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고대 왕국 테베는 말라가고 있었다. 스핑크스,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사자인 괴물이 왕국으로 들어가는 성문을 가로막고 지나는 사람들을 잡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스핑크스가 내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여지 없이 산채로 잡아 먹혔으므로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백성 모두가 굶어 죽어갈 무렵 홀연히 한 사내가 나타난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곧바로 잡아 먹힐 줄 알면서도 사내는 보무당당하게 스핑크스와 맞짱을 뜬다. 입맛을 다시며 스핑크스가 문제를 낸다. ‘아침에는 네 다리, 점심엔 두 다리, 밤이 오면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은?’ 사내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그것은 사람이다. 어릴 때 네 다리로 기어 다니고 성인이 되면 두 다리, 늙어선 지팡이가 더해져 세 다리로 걷는, 그것은 사람이다. 정답이다. 스핑크스는 사내를 잡아먹는 대신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는다. 사내는 왕국을 구하고 테베의 왕이 된다. 수수께끼로 왕좌에 오른 전설적인 인물, 수수께끼 풀이의 달인,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 Oedipus다. 그러나, 자신의 특출한 능력 때문에 비극은 시작되니 운명은 고약하다. 어떠한 문제도 풀어내고야 마는, 수사권을 장악하며 미궁의 사건을 탐정의 시선으로 쫓아가 결국 알아내고야 마는 그 능력으로 인해 그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크레온: 왕이시여, 당신께서 이 나라를 이끌어가시기 전에는 라이오스 왕께서 이 나라의 지배자이셨습니다. 그 분이 살해 당하셨으니 이제 신의 분부는 분명합니다. 살해자들이 누구이건 그들을 벌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피가 이 나라를 더럽히고 있으니까요.
-오이디푸스: 왕을 살해한 자가 누구이건 그 자는 내게도 칼날을 돌릴 터이니 왕을 위한 일은 곧 나를 위한 일이다.

오이디푸스의 장기가 나올 시간이다. 오이디푸스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범인은 자신으로 압축되어 가기 시작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오이디푸스, 탐정이자 피의자는 기억의 태엽을 되돌린다. 어느 날 예언자는 선왕 라이오스와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에게 신의 예언을 전달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이디푸스가 훗날 아버지를 죽인다는 신탁이었다. 왕은 오이디푸스를 태어나자마자 버렸다. 시간이 흘러, 버려진 오이디푸스가 장성했을 때 무섭도록 맞아 떨어지는 예언은 계속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충격적인 예언을 다시 받는다. 이때 오이디푸스는 이 악랄한 운명을 피하고자 유랑을 시작했고 유랑 중에 불한당들과 싸우다 그들을 모조리 죽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라이오스 왕이 살해된 지점에서 자신이 사람을 죽인 기억을 되살려 내게 된다. 그는 마치 자백하듯 잃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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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내가 삼거리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았소.

조여오는 탐문의 과정과 실마리들이 연이어 맞아 떨어지는 연결로 인해 오이디푸스는 더는 물러 설 수 없게 된다. 정황상 삼거리에서 죽은 사람 중 하나가 라이오스 왕이었음이 드러난다. 오이디푸스는 모든 퍼즐을 맞추고 난 뒤 절망한다. 범인이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라이오스 왕,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자신이었다. 옆에 있는 왕비, 라이오스 왕의 왕비를 아내로 맞아들여 부부의 연을 맺고 있었다.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와 같은 침대를 쓰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오이디푸스: 아 모든 것이 분명해졌구나, 모든 사실이! 오 빛이여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하게 해 다오. 이 몸은 저주스럽게 태어나서 저주받은 혼인을 하고 해쳐서는 안 될 분의 피를 흘렸구나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순간 미쳐 버리고 그 자리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쫓아 들어간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가슴에서 브로치를 빼어 들고 자신의 눈을 찌른다.

-오이디푸스: 너희들이 내게 덮친 수많은 재앙, 내가 저지를 수많은 죄업을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내가 보아서는 안 되었던 사람을 보고 내가 알고 싶었던 사람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던 너희들은 이제부터는 영원한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잃고 스스로 자신을 왕국에서 추방한다. 태어날 때 버려진 자신을 한번 더 버리며 스스로를 벌한다.

-오이디푸스: 오오 운명의 결혼이여, 너는 나를 낳고 나를 낳았으면서도 다시 같은 사나이의 씨를 받았다. 아버지와 형제와 자식, 그리고 새색시와 아내와 어머니, 육친끼리 피를 섞는 죄를 낳았다. 그렇다. 인간 세상에 다시없이 더러운 죄업이로구나. 그러나 더러운 일은 입에 올리기조차 더럽다.

오이디푸스는 희곡이다. 지중해가 보이는 반원형의 극장에서 2,500년전 실제로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이다. 공연 매회 약 1만 관중이 빼곡히 들어차 숨을 죽이고 보던 당시의 블록버스터였다. 극본을 썼고 연출을 담당했던 소포클레스는 당시 비극경연대회에서 열여덟 차례 우승을 거머쥔 거장이었다. 칸의 황금종려상이 부럽지 않은 대가였다.
손에 땀을 쥐는 스토리 전개와 인간의 욕망과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내용으로 흰 천을 두른 관객의 마음을 조였다. 끈으로 묶인 신발을 동동 굴려가며 관객들은 연극에 빨려 들어갔다. 믿기지 않는 건 ‘오이디푸스 왕’은 하루 만에 펼쳐진 이야기라는 점이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작가 김영하는 자신의 소설 모티브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빌려왔다 말하며 2,50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진부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련된 플롯은 읽으면 읽을수록 빛난다고 평했다. 실로 그렇다. 오늘날 일부 사회학자들은 서구문화의 진정한 ‘죄의식 문화’는 소포클레스로부터 출발한다 말하기도 한다. 연결하여 말하자면 프로이트와 칼 융은 ‘오이디푸스 왕’을 이야기하며 빠져선 안 될 사람들이다. 잊혀진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유명하게 한 건 프로이트와 칼 융이다. 이들은 친부살해, 근친상간, 인간의 금기 속에 숨어있는 욕망의 본능을 정신분석학적 ‘콤플렉스’로 해석하며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오이디푸스가 서식하고 있음을 정신의학적으로 밝히며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를 인용했다. 지금 우리는, 엄마의 가슴을 파고 들지만 아빠와는 UFC 시합을 펼치며 노는 남자 아이를 두고 너나 없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오이디푸스는 여전히 살아 있다.

세상은 자신을 알아야 한다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 없이 물어라 말한다. 그런데 말이다, 무턱대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 보려 달려들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나를 가두고 억압하고 제약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 억압들을 먼저 까발리지 않으면 자신으로 향하는 길엔 언제나 스핑크스가 떡하고 가로 막고 있을지 모른다. 소포클레스는 우리가 자신으로 가는 위대한 길에 무의식의 스핑크스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것은 내 안에 서식하는 욕망이요, 본능이며 어쩌지 못하는 동물성이요, 조건 지어진 인간이라는 제약이다. 자신의 두 눈을 찌르는 고통과 맞먹는 노력이 없다면 억압을 걷어낸 자유 인간으로 가는 길은 요원함을 미리 알려준다. 우리에게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에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실제 신전의 기둥에 새겨진 그 말 앞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이라는 말이 붙어있다. 소포클레스로 인해 인간은 자신으로 가는 길에 버틴 스핑크스 하나를 제거할 수 있게 됐다. 자기 안의 ‘야수’를 성찰할 수 있게 했으니 무지의 인류에게 한 발짝의 진전을 가져다 준 소포클레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장재용

작가, 산악인, 꿈꾸는 월급쟁이 /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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