것도 아니다. 기침을 통해 나오는 이물질도 거의 없다. 호흡이 곤란하지도, 위의 통증도 없다. 다만 가슴이 좀 답답하고 기침 때문에 힘이 들 뿐이었다. 증상을 들은 동료 주재원이 말하길 홧병이란다. 내가 성격이 까다로운 부분이 있기는 해도 화를 품고 살지는 않는데 그의 진단이 그렇다. 웃기는 소리라며 무시해 버렸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어떤 스트레스, 가령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속에 쌓여간 어떤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세 주를 넘게 버티다 한국 출장을 빙자해 검색엔진 선생님 대신 사람 선생님을 만나러 병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기침은 자기도 불편하지만 남도 긴장하게 한다. 전염의 가능성 때문이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쓸 마스크도 준비하고 일부러 탑승전에 물도 충분히 마셔 두었다. 준비가 잘 되면 예상한 어려움도 피해간다. 바다를 건너는 다섯시간의 항공시간 동안 기침으로 옆사람에게 폐도 끼치지 않고 졸며 자며 인천공항에 잘 도착했으니 말이다.
기침이란 것이 생각보다 똘똘한 신체의 방어기제이다 기침은 우리 몸의 내부가 외부 환경에 대해 열려 있는 코, 입과 같은 호흡기에서 바이러스나 세균, 이물질을 내보내는 활동이다. 이 역할을 통해 바이러스와 같은 적들의 공격을 방어해 감염과 염증으로부터 폐를 지켜낸다. 그러므로 기침은 폐를 지키는 파수꾼과 같다 하겠다. 하지만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 바이러스를 내쫓기 위해 기침을 하는 것도 불편하고, 그 기침을 통해 곁의 사람들에게 바이러스에 감염될 염려를 갖게 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살면서 좋은 일도 별로 못하는데 내가 낫겠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살면서 기왕에 전염시킬 상황이라면 좋은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점에서 악한 바이러스 말고 행복 바이러스같은 것이 있다면 좋겠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옮겨 줄 만한, 아니 옮겨 주고 싶은 그런 바이러스. 우리 곁의 사람들에게 행복함이 전염되는 그런 바이러스. 신문이고 방송이고 온통 들려오는 소식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가슴을 답답하게 해 홧병이 절로 돋는 이런 세상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바이러스 말이다. 그걸 해피 바이러스라고 할까?
이런저런 상상 속에 검진 차례가 왔다. 담당 의사와 문진하고 엑스레이도 두 판을 찍었다. 경상도 억양의 의사선생님은 명쾌하다. 그리고 동시에 모호하다.
신체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생할 수 있어요. 과로, 스트레스, 원인은 다양해요.
나를 잠시나마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한 해피 바이러스는 어디에 있을까? 기침으로 나가 버렸을까? 그래서라도 다른 사람이 해피함에 전염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 경상도 의사선생님은 잘라 말한다.
약을 처방해 줄 테니 잊지 말고 드세요. 재발할 수 있어요.
처방전을 내미니 대신 약을 잔뜩 쥐어 준다. 이렇게 많은 약을 먹으면 해피 바이러스도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이 되었다. 병원에 괜히 왔나 보다. 병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스트레스가 주범이고 면역력 저하가 원인이 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트레스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듣는 스트레스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다. 약 때문에 공연히 심통이 났다. 그런데 문득 서울로 출발하기 전 동료 주재원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홧병이에요.
그가 말한 홧병이나 의사가 말한 스트레스나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병의 원인들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것이 해외에 나와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갑갑함’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말이다. 아무리 베트남어를 잘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어도 외국생활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친절하고 도움을 준다 해도 외국인이다. 풀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항상 남는다. 그것을 가슴에 쌓으며 살아가는 것이 해외 생활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체념으로 쌓아가고, 어떤 이들은 버럭 화를 내는 것으로 풀곤 한다. 그래도 다 토해낼 수 없는 ‘무엇’이 남는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 고국에 가면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같은 이유이다. 무어라 짚어낼 수 없지만 쌓인 그것을 끄집어 내고 싶어하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스테이크를 매일같이 잔뜩 먹어도 한국 사람에게 밥이 그리운 것과 같다. 외국인과는 나눌 수 없는 우리끼리 만이 갖는 동질감, 공통의 문화적, 정서적 속성들이 말을 고프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배가 고프면 허기가 지고 병이 나듯, 이 정체모를 갑갑함이 쌓이면 병이 된다. 그렇다면 그게 홧병이고 스트레스이겠다. 그러니 답답함을 끄집어 내기 위해 기침을 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런 기침은 나를 지켜 주려는 착한 신호인지도 모른다. 공격받는 폐를 지키려 하는 기침처럼, 피곤하고 어려운 생활 중에서 공격받는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 기침을 해야겠다. 그리고 거기에 나쁜 바이러스와 세균을 담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해피 바이러스를 담아야겠다. 이 피곤한 해외 생활에서 홧병 걸리지 말고 해피하라고 말이다.
그러고보니 씬짜오베트남이 이번 호로 발행 400호를 맞았다. 바야흐로 아이의 티를 벗고 청년이 되어 간다. 베트남 교민사회의 척박한 토양 속에서도 든든하게 자란 씬짜오베트남이 교민사회를 해피하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이 기여했으면 좋겠다. 책이 놓이는 장소마다, 책을 펼치는 사람에게 마다 책장 갈피 사이사이 숨은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그래서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이국의 생활 속에서 모든 이들에게 활력을 주는 책이 되기를 기대한다.
잡다한 상상을 하다 병원을 나선 길에서 만난 초여름 햇살이 기침이 가라앉은 목덜미를 다시 간지른다. 쿨럭! 기침 조심, 홧병 조심! 그래도 해피 바이러스로 행복한 하루를! /夢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